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어머니에게 택배가?"
오전 7시 30분경 걸려온 전화 한 통에 김기창씨의 마음이 두근거렸다. 전날 뉴스에서 본 그 소식인가 싶으면서도 괜한 기대감일까 어머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상했다. 아흔 다섯, 어머니 앞으로 올 택배가 무엇이 있을까. '어제 그 소식 아닐까' 곱씹다 두 시간 후, 우체국에서 메시지가 왔다. 송이버섯이었다.
"북한 대통령이 보내왔어요!"
"마냥 우시죠. 뭐. 사실 어머니가 정신이 맑지 않으셔요. 연세가 워낙 많으시잖아요. 그래도 받으시고 우시더라고요. 사진 찍으며 웃어보라고 해도 내내 우시더라고... 여러 감정이 드시나 봐요. 그렇겠죠. 당연히…"
21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기창씨가 말끝을 흐렸다. 기창씨의 어머니인 김지성 할머니는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장애를 10여 년 앓고 있다. 할머니의 기억은 드문드문하다. 다만 가슴에서 꼭 쥐고 놓지 않은 기억이 있다. 북한 소식이다.
6.25 전쟁에서 헤어져 생사를 알 수 없는 할머니의 부모님과 네 명의 여동생. 기창씨가 북에서 온 선물이라고 하자 할머니는 송이버섯을 쓰다듬었다.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북한 대통령이 가족들 못 만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이렇게 선물을 보냈다고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우셨죠."
할머니의 고향은 개성이다. 그곳에서 나고 자라며, 선생님을 하다 결혼 후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신혼생활을 했다. 아들인 기창씨를 낳으러 개성에 갔을 때만 해도 가족들을 잃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6.25 전쟁 이후 가족을 모두 잃게 된 거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게. 마냥 그리워만 하고 사는 거예요. 제가 그 이름을 하도 들어서 잊어버리지도 않아요."
할머니에게 이산가족 상봉은 참 고약했다. 할머니는 지난 20여 년간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단 한 번도 성사된 적이 없었다. 4.27 판문점선언에 따라 지난 8월 이산가족이 만났을 때, 할머니는 억울했다. 왜 나만 자꾸 떨어지냐고 아들을 붙잡고 물었다.
기창씨는 그때마다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대한적십자사를 찾아갔다.
"김대성, 김장성, 김옥순, 김희명"
할머니의 여동생이자 기창씨의 이모들인 네 명의 이름을 적은 상봉신청서를 눈앞에서 확인시켜야 했다. 신청을 안 한 것도 못 한 것도 아니라고. 하긴 했는데, 그저 이번에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고. 그렇게 달래야만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얼마나 더 기다릴 수 있을까
18일,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평양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 내외가 공항에 직접 마중 나왔다. 남북 정상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할머니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
"어머니는 그냥 보기만 하면 우셔요. 우시는 게 일이에요. 어머니가 벌써 아흔이 넘으셨는데,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한시라도 빨리, 생사라도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기창씨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남북관계가 좋아졌으니, 문재인 대통령도 이산가족상봉을 우선순위에 놓는다고 했으니, 안심해도 될까. 아흔다섯, 할머니가 동생의 손을 잡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기창씨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지막까지 기대해봐야죠. 송이버섯뿐만이 아니라 어머니가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북한에서 온 송이버섯에도 가슴이 이렇게 뛰는데, 가족들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창씨가 송이버섯을 씻었다. 이가 하나도 없는 어머니에게 어떻게 드려야 할까. 잘게 빻아 어머니의 입에 넣어드리면 될까. 북한에서 온 송이버섯의 기운으로 올해에는 꼭 북쪽에 사는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송이버섯과 함께 온 대통령 내외의 인사말을 바라봤다.
"북한에서 마음을 담아 송이버섯을 보내왔습니다. 북녘 산천의 향기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부모 형제를 그리는 이산가족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고픈 가족의 얼굴을 보듬으며 얼싸안을 날이 꼭 올 것입니다. 그날까지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내외 문재인 김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