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대체 : 30일 오후 4시 37분]
대법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의혹을 받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013년 파기환송심을 거쳐 대법원에 재상고심이 올라온 지 5년 만이다.
30일 오후 2시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이 열렸다. 이들은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제철소에 강제동원됐으나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날 법정에는 원고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씨(98)가 휠체어를 타고 참석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원고 이씨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에게 각 1억 원씩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하며 신일철주금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씨는 말없이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앉은 법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피해자들은 국내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며 2005년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만에 일본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앞서 여운택씨 등은 지난 1997년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금과 미지급 임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으나 원고 패소 판결이 확정됐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다시 같은 내용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는 크게 네 가지 쟁점이 있었다. ▲ 일본 법원 판결이 우리나라 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 신일철주금이 구일본제철의 채무를 승계했나 ▲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소멸됐나 ▲ 소멸시효가 끝나 배상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신일철주금의 주장 등이다.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모든 쟁점에서 원고 쪽 주장을 받아들였다.
핵심은 1965년 협정으로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됐는지 여부였다. 재판부 중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1명이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손해배상 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 식민 지배 및 침략 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 청구권으로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청구권 협정은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지배에 관한 협상이 아니라 한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해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일본 정부는 청구권 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그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청구권에 관해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한일청구권 협정에 포함돼 권리가 제한된다"라고 봤다. 두 대법관은 이 때문에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쟁점도 원심과 같이 소멸시효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고, 구 일본제철과 신일철주금이 동일한 회사임을 인정했다. 또 일본 법원 판결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느냐는 쟁점에 관해서는 "선량한 풍속이나 그밖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앞서 해당 소송의 1·2심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이미 소멸됐다'고 판단해 일본 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은 '일본 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고, 서울고등법원은 신일본제철이 원고 1인당 1억 원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재상고심에서 새로운 쟁점 없이 선고를 5년 동안 미뤘고, 검찰 수사로 양승태 대법원-박근혜 정부의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