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17대 국회(2004~2007) 어느 상임위 소위원회 회의록에서 발췌한 기록이다. 소위원회 위원장이 상임위원장이 기관에 요청한 자료를 달라고 하는 상황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있는 그대로 옮긴다.
소위원장 OOO : "아니, △△△ 위원님 말씀하신 그것……"수석전문위원 □□□ : "그것은 우리가 자료 받은 게 없잖아."■■■ 위원 : "감사원 것은 자료가 없지, 그것은 당……"소위원장 OOO : "신청한 것……"수석전문위원 □□□ : "그게 의정시스템에 의해서 전자문서로 간다니까요. 그 전자문서가 뽑아지나?"소위원장 OOO : "전자문서로 뽑을 수 있을 것 아니에요."입법조사관 ▲▲▲ : "그것을 하나 뽑아 가지고요."수석전문위원 □□□ : "그것 뽑은 것밖에 없는 거지……"소위원장 OOO : "그러니까 공문 보낸 것을 달라고요. 있어요?"
여기서 수석전문위원은 국회 공무원이고 소위원장은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위의 속기록을 보면, 수석전문위원은 약간 반말투를 쓰고 있다. 모든 회의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회의록의 상황을 일반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수석전문위원의 위상이 국회의원의 그것보다 더 높아보이거나 최소한 동등해 보인다.
전두환에 의해 명문화된 검토보고, 왜 생겼을까국회 입법공무원의 위상을 높게 만든 것은 바로 '검토보고' 권한 때문이다. '검토보고'란 국회의원이 제출하는 법률안에 대해 국회 공무권이 '검토'해 '보고'하는 것으로서 예·결산에 대한 검토보고도 행한다.
이러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제도는 1980년 1월 전두환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시기, 국회법에 명문화됐다. 즉, 전두환이 권력을 장악한 뒤 곧바로 국회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제56조 (위원회의 심사) 조항을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개정한 것이다. 법안의 통과에 있어 '검토보고'는 필수적인 절차가 된 것이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국회법 개정의 목표와 기본 방향에 대해 "비리와 선동과 당리당략을 일삼는 정치폐습에서 탈피하여"라고 돼 있다. 개정의 '주요 골자'는 "직업 정치인의 독무대화 현상을 배제하고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유능 신인의 국정 참여 기회를 부여할 수 있도록"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이 제도를 추진한 목적은 '국회의 무력화'였다.
지난 글(
2018년 국회와 1948년 국회, 그 엄청난 차이)에서 제헌의회와 현재 국회의 상이한 모습을 기술한 바 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지금처럼 국회의원이 뒤로 빠지고 대신 국회 입법공무원이 입법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일까?
필자가 국회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이러한 검토보고 제도의 명문화에도 불구하고 1987년 이전 시기에는 국회의원들이 상임위에서 대부분의 논의를 주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7년 이후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모든 상임위에서 먼저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청취한 뒤 국회의원이 발언하는 등 국회에서의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제가 급속도로 확고하게 정착되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었다.
우리 국회는 이승만 독재와 유신 독재 등을 거치면서 야당 의원들은 독재 권력에 온몸으로 맞섰다. 그 의정활동을 사실상 '치열한 투쟁'의 연속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1987년 이후 체제'에서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존재로서의 야당의 성격이 퇴색하면서 기존 국회가 지녔던 저항과 투쟁의 이미지 역시 크게 약화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표(票)와 인기를 추구하는 '연기(演技) 정치'가 우위를 점했고,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출세한 직업으로서의 국회의원이라는 이미지가 보다 강화됐다.
한편으로는 1987년 이후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관료가 주도하는 사회로 변모했다는 특성이 지적될 수 있다. 즉, 1987년 이후 권력의 약화와 함께 민주화 운동의 가치가 크게 약화된 반면, 제도와 룰이 상대적으로 힘을 발휘하게 됐다.
하지만 이들 제도나 룰이란 사실상 기존 체제를 유지해왔던 관료 집단이 주도권을 쥐는 체제였다. 특히 이들 관료집단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는 기본적으로 결여됐고, 반면 시민의 권리는 제도적으로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에서 사회 전반적으로 관료화가 급속하게 진행됐다.
국회에서 국회 입법공무원들이 입법과정에서 전면에 나서게 된 현상 역시 이런 시대적 조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검토보고, 보수적 경향이 크고 외부 로비에 취약하다
그러나 국회 공무원에 의한 검토보고 제도는 입법의 보수적 경향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관료 집단은 신분적 조건으로 인해 보수적 경향을 보이는데, 국회 공무원에 의한 검토보고 역시 보수적 경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
2004년 고 노회찬 의원이 발의했던 '국가보안법폐지법률안'은 검토보고의 벽을 넘지 못했고, 2016년 정동영 의원 등 54명이 서명해 제출했던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 간의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효력 정지 특별법안' 역시 검토보고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또한 국회 공무원에 의한 검토보고가 재벌이나 대형 로펌, 각종 협회의 로비나 영향력으로 훼손된 사례도 적지 않다. 일례로, 국회의 한 수석전문위원이 장충기 전 삼성 사장에게 민원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건이 지난해 8월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당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가 일부 재벌이나 로비 대상 단체에 의해 편향되고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전문위원 검토보고'라 하면 외부에서 선발된 전문가 그룹에 의한 검토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국회 전문위원은 국회 공무원시험으로 선발되고 국회 내에서 순환 보직하는 공무원일 뿐이다. 결국 전문위원이라는 명칭과 달리 전문성 그 자체에서 근본적인 취약성을 안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위원의 임용은 '국회사무처법'에서 정원의 20% 이내에서 개방직을 임용할 수 있는 직위에서도 배제시키도록 규정하여 외부 전문가의 진입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입법의 자기결정권' 회복이 핵심정치인들이 매일 같이 싸움만 하는데, 그나마 공무원의 '개입' 때문에 이 정도로 조정되고 유지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국회가 워낙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긴 사례가 많아서 언뜻 설득력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거듭 지적하지만, 국회 공무원에 의한 검토보고라는 희한한 제도는 세계 의회 역사상 존재하지 않은 제도이고, 그것도 '국회 무력화'를 목적으로 해 박정희-전두환 독재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다. 이는 수십 년 동안 '국회 무력화' 그리고 '일하지 않는 국회'를 초래하는 데 주요한 요인으로 작동돼 왔다. 이제 그만 이 왜곡된 제도로부터 우리 국회가 벗어나야 할 때가 됐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나라 국회의원들은 공무원의 '검토'를 받아야 할까. 이는 국민이 부여한 '입법권'의 심각한 침해이며, '헌법기관'을 자부하고 있는 국회의원들 모두의 권위와 명성 그리고 자존심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다.
'입법 자기결정권'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진정한 헌법기관임을 자부할 수 있고, 일하는 국회'로서의 진정한 권위를 회복하는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