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안명근사건'ㆍ'안악사건' 또는 '데라우치총독 암살미수사건' 등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일제가 본격적으로 우리 애국자들을 검거하여 갖은 악형과 고문으로 사상전향을 위해 꾸며낸 첫 번째 사건이다.
사건의 경위를 살펴보자.
1910년 12월 안중근 의사의 사촌 동생 안명근이 서간도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하여 자금을 모집하다가 황해도 신천지방에서 관련 인사 160명과 함께 검거되었다. 안명근은 서울 경무 총감부로 압송되어 심한 고문과 문초를 받았으며, 이 계획에 참여한 배경진ㆍ박민준ㆍ한순직 등도 검거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이들의 무관학교 설립 계획을 빌미 삼아 황해도 지방의 배일 민족운동을 말살시키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일제는 무관학교 설립자금 모금 운동을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위한 군자금 모금사건으로 날조하여 관련 인사는 물론 이 사건과는 무관한 민족진영 지도자들을 일제히 검거하였다.
이때 검거된 주요 인사는 김홍량ㆍ김구ㆍ최명식ㆍ이승길ㆍ도인권 등 주로 안악지방의 양산학교(楊山學校)와 면학회를 중심으로 문화 운동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다. 일제 경찰은 이 사건을 무관학교 설립 계획과 결부시켜서 더욱 확대, 날조하면서 잔인한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강요하였다.
일제는 이들에게 강도 및 강도미수죄, 내란미수죄, 모살미수죄 등의 혐의를 씌워 안명근 종신징역, 김구ㆍ김홍량ㆍ배경진ㆍ이승길 징역 15년, 도인권 징역 10년을 각각 선고하였다. 이들은 감형과 특사로 출감하였으나 혹독한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다.
일제 경찰은 안악사건의 취조 과정에서 드러난 비밀결사인 신민회의 간부들을 역시 데라우치 총독 이하 일본 요인의 암살음모사건으로 날조하여 검거하였다. 신민회는 1907년 초에 안창호ㆍ신채호 등이 독립사상의 고취, 국민역량의 배양, 청소년 교육, 상공업의 진흥을 통한 자체의 실력양성 등을 기본 목표로 설립하였다.
1910년을 전후하여 평안ㆍ황해도 등 서북지역에서는 신민화와 기독교도들을 중심으로 반일 애국 계몽운동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들은 서북지방의 기독교 신자 및 교사, 학생들로 구성되었고 회장은 윤치호ㆍ부회장은 안창호가 맡았다.
신민회는 평양에 대성학교와 정주에 오산학교를 세우고, 평양에 도자기회사, 평양과 대구에는 출판활동을 위한 태극서관을 세워서 운영했으며 <대한매일신보>를 기관지로 발간했다. 신민회는 또한 간도와 연해주 등지에 해외독립운동 기지를 설립하고자 했다.
일제는 이와 같은 신민회의 항일적인 성격을 알아내고 이 기회에 식민통치의 장애 세력을 뿌리뽑겠다는 목표 아래 105인 사건을 조작하였다.
'혐의'는 1910년 12월에 압록강 철교준공 축하식에 데라우치가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암살을 모의했다는 터무니없는 조작이었다. 이와 같은 각본을 꾸민 일제 경찰은 1911년 9월 윤치호ㆍ이승훈ㆍ양기탁ㆍ유동열ㆍ안태국 등 전국에서 600여 명의 애국지사를 검거, 투옥하였다.
일본관헌은 이들에게 야만적인 악형으로 허위자백을 강요하였다.
일제는 이들 중 105인을 재판에 회부하여 유죄판결을 내렸고, 전원이 항고하자 대구복심원에서는 105인 중 99명을 무죄로 석방하고 윤치호ㆍ양기탁ㆍ안태국ㆍ이승훈 등 6명에게 징역 5~6년형을 선고하였다. 이로써 사건의 날조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일제 경찰의 혹독한 고문으로 김근형 등 2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이 불구가 되었다. 이 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고문을 당한 선우훈은 뒷날 <민족의 수난>에서 고문의 실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음력 12월 8일 돌집으로 된 형구실에서 취조를 받았다. 심문관이 넷인데 우도(宇島)라는 경시는 조선말 잘하는 40세 된 자요, 상내(常內)라는 자는 키가 작고 얄미운 자요, 헌병 한 놈은 키가 크고 수염 많은 심술 사나운 놈인데 이 네 놈이 밤낮 30여일 간 혹형을 계속했다. 묻는 말을 부인할 적마다 네 놈이 달려들어 때리고 찼다. 두 엄지 손가락을 포승으로 결박하고 한편 팔은 앞으로 돌려 어깨 위로 올리고 한편 팔은 뒷등으로 돌려 두 손이 서로 닿을 만큼 하고 매어 다니 몸이 오척 가량 공중에 달렸다.
두 놈이 두 자 가량 되는 대막대기 두 개를 마주잡고 옆구리에서 허리까지 쭉쭉 훑으니 몸이 두 동강이 되는 듯 하체의 힘은 쭉 빠지고 전신의 기력이 없어진다. 다른 놈이 채찍으로 머리부터 다리까지 숨쉴 틈 없이 난타하니 땀은 낙수물 같이 쏟아지고 호흡은 하늘에 닿고 가슴에는 불이 붙고 코에서는 불길이 훅 훅 쏟아진다.
금시 목숨이 끊어질 듯 사지가 떨리고 눈에는 안개가 피어오르고 가슴이 터질듯하다. 이러기를 약 20분만에 전신은 동태같이 얼고 감각도 없어졌다. 눈은 곧아지고 혀를 빼어 물고 숨소리가 사라지자 이때는 맥박도 끊어져 죽는 것 같이 되는 때라 한다.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생의 기운이 명치 끝에서 계란만하게 뱅뱅 돌다가 점점 졸아들어 동전만큼 되는 때에도 청신경은 아직도 의식이 있었다.
악귀들은 감각이 남았는가 보기 위하여 회젓가락으로 다리를 지지고, 담뱃불로 얼굴을 지져보고, 벌린 입 속에 담배연기를 뿜어도 본다. 얼굴에 물을 뿌린 후 백지를 발라 봉창을 한다.
호흡이 통하지 않음을 보고 "아부나이 아부나이(위태하다)" 하면서 줄을 늦추고 채찍질을 두 차례 하고 가슴과 머리를 치고 배를 걷어차고 돌바닥에 메쳐놓고 귀와 머리카락을 끌고 다니면서 돌바닥에 메친다. 그리해도 돌과 같이 뭉친 밤알같은 숨덩이는 풀어지지 않는다. 이윽고 맥박이 살아나니 온몸이 바늘이나 송곳으로 쑤시는 것 같다.
그래도 호흡이 터지지 않으니 코에다 물을 부어 두 주전자가 들어가니 가슴이 터질듯 하다. 엎어치고 젖혀도 호흡이 안 트이더니 부어넣은 물이 쏟아지는 동시에 호흡이 열렸는데, 그동안 30~40분은 걸렸을 것이다. 웃옷 한 조각만 입고 하체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 터지고 상하지 않은 곳이 없다. 이를 석탄제 위로 끌고 비비니 얼굴이나 몸뚱이가 가히 사람 꼴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