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부모가 되면 좋아하지 않지만 하게 되는 일들도 생기더라.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캠핑이 딱 그랬다. 호텔, 콘도를 전전하던 여행에서 예정에 없던 이탈을 하게 된 이유다. 자연에서 놀 수 있고 자연과 친해질 수 있는 여행으로 캠핑만 한 게 없다는 걸 잘 아니까.
실제 '모의' 캠핑도 해봤다. 완전한 캠핑이라고 할 수 없는 글램핑이나 카라반, 그것도 아니면 동네 캠핑장에서 텐트 치고 고기 구워 먹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게 전부였지만. 이왕 간 거 하룻밤 정도는 자고 오지 왜 그냥 돌아왔냐고? 우리 집 텐트 때문이다. 외형만 텐트일 뿐 그것의 정체는 그늘막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과 친구가 되길 바라는 내 희망사항과 달리, 아이들은 벌레를 무지무지 싫어한다. 온 정신이 파리, 모기, 하루살이에 집중되어 자연에 눈길 한번 주지 못할 때가 많았다. "집에 언제 가냐?"는 말이 무한 반복됐다. 받아주기 지쳤다. "사실 엄마도 캠핑 별로야." 차마 내뱉지 못한 말만 목구멍에 가득 차올랐다.
특히 둘째는 모기에 한번 물리면 (알레르기라고 하던데) 무섭게 부어오른다.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긁어 파서 피딱지가 앉는다. 흉터가 남는다. 벌써 여러 군데다. 이러니 굳이 캠핑을 가야 하나,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캠핑을 향한 마음이 출렁거린다. 이게 다 인스타그램 때문이다.
후배 부부는 캠핑 마니아. 후배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그 고된 현실이 싹 잊힌다. 연애 시절부터 결혼 후, 임신, 출산 후 지금까지 한결같다. 늘 자연으로 떠난다. 자연과 하나가 된다. 후배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봄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가득 핀 곳에서 고기를 굽고, 여름에는 뜨거운 햇볕 사이로 물놀이하는 아이들, 해먹을 치고 노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가을에는 말 안 해도 빤한 단풍이 지천이고, 겨울에는 장작 타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캠핑장이 내 시선을 잡아끈다. 저기에 딱 내 숟가락 하나만 얹었으면 싶을 때가 많았다.
가자고만 하면 원고 마감 따위는 염두에 두지도 않고 따라나설 텐데 여태 가자는 말 한마디가 없네. 무슨 이야길 하려는 거냐고? 그렇다, 나는 지금 김중석 그림책 <나오니까 좋다>(사계절)에 나오는 도치와 고릴라의 캠핑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코파기를 좋아하는 심심한 고릴라가 '바람 쐬고 와서 일하면 더 잘 될 거"라면서 원고 마감으로 바쁜 도치에게 캠핑을 제안한다. "나만 믿으라"며 "걱정 말고 따라오기만 하라"는데 뭔가 어설픈 고릴라와 그런 고릴라에게 계속 툴툴거리는 도치를 지켜보는 게 왠지 싫지 않다. 그 둘의 사이가 오히려 정겹다.
도치는 고릴라가 큰소리치며 텐트를 치는 것도, 해먹에 함께 눕는 것도, 저녁 준비를 하는 것도 하나도 맘에 들지 않는 눈치다. 그러나 이거 하나만큼은 인정하는 게 있었으니… 이 맛에 캠핑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두 장면. 내 숟가락도 딱 하나 얹었으면, 내 캠핑 의자도 하나 폈으면 하는 그 장면. 지금 당장 떠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도치처럼 "나오니까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한 그림이다.
지난 2일 서울 합정동 아트북 그림책 전문서점 비플랫폼에서 만난 김중석 작가는 이 고릴라를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책을 내는 데까지 무려 14년이 걸렸다고 고백했다. 사실 김 작가가 처음 그린 고릴라 그림을 점찍은 편집자가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그때와는 다른 출판사, 다른 편집자와 함께 책을 내게 됐다는 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더 잘 다듬어진 지금의 고릴라 캐릭터가 나오게 됐으니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책이 이렇게 나오니까 좋단다.
최초의 '김중석 고릴라'를 발견자 편집자 역사 진심을 담아 김 작가의 출판을 격려했다. 나는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김 작가를 만나기 직전, 그 편집자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우연히 보게 된 것. 그 편집자는 김중석의 첫 고릴라를 만난 일에 대해 이렇게 썼다.
"김중석 작가님의 고릴라 캐릭터는 보는 순간, "삘(feel)"을 받아서 꽂히고 말았다. 단순하고 투박하면서도 조화로운 색감과 터치로 순둥순둥한 매력을 뿜뿜 내뿜는 고릴라는, 내게 김중석 작가님의 페르소나처럼 보였다. 앤서니 브라운이 유인원류(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를 의인화한 캐릭터에 자신과 아버지 등을 이입하며 데뷰작부터 줄기차게 차용하는 것과 빗대어도 빠지지 않는 캐릭터로 보였다. 순박하고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그 고릴라 속에는 가부장제가 지워진 의무의 기둥을 짊어진 서글프고 일그러진 가장도 있었고 누구라도 "나 쟤랑 친해."라고 여길 수 있는 만만하고 친근한 친구도 들어 있었다." - 출처 '뻬빠' 블로그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편집자의 진심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가야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사실 이날 내 기분은 엉망이었다. 작가와의 만남이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을 만큼. '이 기분으로 갈까 말까. 아, 미리 예약도 못했는데, 괜찮나…' 수십 번을 생각하다가 일단 전화라도 해보자 싶었다.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책 제목이 한몫했다. 거기 가면 좋을 수도 있잖나.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부랴부랴 방문 가능 여부를 물었을 때, 자리가 다 찼다는 답변. 되는 일이 없는 날이구나 생각했다. 심란한 내 마음이 전해지기라도 한 걸까. 책방 근처냐고 묻더니, 혹시 못 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오라고 말했다. 제목 그대로 나가니까 좋았다.
특히 김중석 작가가 '직접' 읽어주는 그림책은, 기분 전환으로 충분했다. 훌륭했다. 아마도 내가 캠핑을 가게 되는 날이 온다면 "나오니까 좋다"라고 할 게 분명하다. 인생의 재미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 아뿔싸. 후배의 인스타그램을 또 보고 말았다.
"하늘과 구름이 정말 정말 예뻤던 주말
밤에는 쏟아질 듯한 별도 감동이었다."내 마음에 오늘도 '뽐뿌'가 인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