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개혁 조치, 실망스럽다지방선거가 끝나면 달라질 줄 알았다. 실제로 세간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지지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제개혁 조치들을 모두 지방선거 후로 미뤄두고 있고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 본격적으로 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제법 그럴싸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사실 재벌개혁을 제도적으로 추진하는 일이나 부동산 보유세제를 개편하는 일은 큰 폭의 정권 지지율 하락을 각오하고 추진해야 할 엄청난 사안이다. 그래서 필자는 문재인 정부가 집권 1년이 지나도록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운운하는 레토릭만 구사할 뿐, 이렇다 할 개혁 정책을 내놓지 않는 데 대해 양해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부동산 보유세제 개편방안은 6.13 지방선거 압승 후 문재인 정부가 처음 내놓는 개혁 조치다. 지난 6월 22일 최소 1949억 원, 최대 1조 2952억 원을 증세하는 종합부동산세 개편방안들을 제시한 재정개혁특위는, 7월 3일 여러 시나리오 중 종부세의 공정시장가액 비율(과표 산정 시에 과세대상 금액에다 곱해주는 비율로 현재는 80%이다)을 연간 5%씩 높이고 세율을 약간씩 인상하여 종부세를 강화하는 방안을 '권고안'으로 확정해서 발표했다. 특위가 '권고안'에서 밝힌 세수 증가 효과는 약 1조 1천억 원이다.
언론은 고가주택의 종부세 부담이 어떻게 달라지고, 앞으로 부동산 가격은 어떻게 변할지 계산하고 전망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보유세제 개편은 그런 차원을 넘어서는 사안이다. 토지보유세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여 투기를 막고, 부동산으로 인한 악성 불평등을 완화하며, 기업과 국민들을 '지대추구의 덫'에서 건져내 생산적인 활동에 몰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면 불평등 완화와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정말 좋은 세금, 토지보유세여기서 잠깐 토지보유세의 효과를 정리해두는 것이 좋겠다.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면 토지정의가 실현된다. 토지와 자연자원은 조물주가 인류에게 거저 준 것이므로, 그것들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 대가를 공동체에 납부하여 공동체가 골고루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정의롭다.
정부가 토지보유세를 제대로 징수해서 국민들에게 균등하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사용하면 그런 일이 가능해진다. 토지보유세를 충분히 징수하면, 부모에게 부동산을 상속받아서 매일 빈둥빈둥 놀면서도 부와 소득을 증식하는 계층은 줄어든다. 토지가 없거나 적은 사람들은 토지보유세 세수에서 나오는 혜택 덕분에 생존을 위협받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토지보유세를 제대로 징수하면, 기업들도 더 이상 토지 불로소득에 기대지 않고 생산적인 투자에 전념하게 된다. 토지가격이 안정되므로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은 초기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일반 국민들도 부동산 투기로 '대박'을 치는 데 관심을 두는 대신에 땀 흘려 일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절약해서 부를 축적하는 데 신경을 쓰게 된다. 이렇게 모든 경제주체들이 생산적 활동에 몰두하면, 자연스럽게 경제성장률도 높아진다.
애덤 스미스(A. Smith)가 지대를 과세에 특히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은 지대에 부과하는 조세, 즉 토지보유세가 능률성과 정의성을 갖춘 조세라고 선언했던 것도 바로 이 세금이 갖는 장점 때문이었다. 한계효용이론을 주창하여 신고전학파 경제학 성립의 계기를 마련한 레옹 발라(L. Walras)가 토지보유세는 조세라기보다는 국가를 통한 토지의 공동소유의 표현이자 완벽한 정부 수입원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세금을 혐오하는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M. Friedman)이 토지보유세를 '모든 세금 중 가장 덜 나쁜 세금'이라고 평가한 것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도 토지보유세가 모든 세금 중 가장 성장친화적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거나, 효율성과 형평성 양면에서 보유세 강화를 강력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2013년에 IMF에서 나온 한 논문은, 선진국의 경우 부동산 보유세를 GDP의 2퍼센트 이상 수준으로 강화할 것을 권고한다. 그 권고대로 따르자면, 우리나라는 보유세 세수를 최소한 약 19조 2천억 원 늘려야 한다. 그런데 재정개혁특위는 세수 효과가 1조 1천억 원에 불과한 방안을 권고안이랍시고 내놓았으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참으로 옹색한 보유세제 개편 권고안
19조 2천억 원을 당장 증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좀 더 현실적인 방안을 생각해 보자는 견해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19조 2천억 원의 6%도 되지 않는 1조 1천억 원이라니! 재정개혁특위 위원들은 자신들이 어떤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제시했던 'GDP 1%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3조 2천억 원 증세 방안 정도는 제시했어야 옳다. 재정개혁특위는 그 1/3밖에 되지 않는 목표를 제시하면서도 '과세 형평성'과 '부의 불평등'을 거론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이번 재정개혁특위의 결정에는 보유세 강화를 극구 기피하는 청와대 일부 인사들과 경제 관료들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한다. 6월 22일의 개편방안 발표 후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보유세 인상 최종 건의안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맞장구치듯 말한 것을 보면, 이 소문이 낭설은 아닌 듯하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에 성과가 나지 않는 것을 무척 답답해한다고 한다. 소득주도성장의 여러 정책 수단 중 최저임금 인상만 논란이 되고 있는 데 당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소득주도성장의 상징 인물인 경제수석을 내치면서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안쓰럽기는 하지만, 한 가지는 지적하고 싶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부동산 보유세제 개편은 여러 조세 중 하나의 사소한 결함을 해소하거나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을 넘어서 국가 분배체계의 성격을 바꾸는 일이다. 이를 제대로 추진하기만 하면, '부동산 공화국'을 해체하고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며, 결과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이 사실을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했을까? 물론 이렇게 나라의 근본 틀을 바꾸는 경제개혁은 사나운 '이기심의 파도' 위에서 서핑보드를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일이다. 그래도 그렇지 파도가 무서워 아예 들어갈 생각을 안 하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부디 문재인 대통령은 토지공개념을 헌법 가운데 명시하겠다고 결심했던 그때를 기억하기 바란다. 세상을 바꿀 호기(好期)는 쉽게 오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