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검찰이 삼성의 노조파괴 수사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7개월 수사의 중간보고다.
검찰은 우선 "이 사건은 전사적인 역량이 동원된 조직범죄", "반헌법적 범죄"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그동안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업무방해죄 등으로 강하게 처벌해온 반면,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법정형이 상대적으로 가볍게 규정되어 있고, 사측에 유리하게 해석·운영되어 온 경향이 있어 우리 노사관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했다.
검찰이 이제라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공식인정했다는 점에서 반갑다. 또한 검찰의 말대로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확인하지 못했던" 삼성의 노조파괴 범죄를 공권력이 적극 수사하여 기소까지 했다는 점은 최초이기도 하거니와 삼성왕국이라 불리는 한국 사회에서는 상당한 성과라고 본다.
그러나 세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① 아직 '수괴'가 보이지 않는다
첫째, 이재용 총수일가 수사가 아직은 없다. 기소된 32명의 면면을 보면 실무자부터 중간관리자, 고위임원 정도이다. 이전에 비해 비교적 높은 단계까지 기소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최초 지시자 또는 최종책임자가 보이지 않는다. 기소된 이들이 삼성에 입사하기 전부터 반노조 범죄를 기획하였을까? 이들이 입사 후 스스로의 의지로 범죄를 실행하였을까? 이들은 이병철-이건희-이재용 80년 이씨 일가의 '무노조 경영철학'에 따랐을 뿐이다.
검찰은 또 "조직범죄"라고 했다. 우리 형법과 대법원은 조직범죄의 수괴, 즉 최종책임자를 공모공동정범으로 넓게 인정하여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 대법원은 "직접 실행행위에 참여하지 아니하면서 배후에서 범행을 조종하는 수괴는 그 행위의 기여도가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공동정범으로 처벌받지 아니하는 불합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하여 명시적·묵시적으로 범죄를 조종하고 지시한 두목을 처벌하고 있다.
즉 검찰이 "조직범죄"로 규정한 이상 "수괴"는 반드시 등장해야 한다. 아직 삼성지회(삼성에버랜드 사업장), S그룹 노사전략문건 등의 제2라운드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다음 수사결과보고 때는 총수일가의 죄상과 책임이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② 고용부와 경찰도 한패였다
둘째, 고용부와 경찰이 삼성과 유착하여 노조파괴 하수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 기소되지 않았다. 최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고용부는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근로감독 결과 불법파견이라는 일선 감독청의 최종보고를 이유 없이 뒤집고, 근로감독기간을 연장한 후 삼성 측에 근로감독결과를 사전 유출하였으며, 면죄부를 주기위한 온갖 정무적 공작을 벌였다.
또한 2013년 <S그룹 노사전략>이라는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단 한 번도 강제수사를 하지 않은 채 비합리적인 근거들을 내세워 이 문건이 삼성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며 무혐의로 종결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공개한 당시 고용부 수사보고서에는 노조파괴 문건 작성자가 삼성경제연구소, 작성지시자가 삼성인력개발원, 총괄수습단위는 미래전략실이었음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최종결과는 조사내용을 완전히 배신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2013년 근로감독 결과를 뒤집는 데에 주요역할을 한 고용부 관료와 노조파괴 문건 수사팀장은 동일 인물이었다. 이처럼 고용부가 삼성에 부역한 것으로 보이는 혐의점들은 충분한 규모의 증거로 존재한다. 검찰은 이 고용부 관료들을 반드시 기소해야 한다.
이와 함께 경찰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투쟁 과정에서 적재적소에 물리력을 과잉 투입하여 삼성을 훌륭하게 엄호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2014년 5월 염호석 조합원 장례식장에 난입하여 시신을 탈취해간 일이다. 현재 구속 기소된 김아무개 경정은 당시 고인의 아버지에게 브로커를 붙여서 삼성으로부터 수억 원의 돈을 받게끔 공작을 벌였다.
그 결과 고인의 아버지는 노조 장례를 치르기로 한 애초 의사를 바꾸어 시신을 가지고 고향으로 가겠다고 했다. 경찰이 데려온 브로커는 계획적으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10분도 채 되지 않아 300여 명의 기동대 병력을 장례식장에 투입했다. 가장 사적이고 경건해야 할 장례식장은 아수라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투입경위도 일절 설명하지 않고 방패로 조문객들을 내려찍는 등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으며, 최루액을 경고도 없이 불특정 다수 시민에게 살포하였다.
이날 체포연행자 수는 25명에 달했다. 경찰의 폭력은 이틀 뒤 밀양화장장에서도 계속됐다. 경찰은 고인의 아버지와 의견을 달리하는 어머니마저 물리력으로 가두었고 이를 항의하는 조합원들에게 또 다시 최루액을 난사하고 밀어 넘어뜨리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법적 판단을 떠나 이는 천륜에 어긋나는 악행이다. 게다가 그 가해자가 경찰이라는 것이 공포스럽다. 이 부분 경찰의 책임을 명명백백히 밝히지 않는다면 검찰은 노고에도 불구하고 제 식구 감싸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③ 그리고 법원
셋째, 법원에 대한 우려다. 지난 7개월 수사기간 동안 검찰은 총 16회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단 4회만 인용했다. 통상 구속영장 인용률은 80% 안팎이라고 한다. 그런데 삼성 사건에서는 기각률이 80%에 육박한다. 이는 굉장히 유의미한 통계임은 틀림없다.
법원은 삼성의 2인자 이상훈 이사회 의장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서 그 사유로, 물증은 있으나 진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했다. 진술만 있고 물증이 없는 경우라면 이해가 되지만 그 반대를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고소인과 변호인이 수사과정에서 제출한 증거와 검찰이 확보한 증거는 대부분 문서이거나 전자파일로서 증거능력이 상당하고 한 장소에서 압수된 문서의 양이 6천 건에 이를 정도로 전체적인 양도 방대하다. 혐의는 충분히 입증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영장이 기각된 대부분의 피의자들은 고위·핵심 지휘자들이다. 증거인멸우려가 상당하다는 뜻이다. 즉 삼성사건에서 검찰이 유독 무리하게 영장을 청구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제 법원으로 공이 넘어갔는데, 사법농단사태와 그 후속처리 과정에서 노출되고 있는 그들의 미덥지 않은 모습과 지금까지 삼성 앞에서 유독 작아지던 태도가 재판과정에서는 어떠할지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신화가 아니라 치욕이다
검찰이 삼성을 일반사건과 같이 수사하는 것을 보니 국정농단, 탄핵사태, 촛불혁명이 가져온 변화가 실감난다. 삼성은 '80년 무노조신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신화가 아니고, 헌법이 일개 사기업에 의해 무방비상태로 80년 동안 파괴된 대한민국 치욕의 역사라고 검찰은 자성해야한다. 검찰이 이제라도 반성문을 쓰고 제 길을 가려 하는 듯하다. 다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므로 위 열거한 과제들을 깊이 새겨 부디 완수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수십 년 고통받은 노동자에 대해 국민의 공복, 검찰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류하경 변호사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삼성대응팀 소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