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자전적 수필집 <황교안의 답>을 24일자로 출간했다. 걸어온 삶을 간략히 정리한 앞부분과 질의응답 형식으로 국가 비전을 밝힌 뒷부분으로 구성된 책이다. 화보집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간의 활동을 담은 사진도 많이 수록돼 있다. 책 앞표지 뒷면의 앞날개에 이런 말이 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도 있답니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무언가를 말이지요."
이 말이 풍기는 정치적 함의가 너무 직접적이지 않나 하는 염려가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바로 다음 문장에서, 좀 엉뚱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언젠가는 어느 한적한 거리에서 오래 전부터 익혀온 색소폰을 멋있게 연주하며 모금 공연을 하려는데···, 야무진 꿈일까요?"
색소폰 거리 공연에 대한 국민적 성원을 부탁하고자 책을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건 그냥 해본 말이다. 그래서 다시 곧바로 본론으로 회귀한다.
"뜻을 같이하는 청년들과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군요. 여러분,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미래 사회를 만들어보면 좋겠지요?^^"
청년들과 함께 새로운 미래 사회를 열어보겠다는 게 이 책을 쓴 취지다. 실업 문제 등으로 고뇌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과 함께 새로운 사회를 모색해보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청년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겠다는 생각에서, 책 제목을 <황교안의 답>으로 정했을 것이다.
책 중간 중간에서 그는 "우리 사회의 편협한 청년 정책도 문제입니다. 말은 청년을 위한 정책이라지만 정작 그 중심에 청년은 없습니다"라는 식으로 현존하는 청년 정책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면서 그들을 위한 자기 나름의 해법들을 제시했다.
그 해법이란 것은 "청년에게 관심을 갖자", "대화할 기회를 찾자", "청년에게 기회를 주자"처럼 추상적인 이야기들이지만, 그중 한 가지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바로, 보수의 재건에 대한 대목이다. 청년세대를 상대로 보수 재건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하는 부분이다.
그는 "젊은이들 중에는 '보수' 하면 낡고 권위적이고 고집불통인 이미지만 떠올리는 분들도 제법 많습니다"라고 한 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보수의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보수의 핵심 가치와 그 중요성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라며 자신이 신봉하는 보수는 수구와 절대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165쪽 짜리인 이 책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157쪽에 나오는 문장이다.
"참된 보수는 바르고 좋은 가치를 지키는 것인 반면, 지키면 안 되는 것을 지키려는 것은 수구이자 가짜 보수입니다. ······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참된 보수의 가치를 잘 지켜내야 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책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청년세대와 함께, 수구가 아닌 보수의 가치를 지켜내자는 게 핵심 메시지다. 촛불혁명을 계기로 급격히 허물어지는 보수 혹은 수구의 가치를 지켜내서 '그들만의 대한민국'을 복원시키고 싶어 하는 황교안의 희망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희망 자체는 바람직하다. 과거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보수파는 항상 존재할 것이므로, 참된 보수를 세우자는 주장 자체는 훌륭하다. 하지만, 그가 말한 보수가 과연 미래에도 존립할 수 있을 것인지 의심케 하는 대목들이 책 중간 중간에 산재해 있다.
고스란히 드러난 '황교안의 역사인식'조선시대 보수파는 고려시대 보수파보다는 진보적이었다. 이승만 시대 보수파는 조선시대 보수파보다는 진보적이었다. 4·19 혁명 이후의 보수파는 이승만 시대 보수파보다는 진보적이었다. 또 촛불혁명 이후의 보수파는 그 이전 보수파보다 당연히 진보적이어야 한다.
이처럼 보수파는 시대에 따라 다른 내용을 갖기 마련이인데, 황교안이 과연 촛불혁명 이후의 보수파를 이끌 수 있을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 책 곳곳에 널려 있다. 그가 재건하겠다는 것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보수'인지 '지키지 말아할 것을 지키는 수구'인지 의문이 들게 하는 대목들이다.
황교안이 새 시대를 이끌 보수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은, 그가 지키겠다고 하는 것들이 하나 같이 우리 국민들이 이미 내다버린 것들이라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70페이지에서 그는 "청년들이 리더십 비전을 어떻게 설계하면 좋을지 조언해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제게 리더십의 비전을 보여준 분은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 우리 국민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더 나아가 비전을 제시해준 리더였다고 생각합니다."
촛불혁명을 계기로 대한민국에서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대단히 소수다. 황교안이 분류한 보수와 수구 중에서 수구에 포함되는 사람이 아니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리더십을 청년세대한테 권하는 사람을 '바르고 좋은 가치를 지키는 보수'로 봐야 할까, 아니면 '지키면 안 될 것을 지키려는 수구'로 봐야 할까? 황교안의 역사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93쪽에서는 더 황당한 내용에 접하게 된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는 ( )이다'라고 표현한다면, 가장 적절한 말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박근혜 정부는 한마디로 '개혁 지향 정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박근혜 정부한테 좀더 시간을 줬다면 좋은 결과가 나타났을 거라는 말까지 했다. 박근혜 정부가 임기를 못 채우고 쫓겨난 게 못내 억울했던 듯하다. 107쪽에 이런 대목이 있다.
"개혁은 대개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인데, 탄핵 사태로 말미암아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정부 출범 3년차 무렵에 정부 성과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는데, 거의 완성된 공무원연금개혁을 비롯한 많은 개혁 과제들이 대체로 목표의 55~65% 정도를 달성한 상황이었습니다. ······ 5년이라는 시간도 아주 짧은데, 대통령 탄핵사태로 말미암아 미완성의 과제로 남은 부분이 많이 아쉽기만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쫓겨나야만 했던 이유를 제대로 수긍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근혜가 임기 5년을 다 채웠다면 나라꼴이 더 안 좋아졌을 텐데도, 그는 박근혜 정권의 진면목을 보려면 5년이란 시간도 아주 짧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의 입장에서는 촛불혁명을 촛불혁명이라 아니 부르고 "불미스러운 사태"라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7쪽에서 그는 "불미스러운 사태로 인해 전 정부의 많은 공직자들이 사법 처리되어 왔습니다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정책을 적폐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라는 대목에서 촛불혁명을 그런 식으로 규정했다. 대한민국 역사를 바라보는 그의 통찰력이 어느 수준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답 갖고 지도자 되려 한다면, 그가 갈 곳은 '딱 한 군데'
거기다가 황교안은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로 이행하는 지금의 역사적 흐름에도 제대로 유의하지 않고 있다. 이 점은 남북 단일팀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서 잘 드러난다. 58쪽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을 구성할 때, 남북 공동대표팀을 만들면서 오랜 동안 국가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 피땀 흘려 노력한 세 명의 선수가 탈락하는 일이 있었지요. 이때 젊은이들이 분노한 것은 헌법의 가치인 개인의 자유와 공정성에 반하는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일팀 구성으로 인해 소외되는 선수들에게 관심을 표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훌륭하다. 이들을 위한 보상책을 강구하는 것도 당연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단일팀 구성 과정이 헌법적 가치에 반하는 일인 듯이 규정하는 것은 그가 과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라는 헌법 제4조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평화와 통일의 새 시대로 이동하고 있는 한반도의 역사적 흐름에 대해 별다른 인식을 갖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인식하는 통찰력이 낮다는 점은 자신의 검사 시절 인생사를 돌아보는 대목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책 34~37쪽에서 그는 노무현 정부와의 악연을 소개했다. 그중 한 가지는, 한국전쟁을 김일성 정권의 통일 시도 전쟁으로 평가한 동국대 강정구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구속하려 했지만, 천정배 법무장관이 구속수사를 막고자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는 이야기다. 이로 인해 구속수사에 대한 자신의 의지가 꺾였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때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훗날 내가 검사장으로 승진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면서도 이것이 도리어 자기 인생에서 역전의 발판이 되었다고 자평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검사장-법무장관-총리로 승승장구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억울한 면도 없지는 않지만, 평소 나를 아끼던 선배들이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도 있지 않더냐'며 위로해주었다. 어려움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선배와 동료들 덕분이다. 2008년에 비로소 검사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지만, 두 차례 고배를 마시며 견뎌야 했던 고통의 시간이 내게는 시련이면서 동시에 성장의 기회였다."
노무현 정부와의 갈등으로 검사장 승진에서 누락됐지만, 그것이 결국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인생 역전을 이루는 발판이 됐다는 판단에서 그는 새옹지마란 고사를 인용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인생사에서 새옹지마 이야기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의 악연 덕분에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중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두 정권과의 인연 때문에 자신이 수구세력의 범주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박근혜 탄핵 때문에 대통령권한대행에 오른 것만 기억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박근혜 사람으로 취급돼 장래의 활동 반경이 크게 위축됐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대한민국 현대사뿐 아니라 자기 개인의 역사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청년 세대에 용기와 희망을 주고 참된 보수를 재건하고 싶어 <황교안의 답>을 썼노라고 말했다. 그 정도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대한민국 역사와 자신의 개인사에 대한 기본적 통찰력은 갖고 있어야 한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흘러왔는지 이해해야만, 현재로부터 미래까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책 여기저기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그는 1970년대에도 욕먹을 법한 낡은 역사인식과 낮은 통찰력을 갖고 있다. 새 시대를 담을 만한 역사인식과 통찰력이 그에게는 부재하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과연 청년들의 질문에 답을 제공할 수 있을까? 청년들의 앞날을 위한 정확한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낡은 역사인식과 낮은 통찰력으로 그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그저 '황교안의 오답'뿐이 아닐까.
이런 오답을 갖고도 지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그가 갈 곳은 딱 한 군데다. '지키면 안 될 것을 지키려는 수구세력'의 지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그런 오답을 갖고 있다 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