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서점 어린이 코너 매대에 가면 눈에 확 띄는 책이 있다. 연두색 표지 바탕에 파란 수트를 입은 파란 파마머리의 소년이 그려진 책이다. 표지만 보면 어드벤처물 만화 같다. 그래서인지 그 책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를 여럿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비닐로 덮여 있어 매대에서 읽어볼 수도 없다.
엊그제 분당의 한 대형서점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연두색 책을 사달라는 아이에게 "만화책은 그만"이라는 엄마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다고 물러날 아이가 아니다.
"아냐. 친구네에서 1편 봤는데 만화책 아냐. '복제인간'의 고민과 성장을 담았던데?"인터넷에서 책 정보를 찾아보니 '제5회 스토리킹' 수상작인 '임은하'의 <복제인간 윤봉구>의 후속작이었다. 그제야 제목 밑에 부제처럼 '2 버킷리스트'라고 쓰인 게 보였다.
마침 동화를 읽고 싶은 날이라 여러 권을 골라 시원한 카페에서 읽었다. 이 책을 먼저 들었는데 단숨에 읽어버렸다. 카페에서 연두색 어린이 책을 펴놓고 읽는 흰머리의 아저씨라니. 그것도 '킥킥' 대다가, 눈물이 '핑' 도는지 손수건으로 눈을 찍어낸다. 그만큼 몰입하게 만든 이야기였다.
천재 과학자를 엄마로 둔 복제인간 주인공과 그의 형. 주인공의 비밀을 함께 간직해주고 이해해주는 친구들. 그리고 그를 진정으로 돕는 어른들이 나오는. 다분히 동화적인 설계가 눈에 띄는 전개지만 까다로운 어른의 눈을 잡아끄는 구석도 많았다.
그래, 아이들은 저런 고민을 할 거야. 아, 어른들이 힘들면 아이들은 더 힘들 수도 있겠구나. 나도 저렇게 감상에 젖었을 때가 있었는데 하는. 방송작가 출신이 쓴 책답게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동화였다. 심지어 반백 년 산 나도 감정 이입하며 읽었다. 특히 주인공의 엄마에게.
몇몇 설정과 회상 장면을 통해 이 책이 전편에 이은 2편이라는 것을 얘기해 준다. 그러나 1편을 안 읽었어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2편이었다. 어떤 시리즈물은 전편을 읽지 않으면 이해 안 되는 설정이나 인물이 나오곤 하는데 이 책은 전편의 구성을 이야기에 잘 녹여내어 굳이 1편을 읽지 않아도 무리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아이들의 몸이 작다고 고민의 크기까지 작지는 않다주인공은 과거 여러 실험에 이용된 복제 동물이 일찍 죽는다는 연구결과를 보고 혹시 자기도 일찍 죽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한다. 그래서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 게 '씨줄'이고 그 와중에 일어나는 여러 좌충우돌을 '날줄'로 엮였다.
죽음을 소재로 담고 있어서 그런지 "복제 인간도 신이 보살펴주실까?", "복제 인간의 복제 영혼도 받아 주는 천국" 같은 대사가 여러 번 나온다. 생각 거리를 주는 대목이다. 복제 인간이 있다면 그의 영혼도 복제일까 아니면 정체성을 가진 또 하나의 영혼일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영화 <아일랜드>에서는 복제 인간은 독립된 정체성을 가진 인간으로 그렸다. 물론 주인공 '윤봉구'도 그렇고. 복제 인간일지는 모르겠지만 생각과 고민은 어엿한 하나의 인간임을 이야기 전체에 걸쳐 녹여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봉구처럼 애매한 시기, 성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시절, 몸이 커가며 정체성의 고민도 커가는 보통 어린이의 고민을 담고 있다. 주인공 봉구는 '복제인간'으로 태어난 자기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나는 누구고 왜 태어났을까?"어른들은 아이답지 않은 고민이라 하겠지만 사실 아이들도 그런 고민을 한다.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라. 난 어렸을 때 그랬다. 그런 생각을 부모나 어른들에게 털어놓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그런 속마음을 또래 친구들과 나눈다.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처럼.
"거짓말보다 비밀이 생긴 게 더 섭섭한가 봐." 주인공과 친구들이 가족들 몰래 떠난 비밀 여행을 들킨 후에 엄마가 보인 반응이다. 물론 거짓말도 나쁘지만, 비밀이 생긴 아이에게서 이제 품을 떠나려는 자식을 보는 심정이 와 닿았다. 부모에게 감추는 게 많아지면 점점 부모에게서 멀어지게 되니까.
제목만 보고 과학적 소재를 담고 있나 했지만, 과학 이슈는 안 보였다. 적어도 2편에서는. 다만 가족의 사랑과 친구와의 우정을 통해 성장해 가는 평범한 어린이의 고민을 담고 있다. 1편을 읽지 않아도 이해가 되는 설정과 등장인물이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니 1장이 읽고 싶어졌다.
봉구가 어떻게 태어났고, 왜 짜장면 요리사가 되고 싶은지. 형이 아프다던데 그게 봉구가 '복제인간'이 된 것과 연관이 있는지 등등이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어른들에게, 어린이 책들을 표지로만 판단하지 말기를. 그 안에 반전이 있을 수도 있으니.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오피니언뉴스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