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가 노무현 대통령의 전화까지 감청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기무사는 노무현 대통령이 윤광웅 당시 국방부장관과 통화하는 것을 감청하였는데, 대통령은 당시 민정수석(문재인 대통령)에 관한 업무를 국방부장관과 논의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기무사의 도·감청은 주로 군용 유선 전화와 군 회선을 이용하는 핸드폰을 상대로 이뤄졌으며, 2007년부터는 팩스와 이메일도 감시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기무사의 도·감청은 주로 210기무부대(감청담당)이 담당했는데, 전화 감청은 부대 내 통신단에서 선로를 따서 녹음하는 형태로 이뤄졌습니다. 국방부장관이 사용하는 유선 전화가 군용 전화니 감청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기무사가 첩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도·감청이 필요하다고 해도, 대통령과 장관의 긴밀한 국정 통화를 감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대통령과 장관의 지휘를 받아야 할 기무사가 군 통수권자와 지휘권자를 감시했다는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다는 오만함이 그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 노태우 정권 때 친위쿠데타 기도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에 나온 친위쿠데타는 박근혜 정권이 아닌 노태우 정권 때도 계획됐습니다.
1989년 노태우 정권 시절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는 서울 용산 서빙고분실에 비밀 사무실을 차리고, 유사시 비상계엄을 통한 친위쿠데타를 계획했습니다.
보안사는 친위쿠데타의 걸림돌이 될 반정부 인사 리스트를 만들고, 이들을 사찰했습니다. '청명 계획'은 이들을 감시하다가 비상계엄 D데이 전후로 전원 검거한다는 예비검속 작전명입니다.
보안사의 '청명계획'은 윤석양 이병의 폭로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윤석양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1990년 5월에 군에 입대합니다. 윤 이병은 자대 배치를 받자 보안부대에 끌려가 조직원의 신상을 자백하라고 심문당했고, 대학가에서 프락치로 활동하며 신임을 얻고 보안사로 이동합니다.
보안사에서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은 9월 23일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을 비롯해 민간인 1303명을 사찰한 카드와 컴퓨터 디스켓 3통 등을 가방에 넣고 보안사를 탈출합니다.
윤 이병은 탈출 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기관지 <언론노보> 기자로 일하던 대학 1년 선배인 양정철(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1990년 10월 4일 한국기독교협의회 소속 인권 위원회 사무실에서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내용을 폭로합니다.
친위쿠데타 발생 직전 청명 대상자 전원 검거 계획 수립 당시 보안사는 국내 저명 민주인사들을 '청명 대상자'로 분류했습니다. 보안사는 이들을 A급, B급, C급으로 3등분하고 친위 쿠데타 발생 직전에 전원 검거한다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보안사가 A급으로 분류한 청명대상자>
노무현 대통령(당시 통일민주당 의원), 이해찬 전 국무총리(당시 평화민주당 의원), 이상수 노동부 장관(당시 평화민주당 의원),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당시 진보정치연합 공동대표), 임종석 의원(당시 전대협 의장), 문익환 목사, 이창복 전 의원(당시 전민련 상임공동의장), 유인태 의원(당시 진보정치연합 사무처장), 이태복 전 노동부 장관(당시 주간 <노동자신문> 편집실장), 정윤광 당시 지하철노조 위원장 등 총 109명
<보안사가 B급으로 분류한 청명 대상자 >
김수행 서울대 교수,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 오세철 연세대 교수,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김진균 서울대 교수 등 학계 민주인사를 비롯해 한승헌 전 감사원장, 박원순 변호사,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 김갑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 고영구 전 국정원장을 비롯한 민변 회원 등 총 315명
<보안사가 C급으로 분류한 청명대상자>
김수환 추기경, 김승훈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함세웅 신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문정현 신부, 문규현 신부, 김성수 성공회 대주교, 윤정현 성공회 신부, 박형규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원형수 강경 제일감리교회 목사, 홍근수 서울 향린교회 목사, 불교계의 송월주·정토, 이용성 민중불교운동연합(민불련) 의장 등 종교계 인사와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 김중배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이근성 기자협회 회장 등 499명보안사는 '청명 대상자'에 대해 아래와 같은 11개 항목의 정보를 수집해 사찰하고 관리했습니다.
<보안사의 청명 대상자 수집 정보>
▲ 인적사항
▲ 주거환경
▲ 동거인 현황
▲ 활동반경(차량·직장 유무, 주요 출입지역)
▲ 예상 은신처
▲ 주거지 약도(주변 약도·주거지 요도·집안 가구 배치도 포함)
▲ 검거조 편성 및 장비
▲ 인수 장소
▲ 연행 시 유의사항1989년 당시 노무현 의원 아파트까지 사찰보안사가 A급으로 분류해 사찰한 민간인 중에는 노무현 대통령(당시 통일민주당 의원)도 있었습니다.
보안사가 작성한 노무현 의원의 개인 파일에는, 1989년 당시 거주하던 부산 남구 남천동 S아파트 내부 도면까지 그려져 있었습니다.
파일을 보면 보안사는 노무현 의원을 검거하기 위해 아파트 내부 방 구조, 화장실과 베란다 위치 등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보안사의 파일에는 미행을 하면서 얻었던 정보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노무현 의원이 평소 몇 시에 집을 나서고 귀가하는지 시각뿐만 아니라 타고 다니는 차량과 걸어 다니는 동선까지 있었습니다.
보안사는 노무현 의원이 평상시 자주 만나는 사람의 명단과 연락처도 확보했습니다. 보안사는 노무현 의원을 검거하기 위해 예상 도주로와 예상 은신처까지 모두 기록해 놓았습니다.
만약, 보안사의 쿠데타가 실행됐다면, 노무현 의원은 가장 먼저 검거됐을 겁니다. 이런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기무사령관의 독대 보고를 받지 않았고, 정치적으로 기무사를 이용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무사, 노무현 대통령 사망 소식에 박수까지 치며 환호 보안사는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 이후 기무사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름만 바뀌었지, 전혀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였을 당시 속보를 본 기무사 요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고도 합니다.
2012년 당시 기무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노무현 자서전'을 가지고 있자 교관이 '이러한 불온서적을 읽어도 괜찮은가?'라고 추궁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전직 대통령이 사망했는데도 박수를 치고, 전직 대통령의 자서전을 가리켜 '불온서적'이라고 말하는 기무사를 보면, 그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잘 드러납니다.
기무사를 철저하게 군 조직으로만 대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다르게 기무사는 스스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주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무사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함께 권력을 유지하지도 않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독히도 미웠을 겁니다.
<기무부대가(歌)>
(중략)
겨레와 국토수호 우리의 사명
청춘의 몸과 마음 모두 바쳤다
역사가 우리를 명령하는 날
범같이 사자같이 달려나가리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국군은 국민의 군대로 국민의 명령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존재다. 음지에서 첩보를 수행해야 할 기관이 '역사의 명령'을 운운하며 범과 사자처럼 달려 나가겠다는 것은 기무사의 본질을 매우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라며 "국민이 아니라 권력을 바라보는 정치군인의 집합소를 일소하지 못한다면 국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요원한 일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12.12 쿠데타의 주역으로 권력을 쟁취했던 기무사.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일부 간부들은 아직도 '우리가 한 번 갈아엎어야 하는데'라고 술자리에서 서슴없이 말한다고 합니다. 국민이 명령합니다. 이제 당신들은 역사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독립미디어 ‘아이엠피터TV’(theimpeter.com)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