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임 전 차장의 USB(이동식 저장장치)를 찾아내면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에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윗선의 영장은 기각된 데다 행정처가 자료 제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현 법원이 수사를 방해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봉수)는 지난 21일 오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업무방해 등 혐의로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임 전 차장의 USB를 확보했다. 임 전 차장은 문건을 작성한 행정처 판사들과 이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윗선 사이에 있는 인물로 사법농단 수사의 핵심 인물 중 하나다. 앞서 임 전 차장은 문건이 담긴 외장 하드와 업무 수첩을 모두 버렸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에 근무할 당시 자료를 복사해 옮긴 USB엔 법원의 내부조사로 발견된 문건 410개뿐 아니라 임 전 차장의 명의로 작성된 문건들이 대거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USB는 임 전 차장의 변호사 사무실 직원 가방에서 발견됐으며 임 전 차장은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USB임을 시인했다고 밝혀졌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이 임 전 차장의 압수수색 영장과 함께 청구한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김민수 전 심의관 등의 영장을 기각했다. 공모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법원의 꼬리 자르기? 임종헌조차 "나에게만 발부된 게 맞냐"
법원은 '실행자'와 '지시자'의 중간에 있는 '실무 총괄자'인 임 전 차장의 영장만을 발부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의 자택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며 "주거권을 침해할 만큼 혐의 소명이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고, 박 전 처장의 영장 기각에도 혐의 소명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사법농단 관련 문건을 삭제한 혐의(공용서류 손상)를 받는 김 전 심의관 등도 마찬가지로 영장이 기각됐다.
이로 인해 법원이 임 전 차장 선에서 '꼬리 자르기'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심지어 임 전 차장 본인도 자신의 영장만 발부된 데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임 전 차장은 영장 집행 과정에서 검찰 수사진에게 "정말 나에 대해서만 영장이 발부된 게 맞느냐"고 여러 번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법원의 내부조사단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돼 그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했다"는 입장과 맞물린다.
또, 영장을 기각한 이언학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는 2009년부터 2010년 서울고등법원에서 박 전 처장의 배석판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어 기각 배경에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임 전 차장의 USB에서 나온 문건 중 다수가 박 전 처장, 양 전 대법원장에게까지 보고됐다고 보고 있어, 관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다시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 대법원이 검찰의 수사 협조에 미온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검찰은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재판이 포함된 문건들을 발견했으나 법원행정처는 "(자체 조사한) 410개 문건과 관련성이 적다"는 이유로 임의제출을 미루고 있는 상태다. 또, 양 전 대법원장 등 관계자들의 관용차 운행일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도 제출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