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더위를 잠시 식히려고 집 근처 작은 바닷가 마을로 가는 길에 도로 한가운데 누워있는 냥이를 보았다. 냥이는 차가 지나가는데도 꼼짝을 하지 않았고 나는 녀석이 로드킬 당했음을 곧 알아차렸다. 피를 흘린 채 누워있는 냥이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왔다.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녀석을 들어올려 길가 풀숲 깊숙한 곳에 숨기고 곁에 있는 흙으로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스스로 조금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2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몹시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강아지를 키우는 동생네는 갈 수가 없어서 볼 일이 생겨도 늘 밖에서 만나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초보 캣맘으로 지내고 있다.
그때가 시작이었다. 지난해 봄 어느 날, 나는 장을 보러 가느라 큰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길가 식당에서 내놓은 음식물쓰레기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길냥이 한 마리를 만났다. 나는 별 생각없이, 그러나 되도록 조심스레 녀석의 곁을 지나치려 했지만 인기척을 느꼈던지 녀석이 고개를 들고 뒤돌아보았다.
그때 그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입주위에 짜장소스를 묻힌 채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하지만 차마 먹이를 포기할 수 없다는 듯 자리를 뜨지 못하고 나를 쳐다보던 그 얼굴을... 며칠 뒤 집 근처 작은 공터를 지나다가 길냥이 한 마리를 만났고 그 녀석이 낳은 새끼 한 마리, 그리고 또다른 냥이 한 마리. 그렇게 세 마리의 밥을 주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번 저녁무렵에 공터에서 밥을 주었다. 나는 곁에서 지켜보다가 밥을 다 먹고나면 잠시 녀석들과 눈을 맞추고 그릇을 챙겨 집에 들어왔다. 초가을에 어미는 또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꼬물이들까지 다섯 마리를 챙겨야 했다.
가을이 깊어가던 11월 어느 날, 그날도 공터에서 밥을 먹는 녀석들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맞은 편 아파트에서 한 노인이 걸어나왔다.
"고양이 밥 주느냐?""네...""왜 주느냐?""불쌍하잖아요.""저것들이 아파트로 넘어들어와서 똥을 얼마나 싸놓는지 아느냐.""이, 아이들이 그러던가요?""당신이 치워줄 거냐."노인은 주위 아파트에까지 다 들릴 만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녀석들이 먹고 있던 밥그릇을 낚아채서 멀리 던져버리고는 잡아 죽일 듯이 사납게 녀석들을 쫓아냈다. 한바탕 난리를 치던 노인은 결국 혼잣말처럼 욕지거리를 한 마디 내뱉고는 아파트로 들어갔다.
처음 겪는 일에 잠시 황망하던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노인이 느끼는 불편함보다는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조차 지니지 못한 노인의 지난 시간들이 가엾고 불쌍했다. 밥을 먹다 쫓겨나간 녀석들이 몹시 걱정되어 한참 동안 공터 주변을 찾아 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긴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공터에서 다행히 녀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녀석들을 공터 주변에 세워놓은 차 밑으로 불러내어 밥을 주었다.
겨울이 왔다. 추위가 심해질수록 내 마음도 무거워만 갔다. 차 밑에서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밥을 먹고 있는 녀석들을 보며 '차라리 집으로 데리고 갈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여행으로 며칠씩 자주 집을 비우고 무엇보다 밥은 주지만 녀석들을 끝까지 책임질 자신감이 선뜻 들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동장군이 대단한 위세를 부리던 어느 이른 아침, 일주일에 한 번 서는 집 근처 번개시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가는 길에 버릇처럼 공터를 둘러보는데 어미가 두 번째 낳은 새끼중 한 마리가 구석진 시멘트 턱 위에 누워 있었다.
'이 추운 날 얘가 왜 여기서 자고 있을까.'곁에 가서 살짝 건드려 보았다. 그런데 녀석의 몸은 이미 단단한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드물게 온몸의 털이 새까만 녀석이었다. 전날 저녁에도 나를 보고 팔짝팔짝 뛰어와서는 맛있게 밥을 다 먹고 나를 올려다보며 눈빛을 반짝였었다. 나는 한동안 마음을 앓았다.
지금 내가 밥을 주고 있는 길냥이는 세 마리다. 흰색 냥이는 지난해 봄, 어미가 낳은 새끼 세 마리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녀석이고 갈색 얼룩무늬 한 마리는 같은 어미가 가을에 낳은 두 마리 중 살아남은 녀석이다. 또 한 마리는 흰색 냥이하고 같이 1년 넘게 밥을 주고 있다. 어미는 해가 바뀐 뒤 새끼들을 두고 다른 곳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녀석들은 날마다 차 밑에서 나를 기다린다. 같은 어미에게서 차례로 태어난 두 녀석은 사이좋게 밥도 나눠먹고 어딜 가든 꼭 붙어다닌다. 여행으로 집을 비울 때는 마음이 몹시 무겁다.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인간들로부터 시도때도 없이 가해지는 위해를 견뎌내는 아이들.
부모형제의 죽음을 눈 앞에서 보며 절대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하듯 살아가는 길냥이들을 생각해본다. 언제까지 녀석들에게 밥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녀석들이 내 곁에 있고 내가 이곳을 떠나지 않는 한, 나는 녀석들을 챙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