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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꿈이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아침 8시 30분, 독서상담 시간에 만난 여고생의 이야기다.

"사실 꿈은 있었어요. 그런데 포기해버리는 편이 낫겠더라고요. 제 성적과도 맞지 않고요. 그래도 그 근처에라도 가려고 독서나 공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꿈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한계를 짓는 일이고, 여러 번 고비를 맞아 포기해 버렸다는 뜻이다. 강렬하게 빠지는 일을 찾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반대로 호기심이 너무 많아 하루에도 꿈이 열두 번씩 바뀌는 친구가 있을 수 있다. 거의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부딪치고 때론 엎어지면서 진짜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진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가 그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써내려간 책이 있다면, 어른이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친구가 경험한 내용으로 쓴 책이 있다면 읽어볼래?"
"(잠시 머뭇거리더니) 네."


머뭇거림은 그런 책이 없을 거라는 의심이었던 것 같다.

14살, 평생 하고 싶은 일을 만나다

<소녀, 적정기술을 탐하다> 표지
 <소녀, 적정기술을 탐하다> 표지
ⓒ 뜨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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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적정기술을 탐하다>의 저자는 출판 당시(2013년) 17세인 조승연 학생이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 초청된 포항공대 장수영 교수의 특강을 들으며 자신의 평생 꿈을 찾았다.

평소 디자인과 공학을 좋아하던 저자는 소외된 90%의 이웃을 돕는 적정기술을 발견하고 인생이 바뀌었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멀리까지 물을 길러 오는 어린이는 울퉁불퉁한 바닥에 무거운 물통을 머리에 이거나 들어서 옮기는 것을 힘들어했다. 무거운 물통을 편하게 운반할 수 있는, 아프리카 환경에 적절한 Q드럼을 제작하여 보급한 것이 적정기술의 하나다.

"디자인과 공학에서 소외된 90%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들이 사는 환경에 적정한 제품을 디자인과 공학을 통해 만드는 것이죠. 적정기술은 36.5도,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따뜻한 기술, 착한 기술입니다."(18쪽)

전기가 없는 곳에서 과일을 오랫동안 시원하게 보관하기 위해 만든 팟인팟 쿨러도 적정기술이다. 물과 흙이 서로 열을 빼앗는 간단한 과학 원리를 이용한 기술이다. 적정 기술의 가치는 구매력이 있는 상위 10%가 아닌 소외된 많은 사람에게 그 지역 여건에 맞고 지속 가능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점이다.

가뭄이 심한 아프리카의 농사에 도움이 되는 전기 물펌프를 지원하는 것은 적절한 일일까? 고마운 일이지만, 아프리카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 더 많다. 그 환경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지원이 적절한 기술이 된다.

일단 도전하는 승연이

책은 적정기술에 대한 소개보다 꿈을 찾아가는 승연이의 도전에 많은 비중을 둔다. 승연이는 강의를 들었던 교수에게 궁금한 점을 수도 없이 메일링 했고, 포트폴리오로 정리, 적정기술에 대한 논문을 작성, 실제 적정기술이 필요한 친구를 위해 설계를 해보는 등 꿈을 기록하고, 실행한다. 그 과정에서 적정기술에 대한 책을 찾아 읽고, 결국 자신이 적정기술에 대한 책을 쓰기까지 했다.

승연이는 개발도상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변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안내견을 살 경제적 여력이 없는 장애인을 위해 진동으로 길 찾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설계한다. 감각통합장애 친구를 위한 신발 깔창을 설계해서 직접 신겨보기도 하는 등 꿈에 대한 저자의 자세는 나이를 불문하고 배워야 할 순수한 열정이다.

그는 대학생만 참여한다는 '소외된 90%와 함께하는 공학설계 아카데미'에도 참가해서 지식과 마음을 다지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인연을 맺은 장수영 교수를 졸라 '지세이버(게르의 난방시스템)'라는 적정기술을 실현하는 몽골을 직접 보고 온다. 적정기술이 실제로 사람과 마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직접 보고 느낀다.

승연 학생이 특별한 것일까? 아주 특별한 친구여서 어른도 생각하기 힘든 과정을 실현해 가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승연 학생이 특별하다는 생각보다, 자신이 진심으로 꾸는 꿈이 저자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전하는 승연이게도 찾아오는 고민과 꿈을 대하는 자세

그러나 도전하는 승연이에게도 헤매는 일은 생긴다. 적정기술을 전공하는 학과도 없고, 뚜렷하게 먼저 길을 걸어간 선배도 없다. 단지 희망 직업이 아닌, '어떻게 살지, 누구를 위해 살지'를 정했는데, 그 길이 희미했다.

적정기술은 규모의 기술에 밀려 한물 갔으니, 남들 하는 멋진 직업을 찾으라는 조언을 듣고 고민에 빠진 적도 있다고 고백하는 승연이다. 승연이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깨끗한 물이 필요한 캄보디아를 어떻게 바꿀지, 아이티의 잃어버린 숲을 어떻게 찾을지 생각만 해도 기쁘고 간절해서 걱정 따위는 금세 사라졌다. '고민 없는 비전에는 기쁨이 없다'는 승연이의 마음가짐에 한 번 더 놀란다.

꿈이 없다는 친구에게 "힘을 내라", "적당히 살자", "너만 그러는 게 아니야", "인생 별 거 없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나도 모르게 위와 같은 말을 내뱉곤 했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말이라며 위로하기도 하고, 응원하기도 했다고 생각했다.

공허한 메아리였겠지? 조승연 저자의 <소녀, 적정기술을 탐하다>는 진짜 꿈을 탐하는 방법과 마음이 담겼다. 서두에 언급한 독서상담을 받은 여고생의 꿈은 아직도 미정이다. 다행히 그 친구에게 섣불리 응원하거나 위로하지 않았다. 그 친구도 무언가를 탐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찾았다. '적정기술'이 소외받는 90%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꿈을 찾는 우리 청소년에게 확신을 살리는 길이 된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운영 중인 독서IN(www.readin.or.kr) 홈페이지 독서카페에 중복 게재합니다.



소녀, 적정기술을 탐하다

조승연 지음, 뜨인돌(2013)


태그:#황왕용, #조승연, #소녀, 적정기술을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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