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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종초(블랙커민)는 니겔라(Nigella)라고도 하는데 원산지는 지중해 쪽으로 알려졌다. 5월경에 흰색과 보라색 꽃을 자랑하며 여린 꽃대에 다 자라도 50~60cm정도 되는 아담한 크기라 보기도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글로 쉽게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신비스러운 모양을 가진 꽃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꽃말은 '안개속의 사랑' 혹은 '꿈길의 애정'이라고 전해진다. 꽃과도 어울리는 느낌을 준다.

흑종초                                                설명하기 어려운 꽃이다.
흑종초 설명하기 어려운 꽃이다. ⓒ 홍광석

꽃도 좋지만 흑종초에 관심을 더 갖게 된 계기는 건강 때문이었다. 2년 전 우연히 텔레비전의 건강프로그램에서 '블랙커민씨드'를 소개하는 것을 보면서 부터였다고 기억한다.

검은 씨앗에는 암, 당뇨, 피부질환 등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티모퀴논이라는 성분이 있다고 한다. 중동 지방에서는 볶아서 음식에 뿌려먹거나 기름을 짜서 치료제로 쓴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마침 우리 집에 많이 피는 흑종초임을 알면서 괜찮겠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국내의 유명 제약회사에서 '블랙커민씨드'의 기름을 캡슐로 만들었다는 뉴스도 그렇지만, 미국의 식품의약청(FDA)에서도 음식에 첨가하여 식용해도 인체에 해가 없다고 했다는 인터넷 소개도 나를 끌었다.

일단 씨앗을 받아 맛을 보았는데 참깨처럼 고소한 맛은 없었지만 거부감도 없었다. 일반적으로 겨울을 나는 식물이 사람의 몸에도 좋은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던 터라 집단 재배를 할 계획을 세우고 지난해 가을 한 평정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씨앗을 뿌렸다.

흑종초                                       안개속의 사랑이라는 꽃말이  그럴듯한 모습이다.
흑종초 안개속의 사랑이라는 꽃말이 그럴듯한 모습이다. ⓒ 홍광석

이른 봄에 파릇파릇 싹을 보이고 다른 풀을 이기는 습성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 지역에서 꽃은 4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여 6월 중순까지 피었는데 무리 지어 핀 꽃밭도 볼만한 풍경이 되었다.

그러나 농사로 시작한 흑종초 재배는 성공하지 못했다. 찾아오는 이들에게 모종을 분양하고 꽃을 보며 감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씨가 여무는 시기를 제대로 못 보고 베어내는 시기를 놓친 것이다.

7월 4일, 햇볕이 나자 32℃의 더위를 무릅쓰고 낫을 들고 달려갔더니 땅 바닥에 검을 씨앗이 수북했고, 조심조심 낫으로 베는데 씨는 다시 우수수 쏟아졌다. 검은깨처럼 볶아서 음식에 뿌려 먹고, 기름을 짜서 비염이 있는 작은 아들에게 모내겠다는 꿈도 우수수 떨어지고 만 것이다.

모든 작물은 심을 시기가 있고 수확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으나 며칠간의 방심이 부른 실패였다. 가뭄에는 익기를 기다리다 넘겼고, 그리고 씨방이 여무는 시기에 닥친 장마에는 손을 쓰지 못하게 했던 날씨 탓도 했으나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몇 홉이라도 건질 수 있기를 기대하며 남은 흑종초를 베어 하우스 안에 검은 천을 깔고 널어놓았는데 과연 얼마나 모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암에 좋으며 그냥 먹어도 인체에 해가 없다는 말에 괜찮겠구나 싶었고, 또 꽃도 보고 씨앗도 챙길 수 있다는 기대에 시험 삼아 재배했던 것인데... 때를 놓친 나의 미숙한 안목을 탓할 뿐이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농사의 실패는 하늘 탓이라고 둘러댈 수 있지만 사람의 판단의 잘못으로 인한 농사의 실패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저 많은 꽃을 본 것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올해 땅에 떨어진 씨앗들은 틀림없이 내년에 더 많은 꽃을 보이리라고 기대해 본다.

꽃을 보기는 쉬워도 농사는 여전히 어렵다. 내가 놓치고 있는 일은 없는지, 또 내가 지켜봐야 할 것들은 없는지 살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흑종초#농사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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