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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터넷 이용자 2명 중 1명은 인스타그램 유저인 시대. #인스타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서로 '좋아요' 눌러주며 상부상조하고, 대놓고 '예쁘다' 호들갑 떨고, '시시하지만 심각한' 육아 고민을 유난으로 보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줄 동지들이 인스타그램에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올리기가 일과의 소소하고 큰 재미를 차지했다.
서로 '좋아요' 눌러주며 상부상조하고, 대놓고 '예쁘다' 호들갑 떨고, '시시하지만 심각한' 육아 고민을 유난으로 보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줄 동지들이 인스타그램에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올리기가 일과의 소소하고 큰 재미를 차지했다. ⓒ unsplash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타임라인을 훑는다. 엄마는 새하얀 원피스, 한 듯 안 한 듯 꼼꼼하게 화장한 얼굴. 네다섯 살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겨울왕국 캐릭터 옷이 아닌 엄마가 엄선해 골랐을 북유럽 스타일 원피스. 원색의 장난감 하나 없이 깔끔하고 널찍한 집안에서 웃고 있는 다정한 가족.

조회수 1만이 넘는 동영상이 눈길을 끈다. 내 딸과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우리 아이 밥 양의 두세 배는 되는 양을 우적우적 먹는다. 혼자 젓가락질하고 듬뿍 집어 올린 나물을 입안 가득 넣는다. 순식간에 확확 준다.

우리 애 같으면, 몇 숟갈 먹다가 '안 먹을래요' 하고 결국 혼나 꺼이꺼이 울었을 텐데 엄마의 여유가 부럽다. '먹방' 몇 개를 넋 놓고 봤다. 한숨 쉬고 닫는다. 팔로워 수십만 명 되는 계정들. 부럽고 좋아 보이는데, 뒤끝이 텁텁하다. 오늘의 관음증 충족은 여기까지.
           
엄마의 인스타그램      

아기가 태어난 후 인스타그램에 발을 디뎠다. 오물오물 젖 빨고, 천사 같은 얼굴로 잠자고, 물티슈 다 뽑아 저지레하고, 참새처럼 받아먹고, 응가 싼다고 힘주는 표정까지 무엇하나 놓칠 수 없었다. 아이에게 오감놀이 시켜줄 때나 정성스럽게 이유식을 만든 후에도 반드시 인증샷을 남겼다. 자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 '좋아요' 눌러주며 상부상조하고, 대놓고 '예쁘다' 호들갑 떨고, '시시하지만 심각한' 육아 고민을 유난으로 보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줄 동지들이 인스타그램에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올리기가 일과의 소소하고 큰 재미를 차지했다.

종일 만나는 사람도, 얘기 나눌 사람도 없던 나날. 아이 사진 올리고, '귀엽다, 공감 간다' 이런 말이라도 듣고 있으면 최소한 사무치게 외롭지는 않았다. 어딘가에 접속해 있다는 거로도 허전함이 덜 했다. 온라인 세계에서라도 독박 육아는 면하고 싶었다.

그러나 곧 제약이 찾아왔다. 아이는 활동량이 늘면서 스마트폰을 자주 빼앗아 갔고 사진조차 찍기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인스타그램을 끊을 수는 없어 '눈팅족'으로 살았다. 마침 비슷한 또래를 키우던 엄마들은 짐승의 시간을 지나 조금씩 자기 색깔을 드러냈다. 화면 가득 채우던 아기 사진에서 요리, 인테리어, 여행, 맛집, 생일 이벤트, 옷, 아이 교육 등으로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

아가씨 적 몸매를 뽐내고, 곱게 화장하고, 원피스 입고. 거실엔 전집이 가득해 매일 열 권 넘는 책을 읽어주고, 매끼 다른 반찬을 만들어 먹이고, 가족을 위해 풀코스 요리를 준비하고, 휴가 때면 어김없이 해외의 리조트나 국내 호텔에 가고, 애 키우는 가정답지 않게 집 안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따라 하고 싶었다. 흉내 내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허접한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어떻게 찍어도 촌스러웠다. 그러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다시 스마트폰으로 전송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 했더니, 웬걸, 영화 스틸컷처럼 그럴싸했다.

인스타그램의 비밀이 여기 있었다. 아웃포커싱을 하고, 화각을 넓히고, 따뜻하고 감성적인 느낌으로 필터처리를 하면 수북이 쌓인 설거지도 낭만적으로 보였다. 식탁 위에 김칫국물 자국이 있어도 괜찮다. 햇살 좋은 시간에 자연광을 이용해 '탑 뷰'(top view)로 그릇만 '크롭(crop)'해서 찍고 보정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집안이 드러나지 않게 아이의 모습을 가급적 '클로즈업'해서 담기 시작했다. 어쩌다 리조트라도 가면 '부러워하는 댓글'과 '좋아요'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사실 어디를 가느냐는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비일상적 풍경 안에 가족이 모두 웃고, 내 얼굴이 남편보다 작고, 뱃살만 티 나지 않으면 되었다.

현실을 편집하고 가리는 세계

 칼 같이 잘린 인스타그램의 정사각형 사진은 상상의 여지를 제한했다. 완벽한 세상이었다. 내 앞에 펼쳐진 구질구질한 파노라마 속에 있다 말끔히 정돈된 프레임 안의 세계를 접하면 이질감이 느껴지곤 했다.
칼 같이 잘린 인스타그램의 정사각형 사진은 상상의 여지를 제한했다. 완벽한 세상이었다. 내 앞에 펼쳐진 구질구질한 파노라마 속에 있다 말끔히 정돈된 프레임 안의 세계를 접하면 이질감이 느껴지곤 했다. ⓒ 최은경

'좋아요'와 '팔로우'가 늘어날수록 육아 성적이 좋아지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아이의 그림이나 말솜씨에 칭찬이 더해지면 내가 잘 키운 것 같아 우쭐거렸다. 아이가 잘 먹는 사진 하나 올리고 나면 우리 아이는 '잘 먹는 아이'가 되고 나는 '밥 잘 해 먹이는 엄마'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결핍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사진을 보정하고 편집해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저 엄마는 언제 저렇게 갖춰 입나, 남편과는 싸우지도 않나, 아이는 언제 한글을 익혔나, 어떻게 매일 다른 곳을 다닐까, 저 아이는 매끼 저렇게 잘 먹나, 저 엄마는 화 한 번 내지 않나... 칼 같이 잘린 인스타그램의 정사각형 사진은 상상의 여지를 제한했다. 완벽한 세상이었다. 내 앞에 펼쳐진 구질구질한 파노라마 속에 있다 말끔히 정돈된 프레임 안의 세계를 접하면 이질감이 느껴지곤 했다.

나도 물론 알고 있다. 편집되고 전시된 사진은 수천 겹의 시간 중 극히 일부분이다. 행복에 대한 기대치, 소소한 만족을 투영한 후, 각색되어 나타난 아주 작은 결과다. 기록해야겠다고 카메라를 든다면, 그 순간은 특별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우울감에 휩싸였어도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던 5분 동안 행복했다면,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있다. 보이기 위한 행복에 불과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에게 진실이다. 일상의 어떤 면을 절단하고 보정하고 선별하는 과정 자체가 가치 기준이 담긴 관점이고 태도이고 취향이다. 삶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다. 프레임 바깥의 너저분함을 알고 있다 해도 인스타그램을 보면 자꾸만 위축되고, 나의 일상이 가치 없게 느껴지곤 한다는 점이다. 조금 전까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쫓아다니며 소리 지르던 엄마라는 걸 싹 감추고, 오전에 집 싹 치워놓고 커피 마시고 책 읽는 부지런하고 단정한 엄마로 연출 가능한 인스타그램의 세계. 너나 나나 저마다 완벽한 엄마, 좋은 엄마임을 뽐내는 사이에서 무엇보다 나의 분열을 견딜 수 없었다. 누군가를 깎아내리고 싶어 삐죽삐죽 솟아나는 시기심도.

인스타그램이 기록하는 찬란한 순간은 그림자를 가린다. 글이 없는 사진들은 맥락을 절단한다. 거기엔 변명도 하소연도 이유도 통하지 않는다. 이미지에 대한 감상만 있다. 책 <엄마 같지 않은 엄마>에서 세라 터너는 "남들은 다 완벽하게 육아를 해내는데 나만 형편없는 엄마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다 SNS 영향 때문이다"라고 썼다.

다들 조금씩 흉도 보고, 하소연도 하고, 사이좋게 불행을 공유하면 전체의 행복지수가 오히려 더 올라갈지 모르겠지만 인스타그램의 세계에선 가당치 않다. 작은 단점은 확대 해석 될 테고 팔로워는 떨어져 나갈 것이다.

'#애스타그램'은 이제 그만

 다른 이유는 몰라도 엄마들에게 인스타그램이란 수시로 찾아오는 무료함, 지루함과 외로움, 관음증과 과시욕, 그리고 인정 욕구를 달래주는 손쉽고 간편한 도구란 건 확실하다.
다른 이유는 몰라도 엄마들에게 인스타그램이란 수시로 찾아오는 무료함, 지루함과 외로움, 관음증과 과시욕, 그리고 인정 욕구를 달래주는 손쉽고 간편한 도구란 건 확실하다. ⓒ unsplash

나는 약 1년 반 전부터 인스타그램 사용을 줄였다. 계정을 비공개로 바꾸고 교류가 적은 계정의 팔로우를 끊었다. 전처럼 시시콜콜한 육아 일상을 올리지 않는다. 무엇이든 과시와 자랑이 될 확률이 높고 그것이 또 누군가에게 결핍과 박탈감을 줄 수 있단 생각에 점점 자제하게 된다. 일부러 구구절절 글을 길게 써보기도 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아 접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자주 만나지 못하는 지인들의 소식을 접하는 선에서, 나의 굵직한 소식을 전하는 한도에서 폐쇄적으로 사용한다.

'#애스타그램'을 그만두었지만 인스타그램을 완전히 끊기는 어렵다. 그동안 업로드한 2000여 장이 넘는 사진을 백업하지 못했다는 게 명목상 핑계. 좀 더 솔직히 말하면 클릭 하나로 타인의 삶을 엿보는 재미를 아직 포기하지 못했다.

완벽한 엄마, 완벽한 아이, 완벽한 남편이 있는 세상은 판타지처럼 매혹적이다. 꾸미고 싶어도 꾸밀 수 없는 일관된 태도와 시선은 부럽고 샘나며, 다듬고 매만진 순간을 그림처럼 박아두고 싶다는 바람은 여전히 나를 들쑤신다.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끌리고, 자책과 열등을 느끼면서도 동경한다. 단순한 눈요기일까. 단순히 할 일이 없어서일까. 왜 이런 '인생낭비'에 아까운 시간을 종종 허비할까.

다른 이유는 몰라도 엄마들에게 인스타그램이란 수시로 찾아오는 무료함, 지루함과 외로움, 관음증과 과시욕, 그리고 인정 욕구를 달래주는 손쉽고 간편한 도구란 건 확실하다. 각자의 좁은 방에서.

덧붙이는 글 | 블로그와 브런치에 중복게재합니다.



#인스타그램#애스타그램#육아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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