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및 폭력의 40% 이상이 부모가 가해자라는 뉴스를 얼마 전 들은 적이 있다. 놀랍지 않다. 40%는 표면화 된 상황만을 가리키는 지표에 불과하다. 가족 간의 일이라 드러내기 싫은 것도 있을 것이고, 그것도 '사랑'이였다는 이름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육체적 폭력이든 언어폭력이든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한 두 개 정도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모와 자식 간의 연결고리 자체가 사랑으로 연결된 비옥한 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상처와 갈등구조가 발생하고 가라앉는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외딴 섬에서 학생들을 가리킬 때의 일이다. 결손가정이 많거나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육지에 살고 있는 부모 곁을 떠나서 할머니 손에 자라는 학생들이 많았다. 학생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학생들 마음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의 결점과 아픈 기억들을 솔직하게 말해 줄 필요성이 있었다. 나와 딸과의 관계('그때도, 지금도 미안해 : 엄마의 뒤늦은 고해성사'라는 제목으로 <오마이 뉴스>에 기사화 됐던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접어들었을 무렵, 소리죽여 흐느껴 울던 학생 한 명이 그만 소리를 터트리면서 대성통곡을 하는 상황까지 가고 말았다.
그 학생의 아버지는 유난히 텃새가 심한 섬에 들어와서 어렵게, 어렵게 교회를 개척했다. 엄마는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들 두 명을 낳고 길렀다. 동시에 교회 밖에서는 사모의 모습을 지으면서 살아야 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항상 웃음 짓고, 친절해야 되고, 몸을 낮춰야 되고. 그 학생이 어렸을 때였다. 사모인 엄마에게 거의 매일 침대에 내동댕이쳐지면서 학대를 받고 키워졌다고 한다. 자신의 모습과 나의 딸의 모습이 오버랩이 되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인정했고 그 이후 딸과의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띄었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다. 며칠 전 엄마와 딸과 환하게 찍은 사진이 '사랑하는 엄마와 한 때'라는 부제가 붙어서 폐북에 포스팅 된 것을 보고 잠깐 과거의 그 교실로 돌아 간 적이 있었다.
이름 석 자만 되면 알 만한 사람의 아내로 살다가 남편의 외도가 이혼으로 연결되면서 쫓기듯이 아들 둘만을 데리고 미국으로 온 사람을 알게 되서 친구가 된 적이 있었다. 여자 대학으로는 명문인 E대학에 입학해서 남부럽지 않은 대학생활을 누렸다. 대학 때 만났던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했다. 남자가 대학 교수자리에 앉기까지 하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내조의 여왕으로 살았다. 바야흐로 방송계에 얼굴을 내밀면서 남자는 외도를 하게 되었다. 배신의 아픔과 분노는 남편을 가장 많이 닮은 큰 아들에게 투사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저는 엄마한테 한 번 맞으면 백대도 넘게 맞았어요. 몸으로 맞는 아픔은 괜찮아요."
"엄마가 나에게 쏟아 부었던 잔인한 말과 욕설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오래전의 일이지만 중학교 1학년 아이였던 그 아이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미국의 아이비그 리그 중의 하나인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자리를 잡고 살고 있지만 엄마와 따뜻한 교류를 하면서 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주 가깝게 지내는 한 친구의 하소연이었다. 70이 가까워지는 시누이와 94세가 된 시어머니와의 관계였다. 한 남자의 세 번째 부인으로 (옛날에는 한 마을에 혹은 한 집에 부인을 둘 혹은 셋 이상을 두고 살았던 남자들이 적지 않게 있었나 보다) 숨죽이며 살면서 딸 둘을 낳아 길렀다. 이때나 저때나 간절히 기다리던 아들을 드디어 얻게 되었다. 그 여인에게 그 아들의 존재가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감히 짐작이 간다. 문제는 그 귀하디귀한 아들 뒤에 존재감 없이 버려진 딸의 아픔의 세월이 있었다. 칠순에 접어 든 딸이 구순이 넘은 엄마로부터 평생 듣고 싶었던 말 한마디,
"미안했다, 딸아."
눈물로 가슴을 치며 자신의 한스러움을 토로하는 시누이의 말을 들은 친구가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화해의 자리를 마련하였지만 돌아온 말은 "미친 X, 죽을힘을 다해 키워 놓았더니, 뭐~"
가족행사 뒤풀이 술자리에서 친정 둘째오빠의 예기치 못했던 고백을 듣게 되었다.
"난, 훈이에게 잘못을 참 많이 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 제법 클 때까지 ~ "
둘째 오빠는 자존감이 낮고 열등의식이 다른 형제에 비해서 높았다. 큰오빠와 쌍둥이처럼 연년생으로 태어났던 둘째오빠가 여섯 명 형제 중에 유일하게 대학을 진학하지 못했다. 반면에 큰 조카는 누구라도 들어가고 싶은 S대에 당당히 합격해서 석.박사를 마치고 소위 꿈의 직장이라는 S사에 과장대리로 입사를 했다. 이제 서른 살 후반이니 일이년 후면 불혹의 나이로 접어든다. 묵묵히 자기 몫을 다하는 조카의 존재는 늘 허전한 오빠의 빈 마음을 메워주는 오빠의 자긍심이고 자부심이었다. 오빠의 삶의 존재이기도 하고 중심축이기도 했을 것이다.
"오빠, 더 늦기 전에 입 밖으로 오빠의 말을 끄집어내서 말을 해요. 반드시 말로 해야 되요.
"너도 내 마음 알지 ~ 그건 안돼요."
"말은 몇 번 한 적이 있지. 술기운을 빌려서."
"뭐? 술기운을 빌려 말했다고요? 그건 하지 않는 것만 못해요. 아들의 마음을 오히려 냉소적으로 돌아서게 하는 역할 밖에 하질 못해요."
아들의 눈에 아버지가 방어능력이 떨어져서 더 이상 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아버지는 나에게 손찌검을 심하게 하셨나요? 라는 항변조차 못하는 나이로 아주 넘어 가기 전에, 손에 그래도 힘이 있을 때 아들의 손을 꽈~악 잡아 주길. 그리고 말해 주길.
"내가 잘못했다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산 세월이 만만치 않게 길다보니 천태만상의 가족관계를 본의 아니게 알고, 들여다 볼 기회가 많다. 정상적인 부모치고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없는 길몽이라도 꾸어서 자식에게 주고 싶은 심정이 세상 부모의 심정일터.
문제의 아이 뒤엔 문제의 부모가 있다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자녀들을 보듬고 사랑을 흠뻑 흠뻑 주면서 길렀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그건 부모의 입장에서 부모가 내린 판단이다. 아이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해달라는 것 다 해 줬는데, 저 아이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아예 집에 오면 제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아요."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몇 가지 궁금해서 물으면 엄마는 몰라도 돼 하고 짜증내고 화내고~"
"친정 엄마가 편찮으셔서 일주일 정도 집을 비워야 되는데 남편과 아들만 두고 가는 것이 걱정이 되요. 두 사람은 거의 말없이 지낼 건 뻔하고~ 서먹하게 거실에 앉아 있다가 각각 제방으로 들어가겠죠."
가정은 가장 작은 기초 단위로서의 사회구조이다. 유일무이한 특수한 상황과 사정이 내재되어 있고, 거기서 파생되는 갈등구조는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 이유와 형태와 색깔 또한 다양하다. 가정은 최고의 편안한 공간, 위로의 공간, 사랑의 공간이면서도 기대치와 예상치가 높은 만큼 갈등과 상처의 온상이기도 하다. 가족 끼리 주고받는 상체기는 이외로 깊고, 오래가고, 구석구석 끼치는 영향이 크다. 반드시 치유의 과정을 가져야 한다.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가 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공부해야한다. 자식 간에 소통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단절과 소통의 부재는 결국 건강하지 못한 사회를 만든다. 냉소와 불신과 소외된 사회! 그래서 외로운 사회!
오늘은 부모인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보자. 팍팍한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파트너로, 가장 든든한 동지로, 가끔은 연민의 마음을 담아 자식에게 다가가서 마음의 창에 노크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