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생태계 보물섬으로 불리는 월평공원에는 다양한 생물이 번식하고 미호종개, 수리부엉이, 솔부엉이, 수달, 삵 등 다양한 멸종위기 동식물이 서식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대전시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작은 숲과 하천들을 포함한 월평공원은 자연의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한다.
아마존이 전 세계의 허파로 비유되듯 월평공원은 대전의 허파로 불리기까지 한다. 인공적으로 조림된 한밭수목원에 비해 단위면적당 약 10배의 산소가 공급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최근 미세먼지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도시녹지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월평공원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월평공원에 매우 희귀한 새가 올여름 찾아와 번식을 마쳤다. 국내에 매우 드물게 서식하는 여름 철새로 알려진 호반새가 월평공원을 찾은 것이다. 6월 월평공원에 찾아와 짝짓기와 번식을 마친 호반새는 지난 28일 이소를 마쳤다.
호반새가 월평공원에 찾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6년 진행한 대전시 자연환경조사에서조차 기록되지 않은 종이다. 이렇게 특별한 호반새는 산간 계곡이 있는 곳에 주로 번식한다. 월평공원은 작은 산이지만 물이 많아 호반새에게 적절한 서식처가 된 듯하다. 적갈색의 몸을 보고 붙여진 별칭이 불새인데, 이 새는 계곡에 서식하는 개구리, 가재 등의 다양한 동물을 사냥한다.
이렇게 희귀한 호반새는 계룡산 깃대종으로 지정되었다. 깃대종은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할 수 있는 중요 동식물로 유엔환경계획에서 만든 개념이다. 깃대종으로 선정될 정도의 생태적 가치가 있는 종인 것이다. 호반새는 주로 계곡이 있는 울창한 숲에서 생활하며 나무구멍에 둥지를 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평공원의 산림이 호반새의 서식조건에 만족할 정도로 울창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번식기에는 많은 먹이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월평공원이 개구리 등의 먹이가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반새 위협하는 개발계획... 전면 수정 필요해
월평공원은 호반새와 같은 희귀새가 번식할 만큼 자연환경이 매우 우수하다. 하지만 월평공원을 중심으로 대규모 개발계획 2개가 검토 중이거나 실시 중이다. 갑천친수구역 개발로 약 5500세대의 아파트가 건설 중으로 3블록은 최근 분양을 시작했다. 다행히 나머지 5개 블록은 민관협의회 결정을 따르기로 결정되었다. 또 민간특례사업으로만 약 3000세대 아파트 건설을 계획 중이다.
대규모 아파트가 건설되면 월평공원의 생태계는 또 한 번 심각한 침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관련 기사 :
대전 종교계 "월평공원·갑천지구 대규모 아파트건설 중단")
2008년 시작된 동서관통도로 건설은 산림청 희귀식물로 지정돼 월평공원에서 서식하던 이삭귀개와 땅귀개를 멸종시킨 전례가 있다. 식충식물이었던 이삭귀개와 땅귀개 서식지로 관통도로가 지나가면서 사라진 것이다. 전국에 여러 곳(10지점 내외)의 서식처만 남아 있다는 이삭귀개와 땅귀개의 서식처 하나를 없애버린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호반새의 번식으로 월평공원의 생태적 가치는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생태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종은 그동안 월평공원에서 수도 없이 관찰되어 왔다. 올해 호반새는 번식을 무사히 마쳤기 때문에 10월경 남하하여 월동지에서 겨울을 보내고 다시 여름 월평공원을 찾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개발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호반새는 번식지로 월평공원을 선택하기 어려워진다. 숲과 계곡이 잘 보전되어야 하는 서식특성 때문이다. 당장 내년까지는 가능하겠지만, 개발계획이 살아 있는 한 풍전등화 같은 위태로운 번식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필자도 월평공원에 호반새가 번식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고 싶었지만 한번도 찾지 않았다. 호반새가 월평공원에서 서식하는 데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번식에 성공해서 내년에 꼭 다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년뿐 아니라 앞으로 월평공원에서 호반새를 만나기 위해서 민간특례사업이나 갑천친수구역 사업은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