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휴가 기간 동안 아내의 고향인 일본 오사카에 머물렀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그동안 궁금하지만 물어보지 못했던 일본인 장인, 장모의 경제 사정에 대해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냈다. 은퇴 후 연금을 받아 살고 계신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만 두 분 생활하시고 활동하시는 데 충분한지, 평범한 일본 사람들의 노후 생활은 어떤지 알고 싶었다
장인, 장모 두 분 모두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은퇴 전에 받던 소득에 비례해서 국가의 연금을 받고 있었다. 구체적 규모는 밝히기 어렵지만, 다행히도 두 분이 생활하고 여가를 즐기며 가끔 여행 다니실 정도의 여유는 되는 듯했다. 일본도 오래 전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해서 젊은 세대들의 연금 수급에 불안감이 있다고 하지만, 현재 연금을 받는 연령층은 비교적 큰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일본 어르신들의 노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 식사를 마치면서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리다 보니 SNS에서 한국의 국민연금 제도 개편에 대한 뉴스가 여러 차례 공유되고 있었다. 국민연금의 현재 상황과 미래 재정 여건에 대한 다양한 기사가 있었으나 대부분 국민연금이 큰 문제에 봉착했다고 느낄만한 내용이 지배적이었다. 재정이 곧 고갈된다거나, 젊은 세대가 연금을 받기 힘들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등장했다. 지난 정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했던 국민연금공단 관련 논란도 다시 도마 위에 올라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국민연금이 어떤 상황인지 여러 매체를 통해 살펴보게 되었다. 언젠가 은퇴를 하고, 연금의 수혜자로 살아갈 입장이기 때문이다. 또 동시에 정부 정책에 대해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었다. 언론에서 발표한 기사와 전문가들의 분석을 살펴보니, 다양한 감정이 교차했다.
'기금 고갈' 손놓을 정부 없다지만... 불만 터져나오는 이유국민연금 적립금이 고갈되어 연금을 못 받는 세대가 정말 발생할까? 국민연금 논란이 나올 때마다 우리의 심기를 건드리는 파괴력 큰 공격이다. 전문가들은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한다. 일부 우려대로 인구 고령화로 연금을 받을 사람은 증가하고, 보험료를 납부할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금운용 수익률까지 하락하게 되고, 정부가 대책 없이 손 놓고 있다면 산술적으로 그럴 시기는 도래한다.
그러나 어떤 정부가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연금제도의 붕괴를 지켜보겠는가. 이런 정치적 리스크가 큰 사태를 방관할 정부는 상상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적립금을 모두 사용한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 사용하는 '부과방식'을 적용하면 된다고 한다. 연금에 필요한 만큼 보험료를 거둬 재원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당연히 보험료 상승을 가져오기 때문에 정부의 결단과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으로 인해 정부가 과도하게 비판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정치적 반대 집단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이 직접 돈을 내고, 받는 것과 관계된 민감한 정책 이슈다.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유리한 여론의 지지를 원하는 세력이 선점하고, 활용하기 용이하다. 또한, 돈을 내고, 받는 집단의 세대 차이가 있어 세대 갈등을 부각할 수도 있다. 정치적 쟁점화가 쉬운 문제다.
둘째, 정부 신뢰다. 역대 모든 정부를 통틀어 연금 개편 문제는 피하고 싶은 정책 사안이다. 정부가 안정적인 연금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 등의 수단이 필요하지만, 이는 국민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그래서 문제를 덮고, 연금 개혁의 부담을 다음 정권으로 미루어왔다. 폭탄 돌리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5년 단위로 국민연금 재정 추계를 진행할 때마다 연금의 불안과 공포는 등장했다. 이제 이런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셋째, 정책변동이다. 그동안 정부는 국민연금과 관련한 무수한 정책변화를 거듭했다. 출산율이 변하고, 인구 고령화가 빨라지고, 경제 성장률이 하락하는 상황이니 그에 맞는 세부적 변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국민 반발 여론을 인식해 시기에 맞는 정책 수정과 변경을 하지 못했다. 현재의 부정적 여론에 무게를 두고 정책 결정을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와 계층에 공평하고, 안정적인 국민연금 개편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산적한, 지난 정권에서 미뤄둔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어떤 정부든 언론의 비판과 국민의 반발을 견뎌야 한다. 국민연금도 그러한 인내가 요구되는 사안이다. 국민연금체계는 현재와 미래의 경제사회 여건에 맞게 개편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이니 폐지해야 한다는 등 사실을 벗어난 주장들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리한 정치 공간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세력 간의 '싸움걸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노후를 위한 성의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