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기사] 하이파이브 하는 꽃게, 여기 있습니다오늘 나는 태안 해변길의 12번째 지점 노을길의 마지막 코스인 방포항을 걷습니다. 방포항은 방포해변(해수욕장)과는 다른 곳입니다. 그 사이에 헐떡거리며 오르내려야 하는 깔딱 산이 가로지르고 있거든요. 아 깔딱 산에서 방포해변을 보고 꽃지해변을 보고 방포등대도 볼 수 있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그 맛이 가까이 가서 보는 것 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여기처럼 항구와 해변이 전혀 다른 데처럼 여겨지는 해변도 없을 듯합니다. 한창 휴가철이라 카라반이며 텐트들이 들어 선 방포해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방포항에서 기다린답니다. 누가 뭐래도 방포항은 팔색조의 매력을 맘껏 발산하는 곳이라 여겨집니다.
대부분 마지막은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죠. 이곳은 백사장항에서 시작한 내게는 노을길의 마지막 코스이지만 꽃지해변 쪽에서 시작한다면 노을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답니다. 인생이 참 묘해요. 누구에게는 마지막인데 또 다른 이에게는 시작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시점이나 시각을 달리하면 희망이 아닌 게 없습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고들 하지만 끝이란 게 과연 있을까 싶어요. 누가 죽었는데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 어떤 일의 태동을 알리는 시작일 때가 많으니까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잖아요.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하여 교황청 종교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당합니다. 그의 죽음은 지구가 둥글고 태양 주변을 돈다는 과학이론이 탄생하는 시작이 되었으니까요.
아, 너무 나갔나요. 하여튼 끝은 끝이 아닙니다. 나로서는 노을길의 끝 지점에 서 있습니다만 그 누구는 이곳이 노을길의 시작점이겠지요. 조금 초점을 벗어나긴 합니다만 갑자기 박인희의 <끝이 없는 길>이 내 입술로 쳐들어옵니다.
끝이 또 다른 시작
잊혀진 얼굴이 되살아나는 저만큼의 거리는 얼마쯤일까
바람이 불어 와 볼에 스치면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가고 싶어라
아 이 길은 끝이 없는 길 계절이 다가도록 걸어가는 길
아마 이게 2절일 거예요. 시작이 끝이 되고 끝이 시작이 되는 길이라면 아마도 끝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갑자기 옛 이야기 담긴 박인희의 노래가 떠오른 거죠. 솔직히 말하면 글을 쓰며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노래 말을 올렸답니다. 걸으면서는 앞부분은 웅얼대고 후렴만 무한 반복했답니다.
그래도 신납니다. 시작과 끝의 오묘한 진리를 터득했으니까요. 걷는 길만이 아니라 인생길도 끝이 없지만 오붓하게 걸어보렵니다. 돌부리가 발을 잡겠지요. 논두렁이 질퍽하니 바짓가랑이를 붙들겠지요. 등걸이 신발을 차겠지요. 그래도 웃으며 걸으렵니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하여.
안면도의 꽃지해변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방포항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거기가 거기거든요. 꽃지해변은 항구가 없답니다. 꽃다리를 사이에 두고 할미 할아비 바위를 모두 바라보고 있답니다. 방포항도 꽃지해변도. 그런데 사람들은 그 유명한 꽃지해변은 알아도 방포항은 모르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나도 모르죠. 매스컴의 위력인지 꽃지해변의 위력인지 하여튼 그래요.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꽃지해변의 매력보다는 방포항의 매력이 팔색조 마냥 더 많다는 거 말하고픕니다. 무엇보다 내 단골 횟집이 바로 이곳에 있답니다. 물론 안면도의 횟집 하면 백사장항에 많이 모여 있습니다. 방포항은 그 숫자로 보면 백사장항보다는 적습니다.
그러나 여유자적 즐기려면 방포항이 제격입니다. 왁자지껄 즐기려면 백사장항이고요. 동네 사람은 방포항 식당가, 여행객은 백사장항 식당가,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게국지를 하는 식당들이 정당리와 승언리를 타고 가는 국도변에도 늘어서 있죠. 선택은 자유랍니다. 개중에는 매스컴 한두 번은 기본인 식당들도 많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 개인적인 식견으로는 매스컴 탄 식당이 더 잘한다고는 추천하고픈 마음이 없습니다. 본토박이의 단골과 여행객의 단골이 다른 건 다들 아시죠. 맛집 추천 부탁한다면 기꺼이 도와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허허.
팔색조의 매력이 있는 방포항
그건 그렇고. 팔색조의 매력이 있다고 말했죠. 그 첫 번째 매력은 방포항에는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겁니다. 모감주나무가 뭐냐고요. 그렇게 물으시면 모감주나무가 섭하죠. 모감주나무로 말할 것 같으면, 염주나무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염주를 만드는 열매를 선사하는 멋진 나무랍니다. 지금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답니다.
모감주나무 군락지는 대구 대불공원, 포항, 거제도, 안동, 완도, 당진, 달성 등 여러 군데 있습니다. 안면도 방포항의 모감주나무는 중국 어부들이 가지고 왔다거나 황해도의 모감주나무 씨앗이 해류를 타고 유입되었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방포항을 드나드는 도로가에도 모감주나무들이 드문드문 자리한 걸 보면 이 주변이 자생하기에 적당한 토후를 지녔기 때문인 듯합니다.
모감주나무는 천연기념물 138호로 지정되어 보전되는 수종입니다. 앞에서 여러 곳의 군락지가 있다고 말했지만 안면도처럼 넓은 곳은 없습니다. 이곳은 길이가 120m이고 폭이 15m입니다. 방풍림으로 제 역할을 다했을 모감주나무가 왠지 대견합니다.
꽃게잡이 통발을 쌓아올린 너머로 할미 할아비 바위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방포등대가 고즈넉이 우뚝 서있습니다. 등대로 가서 꽃지해변의 할미 할아비 바위를 바라보지 않고는 할미 할아비 바위의 진면복을 다 봤다고 할 수 없습니다. 중간에 꽃다리 위에서나 방포항에서 보는 할미 할아비 바위도 운치가 있고요.
물이 빠진 할미 할아비 바위 주위에서 조개를 줍는 동네사람들의 모습이 마냥 한가합니다. 그들은 분주할 것이지만 내 눈에는 그저 감상적으로만 보입니다. 이 몹쓸 감성은 어디에다 써야 할지. 휴. 이게 바로 생존과 여가의 차이겠지요. 그들은 생존, 나는 여가.
생존도 여가 같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팔색조 방포항 얘기는 여기서 일단 끊겠습니다. 더 할 얘기들이 아직 많거든요. 다음을 기대해 주세요. 오늘도 웃을 일이 많으시기 바랍니다. 저도 많이 웃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안면도 뒤안길]은 글쓴이가 안면도에 살면서 걷고, 만나고, 생각하고, 사진 찍고, 글 지으면서 들려주는 연작 인생 이야기입니다. 계속 함께 해 주시면 전 너무 좋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