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육보조원으로 일하던 공익요원이 지속적으로 장애학생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2006년 교육부는 통합교육에 대한 수요 증가로 특수학교에 필요한 인력에 비하여 예산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때 교육부는 병무청에 인력 지원을 요청, 공익요원을 특수학교에 배치했다. 이들은 원래 일반 행정업무만 담당했으나 특수교육보조원으로도 일하기 시작했다. 장애학생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거나 생활하는 동안 신변처리와 급식지원, 교내외 활동 및 등하교 지원 등이 주된 업무였다.
문제는 이 특수교육보조원들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인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를 할 수 있어야 전문적인 인력이냐고 묻는다면, 그 경계가 모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장애학생의 수업 및 활동을 보조하는 데에 있어서 물리적 보조는 물론 학생에 대한 정서적인 보조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특수교육보조원의 장애 정도나 특수교육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교육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임시방편으로 투입하기 시작한 인력이기에, 이러한 사건은 늘 발생 가능성이 잠재해 있었을지 모른다.
'특수학교 폭행사건'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다
특수교육보조원은 단독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교사의 지시에 따라 장애 학생을 보조해야 한다. 즉 '교수학습 활동, 신변처리, 급식, 교내외 활동, 등하교 등 특수교육대상자의 교육 및 학교 활동에 대하여 보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교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특수교육보조원은 장애학생과 거의 밀착하여 생활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이기 때문에, 장애학생을 위한 수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교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해 둔 것 같다.
나는 장학사로 전직을 하고 작년 9월 1일부터 올해 2월 말까지, 한 학기 동안 특수교육업무를 담당했었다. 그때 늘 하던 생각은 특수교육은 고도의 전문성 그 이상을 요하는 분야라는 것이다. 특수교사는 사명감만으로 일하기는 힘들다.
이는 특수교육보조원도 마찬가지이다. 언어로만 봤을 때 그저 '보조역할'이지 법령에 나와 있는 '특수교육대상자의 교육 및 학교 활동에 대한 보조 역할'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장애학생의 신변처리 문제의 경우나 성인 학생이 많은 경우엔 특수교사에게도 혹은 활동보조원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특수교사나 혹은 공익요원을 포함한 활동보조원들은 장애학생에 맞는 일도 가끔 있다. 심지어 얼굴에 침을 뱉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하는 장애학생도 있다.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장애학생을 힘으로 제압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위험하다. 왜냐하면 앞뒤 맥락을 모르고 그 장면만 봤을 때 교사나 활동보조원이 학생을 학대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특수교사나 보조원 모두 녹록지 않은 조건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단순히 성품이 나쁜 어느 공익요원에 의한 일로 규정된다면, 이런 일은 또 일어날 것이다. 제도가 사람을 통제할 수 있도록 특수교육보조원 제도를 재검토 할 시점이다.
한 가지 더, 이번 사건이 일어난 학교를 검색해 보니, 사립학교다. 올해 스쿨 미투 운동이나 장애학생 (성)폭행 관련 사건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보면 '역시나'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립학교법과 사립학교의 특성상, 이 일은 다른 사립특수학교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 기회에 사립학교법에 대한 개정여론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이런 일이 지속되는 동안 도대체 교사는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특수교육 보조원은 특수교사 혹은 '교사의 지시'에 따라 '교수학습 활동, 신변처리, 급식, 교내외 활동, 등하교 등 특수교육대상자의 교육 및 학교 활동에 대하여 보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인데, 도대체 그 '지시'를 하는 교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갑자기 목이 확 메어온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장애학생에 대한 폭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면 교사가 몰랐다고 하는 것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을까?
나는 이번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태도를 재건축했으면 좋겠다. 장애인을 인격체가 아닌 그저 교육의 대상으로 보는 태도가, 더 좋은 특수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 하에 장애학생에 대한 이해와 지식은 물론 특수교육 보조원으로서의 전문성도 없는 공익요원들을 인력으로 '활용'하는 것에 그쳤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장애학생도 특수교육보조원 공익요원도 그저 교육의 대상, 활용할 인력으로 대상화된 것이 이번 참사를 낳은 것은 아닌가 한다.
이번만큼은 잠깐 소란스럽다가 장애학생 보호자들의 눈물겨운 인터뷰가 몇 번 나오고, 전수 조사한다면서 교실에 cctv를 설치하겠다는 이벤트로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가 이 사건을 보면서 그저 장애학생이 안됐다는 연민정도나 보내고, "저 공익요원이란 놈은 어쩜 저럴 수 있냐, 천하에 인간쓰레기" 같은 분노만 쏟아내고 마는 것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분노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라, 문제 인식의 출발점이다. 그저 분노만 한다면 그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분노하지 말고, 냉정하게 다시 나는, 우리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서정주 시인의 시 '신선(神仙) 재곤(在坤)이'에서처럼, 마을의 앉은뱅이였던 재곤이에게 "'재곤이가 만일에 목숨대로 다 살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罰)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추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오고 있"던 공감과 연대가 상식이 되는 시대를 꿈꿔본다.
덧붙이는 글 | 김현진 기자는 인권연대 회원 칼럼니스트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우리시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