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청와대가 "적절한 자리에 적절한 인물이면 협치 내각을 구성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의 요청으로 '협치 내각' 구성을 고려해왔으며, "입법 문제에 있어 야당과 협치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설명이다.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번 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공석) 인선 발표를 시작으로, 개각을 순차적으로 구체화할 예정이다.
20대 국회는 집권당인 민주당이 전체 의석수의 43%를 차지하는, 전형적인 여소야대 국회다. 전체 국회의원 299명 중 더불어민주당은 과반에 못 미치는 129석으로, 여기에 민주평화당(14석)과 정의당(5석) 의석을 합쳐도 과반에 미달한다. 국회선진화법상 쟁점 법안의 경우 통과에 180석(정족수의 60%이상)이 필요하다. 결국 이러한 구상은 쟁점 법안 통과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협치 내각'을 위해선 야당 협조가 필수적이나, 자유한국당(112석)과 바른미래당(30석)은 24일 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립·반목·보복의 정치를 청산한다면 한국당 차원에서 검토하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단계가 아니다. 아직까지 적폐청산이란 미명 하에 끊임없는 정치 보복이 계속되고 있다(김성태 원내대표)", "그 진정성에 의문이다. 장관 자리 한 두 개 내어주며 협치로 포장하려는 의도라면 안 된다(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지적이다.
이에 반해 민주평화당과 정의당(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 등은 가능성을 더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이용주 평화당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브리핑을 통해 "평화당은 '협치 내각'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며 "민주당·청와대가 이를 공식 제안한다면 당 차원의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뜻이 있다면 조속한 시일 내 제안해달라"고 말했다. 보수 색채 야당이 이에 미온적인 가운데, 청와대가 밝힌 '협치 내각'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한국당 포함 여부 두고 "꼼수에 불과" vs. "열어 놓아야"우선 여당 의원들은 그 취지에 공감의 뜻을 밝혔다.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병두 민주당 의원(서울 동대문구을)은 23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문 대통령의 답답한 마음을 이해한다. 개혁 입법에 속도가 붙지 않으면, 국정 운영의 동력이 상실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24일 회의에서 "규제혁신 법안과 자영업자를 위한 민생입법이 최대한 빨리 처리될 수 있게, 야당의 적극적 협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각 요인이 있는 일부 장관 자리에 야당 인사도 입각시킬 수 있다는 '협치 내각' 방침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 법무부 장관을 지내기도 한 6선의 천정배 평화당 의원(광주 서구을)은 이날 본인의 페이스북 등 SNS 계정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자유한국당에까지 장관직을 주겠다며 '협치내각'이란 것을 꺼냈다. 이건 정확하게 말해 한국당과의 대연정 시도"라며 "고민은 이해하나, 꼼수에 불과하다. 안 하느니만 못하다"라고 비판했다.
천 의원은 이어 자유한국당을 '적폐세력', '국정농단세력'으로 규정지으며 "대연정은 촛불국민혁명의 결과로 만들어진 이 정부가 뭘 해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뭘 안 하면서도 비난을 나눠지겠다는 꼼수에 불과하다. 뭐라고 말을 해도 나눠먹기 야합 이상이 될 수 없다"고 일갈했다. "민주평화당 입장에서도 힘을 합치자는 제안이 고맙긴 하나, 국회에서의 협치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는 '선 긋기'다.
같은 당 소속이자 국회 농해수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주홍 의원(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황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만시지탄'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야당과의 협치를 공고히 하고 이를 제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청와대의 이 같은 방침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황 의원은 한국당 입각 가능성에 대해 묻자 "제가 논평할 이슈는 아닌 것 같다"면서도 "협치의 문을 누구에겐 열고, 누구에게 닫아둔다는 건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협치를 하려면 의석수가 많은 정당과 먼저 얘기해봐야 하지 않겠는가"라 되물었다. 민주당 강병원 원내대변인 역시 24일 "능력 있는 분이면 정당을 가리지 말고 (내각에) 모시자는 취지로 이해했다. 자유한국당도 특별히 배제하진 않은 것 같다"며 가능성은 넓게 열려있다고 설명했다.
'경제 정책' 두고 쓴소리도... "경제 관료들, 전면 인적 쇄신해야"아직 개각의 폭과 시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번 개각은 통상 '문재인 정부 2기 내각'으로 읽힌다. 관련해 2기 정부가 특히 사회·경제 정책 기조를 더 개혁적으로 가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앞서 18일 진보적 성향의 대학 교수와 시민단체 활동가 등 320여 명은 "문재인 정부가 뿌리 깊은 적폐구조는 건드리지 않은 채 약간의 인적 청산과 '개혁 시늉'만 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대통령은 과거 정책이 주는 달콤한 마약을 거부해야 할 것"이라며 더 과감한 재벌개혁·부동산개혁 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관련 기사:
323명 지식인의 우려 "문재인 정부, 촛불 믿고 개혁하라").
여기 이름을 올렸던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현 정부가 경제성장 3% 같은 단기 성과에 매달릴 게 아니라, 재벌 개혁과 같은 구조적 개혁을 해야 한다는 걸 국민들에 설득해야 한다"며 "현 정부의 경제팀 인사를 전면적으로 쇄신해야 한다. 경제부총리와 금융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과감하게 모두 바꿔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성명 중 "구태에 젖은 경제 관료들에 개혁을 기대하는 건 착각"이란 부분과 같은 맥락이다.
박 교수는 이어 '협치 내각'과 관련해 "취지는 이해하나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부정적 뉘앙스로 답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야당과의 협치는 정책에서의 과감한 전환과 함께 가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박 교수는 관련해 "정책을 바꾸지 않은 채로, 야당 입각을 전제로 한 '협치 내각'만 얘기하면 자칫하다가는 자리 나눠먹기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에 대해 일단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논의를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김의겸 대변인은 24일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상대방이 있는 문제다. 청와대와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성격의 일은 아니"라면서 "지금 정치권에서 여러 생각을 하는 것으로 안다. 논의가 진행되어가면서 성사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에서 주도적으로 논의를 진행한다고 하니 지켜보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