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뜬 '2년 전 오늘'
페이스북을 열면 지난 시절 했던 일들이 표시된다. 페북을 개인적인 일들보다는 공적인 일들을 알리는 용도로 주로 사용하다보니 나름 의미 있는 날들이 많다. 하지만 과거에 무슨 일을 했다고 다시 상기하고 알리는 일이 무척이나 낯부끄럽고 열없어 삼가야 하는 일임을 알기에 담벼락에 다시 올리는 일을 하지 않아 왔다. 오늘 일들도 많은데… 굳이 과거의 일을 올릴 까닭을 찾기 어렵기도 했다. 그렇게 안 해 왔던 일을 오늘 한번 해 본 김에 글도 써본다.
아침에 눈 떠 페북을 열어보니 '과거의 오늘… 공유하세요'에 2년 전 오늘 '박근혜 하야' 첫 촛불집회를 제안했던 일이 뜬다. JTBC에서 최순실 태블릿PC 건이 첨 보도된 게 그해 10월 24일이니 딱 3일만이었다. 당시 뭐라고 썼는가 봤더니 "급하게 뭐라도 해야 하지 않냐는 이들과 함께 우선 내일 광화문 행진을 제안한다. 분노한 이들 모두 모이자. 함께 알려 나가면... '하야'하라. 탄핵이 있기 전에... 심판이 있기 전에... 타도가 있기 전에...'라고 쓰고 있다.
태블릿PC 보도 나온 후 바로 논의해 3일 만에 연 집회지만 나름 준비도 많이 했던 듯하다. 알림 웹자보 외 시민들과 나눌 부착용 스티커 '하야 부적'도 몇 종류나 만들었다. 당일 펼침막들은 이승만을 퇴진시켰던 4.19 당시 것들을 찾아 재현해 들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벗들과 함께 동을 떴지만 주최 등은 아예 없앴다. 분노한 모든 이들이 주체로 나서길 하는 소망이었다.
그 전날인 2016년 10월 26일엔 아마 백남기 어른 장례식장 지키러 또 들어가 있었나 보다. '어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있다 상황 종료 확인하곤 콜트콜텍 새누리당사 앞 농성 1년 규탄문화제엘 다녀왔다. 토요일엔 조선소 비정규직 우선해고 반대 거제희망버스를 타야한다... 박근혜 하야가 네이버 등 검색어 1위다. 스스로는 물러나지 않을 터.. 무슨 일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뭘까..'라고 쓰고 있다.
당시 거제도를 중심으로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있었는데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우선 해고당하고 있었다. 소리없이 잘려나가고 있는 그들의 문제에 연대하자고 다시 '거제희망버스'를 조직하고 있던 때였던가 보다.
조선소 공장들은 악독한 불법파견 비정규직 사업장들로 전체 노동자의 70% 가까이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이런 이들의 우선 대량해고 소식은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우리라도 대응하자고 대책위를 꾸리고 함께하고 있었다.
백남기 농민, 콜트콜텍 등 장기투쟁 해고자들, 1100만 비정규직들의 설움, 그런 모든 분노를 모아 그 모든 폭력과 독점의 정점인 박근혜퇴진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마음이었던 듯하다. 그 다음날인 27일 위의 첫 촛불집회를 제안하기로 했으나 알림 웹자보 등이 나오지 않아 우선 이 정도로 운을 띄워 두었으리라.
태블릿 PC 보도 후 첫 토요일 집회... 아예 집을 나와 광장으로
그해 10월 29일 토요일 거제희망버스를 마무리하고, 같은 날 박근혜퇴진 1차 촛불집회가 3만여 명의 분노한 노동자 시민들의 물결로 채워지는 것을 보고는 벗들과 우린 다시 무엇을 할까 논의해 아예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와 광장으로 나가자고 결의했었다.
해고노동자들과 당시 블랙리스트 대응 모임을 꾸리고 있던 문화예술인 등과 전격적으로 11월 4일 '박근혜퇴진 광화문캠핑촌' 운동에 돌입했다. 그날 문화예술인들은 7500명 선언과 함께 농성에 결합하며 '박근혜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로 재편되었다. 그러곤 박근혜퇴진 이후까지 다섯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여름용 1인용 텐트 하나에 기댄 겨울 노숙은 참 힘들기도 했지만 광장에 촛불을 단 하루도 끄면 안 된다고 매일 촛불문화제를 진행하며 즐겁고 벅차기도 했었다. 그 광장에서 해적신문의 원조였던 '광장신문'을 발행해 뿌리고, 매주 광장에서 '광장토론회'를 열고, 전국의 촛불광장에서 일주일 단위로 진화하는 '하야하롹 페스티벌', '퇴진하롹 페스티벌', '구속하롹 페스티벌'을 기획해 진행하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참칭해 '궁핍현대미술광장'을 세우고, 블랙리스트로 극장과 상영관, 전시관 등을 빼앗긴 예술인들과 함께 '광장극장 블랙텐트'를 세우기도 했다. 파견미술팀이 제작한 박근혜, 김기춘, 조윤선, 이재용 등 대형 스티로폼 흉상들과 9m짜리 촛불상징탑은 촛불 시민들의 최고의 포토존이기도 했다.
'광화문미술행동', 목요춤마당, 주말마다 대동풍물굿판을 앞세워 광장을 열어나가기도 했다. 함께한 쌍용자동차, 유성, 현대차비정규직, 기륭, 콜트콜텍 등 노동자들은 이재용을 축으로 한 재벌 구속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광장 점거부터 모든 게 불법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숨가쁘고 긴박했던 시간들... 그리곤 2년, 무엇이 바뀐 걸까
그해 11월 4일 배낭을 메고 광장으로 나서며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꿔버렸다'던 4.19 당시 김수영을 답습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썼다. 물론 바뀐 것도 조금씩은 있지만 난 왠지 김수영의 4.19를 다시 맞은 듯 쓸쓸하다. 나 역시 방만 바꾸고 앉아 다음 시를 읽고 있는 오늘이 씁쓸하다.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 혁명이란 /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 이게 무슨 개수작이냐 / 불쌍한 것은 그대들 뿐이다 /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그대들 뿐이다 / 최소한도로 / 자유당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을 / 혁명정부가 구육법전서를 떠나서 / 합법적으로 불법을 해도 될까 말까 한 / 혁명을 / 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그대들뿐이다 / 그놈들이 배불리 먹고 있을 때도 / 고생한 것은 그대들이고/ 그놈들이 망하고 난 후에도 진짜 곯고 있는 것은 / 그대들인데 / 불쌍한 그대들은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다 /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 / 보라 항간에 금값이 오르고 있는 것을 /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으려고 / 바둥거리고 있다 / ... // 이래도 / 그대들은 유구한 공서양속(公序良俗) 정신으로 / 위정자가 다 잘해 줄 줄 알고만 있다 / … // 차라리 / 혁명이라는 말을 걷어치워라 / ... / 창자가 더 메마른 저들은 / 더 이상 속이지 말아라 / 혁명의 육법전서엔 <혁명>밖에 없으니까'
( 김수영, 「육법전서와 혁명」중에서)
물론 나는 이렇게 우리 모두가 이루어냈던 촛불항쟁의 결과가 일부 '위정자'들에 의해 역사의 희극이 되어버리고, 무슨 코미디처럼 희화화되어 버리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다. 우리의 항쟁이 실패였다고 다시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 다시 쓰디쓴 담뱃진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하다'
(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 중에서. 1960. 10. 30)
라는 4.19 혁명 초기 김수영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 보고 있기도 하다. 그게 사실이고, 그해 촛불항쟁을 이루어냈던 1700만 촛불 우리 모두에 대한, 역사와 시대에 대한, 그리고 다시 다가 올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나조차도 문제라는 생각이 요근래엔 자꾸 드는지 모르겠다. 노동자들은 다시 저 높은 고공굴뚝에서, 망루 위에서 이명박근혜 시절 고공농성 최고기록인 408일을 깨고 있다.
전교조는 희한하게 여전히 법외노조고, 공무원해고자들은 복직되지 않고 있다. 박근혜도 시행령으로밖에 못했던 취업규칙변경자유가 법제화되고, 금산완화법이 규제프리즌법이 통과되고 있다. 풀려났지만 여전히 범법자 신분인 이재용을 대통령이 친히 인도에서, 백두산에서 '알현'하는 사진이 올라오고, 적폐의 최대본산인 자유한국당 등과 연정을 제안한다는 해프닝들이 보도된다. 고도의 정치술이니 여전히 '개돼지'들인 노동자민중시민들은 모를 수밖에 없다는 질타나 받게 된다.
모든 공작정치의 본산이었던 국정원은 어떻게 개혁되었다는 건지 알 수 없고, 쿠데타를 기획한 기무사도 이름만 바꾸고 병력 배치만 다시 하는 셀프개혁으로 되살아나고, 사법농단은 관련자 90%가 영장 기각이 되며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
이명박근혜 시절 국정농단의 최대 공모자였던 공무원사회는 여전히 특권의 영역으로 건재하고, 오히려 일부는 이 정권에 다시 붙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불쌍한 것은' 우리들뿐이다. 천국이 올지도 모른다고 위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뿐이다. 치솟는 땅값, 집값, 전셋값, 월세, 물가, 요지부동의 세금, 학자금, 여전한 1100만 비정규직 시대를 살며 '창자가 더 메'말라가는 우리다.
그런데도 새정부는 들어서자마자 앞으로는 철저한 적폐청산을 얘기하면서 뒤로는 모두가 피로감을 느끼니 적폐청산 얘기는 이제 그만하거나, 적당히 하고 빨리 '오늘 해야 할 일로' 넘어가자고 했다. 거대한 기만이자 이데올로기 공세였다.
도대체 누가 피로감을 느꼈다는 말일까. 적폐청산이 과거의 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나 천착이니 이제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적폐청산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과거에 매몰된 구닥다리 인식이라도 되는 듯 몰아붙인 것 자체가 거대한 음모이자 이데올로기였다.
각 사회 부문의 적폐 하나씩의 진상이 투명하게 규명되고, 합당한 책임이 물어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가치관과 윤리, 새로운 사람들과 운영원리가 따복따복 들어설 때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한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왜곡이었다. 그 적폐 하나씩이 걷어질 때 언론의 새로운 시대가, 법의 새로운 시대가, 공작기관들의 새로운 시대가, 교육과 문화의 새로운 시대가, 노동과 복지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너무나도 간명한 진실에 대한 음해와 척살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거리로 광장으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다시 오늘도 거리로 광장으로 나서야 한다. 문화예술계에서는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좌초된 책임을 물어 오는 11월 3일(토)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2018 문화예술인 선언 및 대행진'을 연다.
촛불항쟁의 첫 집회를 제안하고 2년이 지난 오늘 다시 거리와 광장으로 나서자고 또 다시 제안하는 우리의 오늘이 마음 편할 사람이 누구 있을까. 드러난 블랙리스트 사건도 제대로 진상규명해 책임자를 처벌하지 못하는데 여타 부문의 적폐청산은 어떠할지 듣고 보지 않아도 갑갑하다.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1호로도 얘기되었던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이명박근혜 시절 10여 년 동안 1만여 명에 이르는 문화예술인들을 사찰·검열·배제해 오면서도 단 한 명의 양심선언자도 없었던 문체부의 '징계 0명' 자체 셀프면책에 의해 좌초된 상태다.
검토해봤더니 법적으로 어렵고, 이렇게 해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어깃장이다. 미안하지만 김수영 말을 빌려 '개수작'이다. 애초 블랙리스트 사건은 대통령직속 진상조사위로 꾸려지든가, 특별법 등에 기반해 진행되어야 했다. 민간이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얘기하기 전에 그들 스스로 그렇게 해야 권한 등을 가지고 실체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해야 했다.
민간이 줄곧 요구해야 하는 사항이 아니라 촛불항쟁의 최대 요구인 '적폐청산의 과제'를 위임받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한 대통령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이고, 일을 풀어나가는 자세와 관점이어야 했다.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계에만 국한된 헌정유린, 국정농단 사건이 아니었다. 이명박근혜 정부는 모든 사회부문의 보수화, 식민화, 전체주의화를 위해 법조, 복지, 교육, 언론 등 모든 행정 부문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실행했다.
이런 미진한 진상규명 부분에 대한 반성과 사과, 그리고 대안을 내놓아도 시원찮을 판에 최소한의 과제조차 형해화시키고도 무시와 방관과 실력행사와 변명과 외면뿐인 이 정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다음은 이런 문제를 공론화하고 바로잡기 위해 오는 11월 3일, 문화예술인들이 박근혜퇴진운동에 전면적으로 나섰던 11월 4일 2주년을 맞아 추진 중인 '2018 문화예술인 선언 및 대행진' 안내글에 약간의 첨삭을 더한 글이다.
"일년 총수입이 500만 원도 안 되는 연극인들이 블랙리스트로 사찰 검열을 받아야 했습니다. 일년 총수입이 300만 원도 안 되는 문학인들이 블랙리스트로 찍혀야 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2000여 명의 영화인 블랙리스트 명단이 발견되었습니다.
국정원은 한국문학작가회의, 리얼리스트100, 민예총, 문화연대, 우리만화연대,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16개 단체를 중점관리단체로, 249명의 문화예술인들을 중점관리명단으로 관리해 왔음도 밝혀졌습니다. 풍문으로만 나돌던 9487명 명단도 실제 발견되었습니다.
이 명단을 공유해 문체부 각 과와 산하기관들에서 블랙리스트를 실행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교육진흥원, 국립극단, 국립극장,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해외홍보원, 예술경영센터, 콘텐츠진흥원, 출판문화진흥원 등 블랙리스트가 실행되지 않은 기관이 없었습니다.
문재인과 박원순과 안철수 등 자신들의 반대파를 지지했다는 정치적 목적만이 아니었습니다. 용산참사에 연대했다고, 4대강에 분노했다고, 5.18민중항쟁을 기억하는 작품을 제작했다고,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했다고,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했다고,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연대했다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연대했다고, 세월호 참사에 아파했다고 블랙리스트가 되어 있었습니다. 2700여 건의 실제 배제 건수도 확인되었습니다.
청와대가 콘트롤타워가 되고, 국정원과 경찰과 기재부와 공정거래위원회와 문체부와 그 산하기관들이 동원되어 저지른 총체적인 국가범죄였습니다. 문화예술인들만이 피해자가 아닙니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과 양심, 사상의 자유 등이 침해된 헌법유린, 국정농단으로 국민 모두가 피해자이고, 이 사회 민주주의 전체가 짓밟힌 야만이자 폭거입니다.
2016년부터 진상규명을 외쳐 왔습니다.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시민정부와 박근혜퇴진 예술행동위원회'를 꾸려 5개월동안 광장 농성을 하며 촛불 항쟁으로 전령들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간 500여 명의 동료 문화예술인들이 나서서 국가손배를 진행 중이고, 국정원도 고소고발하고, 헌법재판소에 블랙리스트 혐의로 박근혜를 추가 고소해두기도 했습니다.
2017년 7월 30일,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제도개선위원회'를 민관합동으로 세웠습니다. 현재도 한국작가회의와 민예총, 문화연대, 어린이책작가연대, 우리만화연대,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영화계, 연극인회의, 무용인희망연대, 민미협, 풍물굿위원회, 전국예술강사노조 등 많은 문화예술계가 모여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를 꾸려 운영 중이기도 합니다. 그 활동의 연장으로 각종 문화관련 법제도 개선안, 블랙리스트 재발방지안, 문체부와 그 산하기관들에 대한 혁신안을 준비해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충분치 않습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한시적인 장관 자문위원회 성격으로 조사권, 수사권 등이 없는 그 권한의 한계, 방대한 사건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조사인력과 기간 등의 한계로 미진할 수밖에 없어 추후 미진한 부분에 대한 '계속되는 진상규명'의 과제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문체부와 산하기관 조사도 충분치 못했음은 물론입니다. 체육계와 블랙리스트의 양면인 화이트리스트 부문은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문체부 외 몸통인 국정원과 이명박근혜 하 청와대 등에 대한 조사는 거의 불가능했고, 특검의 조사자료도 공유받을 수 없었습니다.
알려진 대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의 2018년 활동 예산은 정부여당, 문체부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아 '0원'으로 전액 삭감되었고, 이를 빌미로 하루속히 문 닫으라는 엄포와 압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처참한 심정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마다 민간이 기를 쓰고 나서서 문제를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 다시 블랙리스트 사건의 진실규명이 좌초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진상조사위가 11개월간의 힘겨운 조사과정을 통해 밝힌 구체적인 비위 행위를 적시해 권고한 131명의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와 징계 요구가 '수사의뢰 7명(실제론 4명), 징계 0명'으로 셀프면책된 상황에 문화예술인들의 분노와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문화생태계와 행정, 정책에 대한 불만도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반성과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과정조차 생략된 채, 문체부의 갑질과 관료주의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판단들입니다. 남북문제 외 각종 적폐청산이 적폐세력들의 저항 앞에서 무력화, 왜곡, 축소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었습니다.
이에 문화예술인들이 연대하여 2016년 11월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박근혜퇴진을 위한 문화예술인 7000인 선언에 나섰던 날에 맞춰 11월 3일 '적폐청산!,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 '2018 문화예술인 선언'과 '대행진'에 나서고자 합니다. 촛불항쟁에 함께 했던 여러분의 참여를 부탁드려 봅니다.
[선언 참여 방법]
◎ 보내드린 아래 구글독스에 직접 참여하시고, 3000원 이상의 연대기금을 납부해주시면 됩니다.
◎ 참여 의사를 메일, 문자 등으로 보내주시고, 연대기금을 납부해주시면 됩니다.(주변 문화예술인, 촛불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해주시고 참여하시는 분들의 성함만 보내주셔도 됩니다.
◎ 당일 참여 여부를 알려주시면 좋습니다.
[직접 참여하기]
2018문화예술인대행진
이렇게 비판하다보면 이 정부에 의해서도 '암묵적으로' 불편한 블랙리스트로 찍힐 수밖에 없더라도 할 말은 하고 '밤새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 마음껏 뱉'(김수영, 「눈」 중에서)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직접민주주의 광장으로 우리 모두가 나서서 이 혁명이 좌초되지 않도록 다시 키를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2년 전 오늘처럼 간곡히 제안해 본다. 11월 3일,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적폐청산!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 2018 문화예술인 대행진에 많은 촛불시민이, 태생 자체가 블랙리스트인 노동자들이, 동료 문화예술인들이 함께해주시길 제안드린다.
'구육법전서'를 넘는 혁명을 바라는,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고 다치지 않으려 바둥거리는 저들과 공모하려는 또 다른 4.19를 보고 싶지 않은, '창자가 더 메마른 이들'이 함께 나서주기를 바라본다.
김수영은 또 다른 시 '눈'에서 반복해 '민중은 영원히 앞서 있소이다'라고 했다. 우리 노동자·민중·시민은 지금도 뒤처져 있지 않다. 뒤처져있는 건 자꾸 '구육법전서' 뒤에 숨어 그 핑계를 대려는 이 정부다.
4.19 때도, 5.18 때도, 6.10 때도, 지난 촛불항쟁 때도 늘 적폐를 끌어내리고 앞서간 것은 거리와 광장에 선 평범한 주권자들이었지 구정치권이 아니었다. 그래도 우의를 담아 말하자면 우리는 촛불혁명의 과도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우리 모두의 일부인 문재인 정부가, 우리 모두의 요구이자 시대의 과제인 모든 사회 부문에서의 적폐청산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일을 좌초시키며 제2의 장면 정부가 되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또 다른 보수정권 창출의 따뜻하고 안전한 온상이, 숙주가, 밑밥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 다시 거리와 광장으로 나가더라도 그것은 '이명박근혜'로 표현되던 한국사회의 그릇된 근대를 바로잡는 일이 아니라 정말 더 평화롭고 평등하며 자유로운 어떤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일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