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르 난다. "따르릉." 그녀다. 나오란다. 빙수가 먹고 싶단다. 성질 급한 그녀가 저기 둔산동 앞방뒷방 커피숍에서 눈을 부라리며 기다리고 있다. 서둘러 옷을 입었다. 늦었다. 뛰어간다. 땀이 비 오듯 난다. 간신히 커피숍에 도착했다. 구석 창가에 앉은 그녀가 보인다. "늦었네?" 살짝 눈을 흘긴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당신은 멋 적은 듯 오도카니 서 있다 돌아갈 것인가? 아니다. 그녀 옆에 앉았다. 빙수를 한 그릇 시켰다. 카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인테리어가 산뜻하다. 특히 벽면 가득 메운 초록 빛깔이 신선하다.
가만 있자. 선반 위 모서리를 바라봤다. 무언가 떨어질 듯 비스듬히 놓여있다. 저게 뭐지? 책이다. 제목을 보려고 집어 들었다. <행복한 페미니즘>. 벨 훅스가 저자다. 'FEMINISM IS FOR EVERYBODY'란 영어 제목도 눈에 띈다. 페미니즘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무슨 소린가 서둘러 읽었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이념이 아니란다. '하나의 통일된 규범을 없애자'는 운동이란다. 저자는 페미니스트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사랑과 의사소통 능력이다. 오해하지 말자. 그녀가 정의하는 사랑은 다르다. 가부장제가 강요한 희생적 사랑이 아니다.
"미래 지향적 페미니즘은 지혜롭고 사랑이 풍부한 정견이다. 페미니즘의 영혼은 지배를 종식시키고자 하는 염원이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지배와 강압에 기반한 관계 속에서 결코 뿌리내릴 수 없다. 지배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P.224∼225)
페미니스트들이 꿈꾸는 세상은 이렇다. 개별적 특성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꿈꾼다. 바로 이글처럼.
여성: "나는 활동적인 일을 좋아하니까 내가 직장을 가질게."
남성: "다른 사람을 돌보는 걸 좋아하니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
어떤가.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페미니즘은 증오의 철학이 아니다. 사랑에 기반한 철학이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을 향한 오해를 이렇게 말한다.
"돌이켜보건대 사랑에 관한, 특히 이성애와 관련하여 우리는 긍정적인 페미니스트 담론을 생산하지 못하였다. 이런 탓에 주류 매스미디어에 페미니즘 운동을 사랑보다는 증오에 기반한 정견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빌미를 주었다."(P.224)
진정한 사랑은 상대에 대한 앎과 관용에 뿌리를 둔다. 사랑은 인정과 돌봄과 책임과 헌신과 지식을 결합한 것이다. 정의 없이 사랑을 할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사랑을 이렇게 이해할 때 스스로 변화시킬 힘을 가진다.
또한 지배에 반대할 힘을 얻는다. 이런 이유로 페미니스트 정치학은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일이다. 내 말이 아니다. 벨 훅스가 한 말이다. 다시 사랑을 시작하자. 페미니즘의 심장에 과녁을 조절하자. 벨 훅스처럼.
덧붙이는 글 | 행복한페니즘 , 큰나출판사, 2002
개인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