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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이웃에 사는 백구 가족이 덜컥 걱정됐다. 처음 만났을 때 어미개 둘에 엄마를 꼭 닮은 아기개 여섯이 있었는데 최근 보니 저쪽 엄마네 아가들은 모두 남의 집에 보내졌고 가장 작고 약해 보이는 이쪽 엄마의 아기 둘만 남아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낯선 나를 어찌나 환히 반겨주던지 그날 이후 오가며 매일 인사를 하고 있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얼른 가봤다. 그런데, 불과 며칠 전만도 엇비슷하던 새끼 둘 중 하나가 부쩍 커서는 꼬리를 흔들며 나를 보겠다고 돌담을 기어 올라 왔다. 순한 어미도 언제나처럼 자신도 예뻐해달라는 듯 짧은 쇠줄을 최대한 당겨 다가왔다. 하지만 제일 체구가 작은 녀석은 누운 채로 가만히 있다 뒤늦게 꼬리를 흔들었다. 힘에 부친 듯 천천히.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작은 몸에 순한 눈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짠해졌다. 물과 밥 그릇은 오늘도 텅 비어 말라 있다. 지난 번 왔을 때 이 집 사는 사람을 만났는데 조심스레 제일 작은 녀석 걱정을 하니 "원래 좀 소심한 성격"이라며 웃었다. 좋은 사람 같았는데... 안타까운 마음을 누르며 돌아섰다. 남의 집에 간 녀석들도 지금 남은 어미와 새끼들도 부디 안녕하길 바라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오후, 어제 가다 만 당오름으로 다시 출발. 강호는 숙소에서 쉬게 뒀다. 당오름에 흥미를 느낀 건 제주관광지순환버스를 탔을 때 교통관광도우미 분의 재미난 설명 때문이었다. 원래 제주 사람들은 하늘과 바다, 척박한 자연 가운데 살면서 수많은 신들을 숭배했는데 그 수가 1만 8천, 그 중에서도 왕신인 금백조를 모시는 당이 당오름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 마을의 수식어는 '소원 비는 마을'.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특히 마음을 뭉클하게 했던 내용으로 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몰랐던 어머니들이 자식의 안녕을 빌고자 하얀 종이를 품에 안고 소원을 빈 뒤에 그것을 나무에 걸어두는 풍속이 있었다고.

그래서 뭔가 신묘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상상하며 왔는데 실제 풍경은 달랐다. 내가 한달살기 중인 구자읍과는 달리 집들은 현대식 아파트나 주택이 주를 이루고 제주의 화산석으로 쌓은 예쁜 돌담도 어쩌다 띄엄띄엄 보였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마침 운동하러 나오셨다는 할머니를 만나 이런저런 대화 중에 "외지 사람들 들어와 사는 거 안 싫으세요?" 하니 "싫긴 왜 싫어" 하며 웃었다. "전 제주 전통집이 참 예쁘던데 여긴 다 신식이 됐네요" 했더니 "우리집도 돌담집이었는데 허물고 보루꾸(벽돌)집 지었제. 근데 또 돌담으로 바꿨어. 예전 집 지금까지 있음 참 멋질 건데. 그때는 돌담집이 안 좋아 보였거든" 하셨다. 부디 모두 사라지기 전에 귀하고 예쁜 걸 깨달아줬으면.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당오름은 나무가 없거나 일부분에만 분포해 있고 분화구가 뚜렷이 보이는 그간에 봤던 오름들과 달리 숲이 울창해서 모르고 가면 그냥 산인 줄 알았겠다. 안내 표지판에 따르면 북서쪽으로 침식된 말굽형 화구를 지닌 화산체라고 하는데 정상에서 내려올 때 어렴풋이 그런 지형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름의 모양과 생태가 다양함을 배운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우연히 두 번 만난 행인 덕에 제주 신들의 왕, 금백조를 모셨다는 신당을 찾을 수 있었다. 숲길을 걷는데 정신이 팔려 잊고 지나칠 뻔 했는데 오름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다시 행인과 인사 중에 기억이 나서 물으니 바로 근처였다.

그런데 신당 역시 상상과 달리 그저 작고 말끔한, 언뜻 보면 소각장 같은 모습이었다. 너무 인위적으로 말끔하게 정돈해둔 탓인 듯. 그저 마음으로 제주의 신들께 기도를 전했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예상했던 여정과 상당 달라 다소 허무한 마음으로 돌아갈 버스를 타러 가는데 교문까지 이어진 숲길이 너무도 예쁜 초등학교를 발견, 들어가 봤다. '송당 초등학교'였다. 사방이 확 트인 운동장에서 두 개의 봉긋한 오름이 마주 보였다. 이런 자연 가운데서 자라는 아이들에겐 분명 이 자연에 깃든 아름답고 강한 힘이 쌓일 것만 같았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모처럼 운동장 트랙을 보니 100미터 달리기를 하고 싶어졌다. 어릴 적 내 최악의 기록은 25초. 어른이 됐으니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스톱워치를 누르고 출발. 그런데 무려 16초! 다시 달렸을 땐 15초! 트랙이 짧은 건가? 내 다리가 길어져서인가? 혼자 신기해하다 몸만 컸지 여전히 어린 아이 같은 나라는 생각을 했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하나둘 나와서 나도 학교를 빠져나왔다.

 백구 가족 처음 만났을 때. 부디 모두 좋은 사람 곁에서 편안히 살길.
백구 가족 처음 만났을 때. 부디 모두 좋은 사람 곁에서 편안히 살길. ⓒ 이명주

덧붙이는 글 | 우리의 실시간 여행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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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lifeis_ajourney

두 다리뿐인 강호가 보다 편안히, 신나게 걸을 수 있게 휠체어를, 여행하며 만나는 '1미터 지옥'에 묶인 동물들을 위해선 보다 길고 편안한 몸줄을, 밥이 필요하면 밥을, 약이 필요하면 약을 선물하고자 합니다. '원고료'로 응원해주세요.



#당오름#송당#제주 한달살기#백구 #고양이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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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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