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적인 농담과 폭력이 익숙한 교실은 기존 교육의 한계점을 증명한다. 작년 여름에 시작된 '우리에겐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 캠페인과 지난 기사로 다루었던 교내 성폭력 고발(스쿨미투), '페미니즘 교육 공교육 도입 청와대 청원' 등이 성평등적인, 페미니즘적인 학교문화의 필요성이 얘기되는 지금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페미니즘을 고민하는 학생과 교사들이 있다. 우리는 행동하는교사회의 김지예(가명), 이교진(가명)과 교사지망생 이지윤(가명), 고등학교 재학생인 또삐(가명)를 섭외했다. 기존의 성차별적 학교문화와 기존 성교육의 문제점, 페미니즘 교육이 앞으로 나아갈 방식과 필요성을 알아보고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학교 안의 차별적 문화를 고발하다
첫 번째로 그들에게 학교에서 가장 싫은 문화나 본인이 요즘 고민하는 점을 꼽자면 무엇인지를 물었다. 교사로서 싫은 문화로는 먼저 '패드립'(부모에 대한 욕설)이 나왔다.
김지예씨는 패드립이 내면화된 마초적 남성성을 증명해준다고 설명했다. 서로 싫어하는데도 친구가 하니까 나도 하는, 보복성으로 패드립을 사용하다보니 이런 문화를 바꾸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그 다음으로는 '교직문화'를 꼽았다. '인권감수성이 부족해 잘못된 점을 느끼지 못하'고 '개인주의적인 분위기에 교사들끼리 소통하는 시간이 따로 없어 이런 문제점을 얘기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지윤씨는 반 친구들의 일상적인 혐오발언을 지적했다. "며칠 전에 애들이 뒤에 모여서 떠드는데 삼일한 얘기가 나오는 거예요. 여자는 삼일에 한 번씩 때려야한다, 이런 말 하면서 웃고." 페미니즘이나 미투가 이슈화되면서 형성된 공격적인 문화도 문제라고 답했다. 여학생들이 성평등에 대해 얘기를 꺼내면 '너 꼴페미냐?'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 다반사다.
수업시간에 성평등 문제를 다룬 선생님에 '저 쌤은 여자만 너무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경험을 말하며 "그냥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보자는 취지였는데 애들한테는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일단 공격하고 보는 문화가 없어졌으면 했다"고 얘기했다.
학교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것, 살만하신가요?
우리는 학교에서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에 대해 그들이 체감하는 바를 물었다. 공통적으로 그들이 말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기는 힘들다'는 점이었다. 또삐씨는 여고임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답했다. 페미니즘이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이미지가 한정적이다 보니 '페미니스트라고 규정당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지윤씨는 '정말 친한 친구와도 성평등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사람들이 '쟤는 페미니즘 때문에 저런 행동을 하는 거야'라는 편견을 씌워 버릴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도 있고, 성차별적인 발언을 지적했을 때 아무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공격당할 것 같은 기분?(때문인 것 같다.)"
규정 당한다는 두려움은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지예씨는 '남고에 다니는 교사로서 그런 발언은 자신의 앞길을 장담하지 못하게 되는 게 사실'이라며 예민한 이슈들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교사는 개인적인 언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의견을 표명하게 하는 말들은 자제해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편이에요." 도서관에 여성학 책이 적지 않지만 빌려가는 사람이 없고 학생들은 유투브 bj가 페미니즘을 소비하는 방식에 관심이 더 많다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어서 페미니즘 교육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말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이지윤씨는 최근 교대를 지망하는 친구들과 토론을 하는 모임에서 성평등 교육 얘기를 꺼냈다고 답했다. "같이 양성평등 교육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자고 했는데 정말 아무도 얘기를 못했어요. 너무 민감한 주제고 일단 우리가 받아온 성교육에는 그런 내용(성평등에 관한)이 없었잖아요. 갈피를 잡지 못하겠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효율적이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이 돼요."
생각해보니 보건 성교육 말고는 '성평등 교육'같은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기존의 성교육에 대한 얘기를 이어갔다. 또삐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받아왔던 성교육의 실효성을 지적했다.
"굉장히 나쁜 인상의 아저씨 인형 탈이 걸어오면 토끼 인형 탈이 '안돼요, 싫어요, 하지마세요!' 그러고 도망가는거예요. 실질적인 내용을 알려줘야 더 안전해지는 것 아닌가? (중략) 고등학교 때는 보통 영상을 보고 감상문을 쓰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거든요. 되게 수면유도 하는 것 같은? 맞는 말 같긴 한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그런 게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최근에는 성교육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정자난자의 수정과정이 아닌 안전한 성관계, 피임 등을 가르치는 학교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한계가 명확한 수준이다.
"최근에 맘이 안 좋았던 사례가 있었는데 성교육 강연이었어요. '서로 합의하에 성관계를 해야 한다'고 하시는 것까진 괜찮았는데 '그렇다고 막 성관계를 해도 된다는 건 아니에요.' 이런식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리는. 마지막에는 콘돔 씌우는 실습을 했는데 아무도 손을 안 드니까 씩씩한 여학생이 손을 들어서 나갔어요. 그런데 또 뒤에서는 '야, 잘 씌우네' 하면서 웃고, 결국 이런식으로 마무리가 되더라고요."
이교진씨는 콘돔을 씌우는 실습은 항상 여학생이 하는 장면밖에 본 적이 없다고 지적하며 '학교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지윤씨는 '이정도만 되어도 좋겠다'며 청소년들이 안전한 성관계를 하기 어려운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의 성교육이 올바른 성관계, 피임을 알려주지 않고 남성성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교육 영상 내용이) 여자 친구가 임신을 했는데 남자친구가 잠수를 탄거예요. 거기서 남자애들이 보이는 반응이 '저 새끼가 나쁜놈이네'인, 책임감을 오히려 좀 더 부여하는거죠. 중요한 건 사실 '실질적인 피임'은 어떻게 해야되고 '건강한 관계가 무엇인지'인데 이건 오히려 남자인 친구들한테 남성성을 더 부여하는 거예요."
필요없는 내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피임과 성관계에 대한 정보없이 이미 임신한 후의 책임만을, 그것도 구체적인 방법이 아닌 교훈에 그치는 것은 그 한계가 분명하다.
교과서로 배우는 인권
두 교사의 학교에는 새로운 과목이 개설되어 인권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강의를 하는 수업은 최대한 질문을 많이 받고, 그 외에는 영화를 보거나 발표를 하고 모둠으로 토의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 시험을 봐야하기 때문에 진도의 압박이 작지 않았다. 깊은 내용을 다루기 어려웠고 생소한 수업방식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의구심을 받았다.
이교진씨는 '인권수업 진행 중 장난으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학생에게 화를 냈던 적이 있었다'며 평등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학생을 통제하게 되는 모순을 얘기하기도 했다. "저에게는 시행착오지만 그 친구한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고, 이런 게 밤잠을 설치게 했어요."
지역에 따라 인권교육의 진행에도 차이가 있었다. '연구하는 교사들도 많이 계시고 학부모들의 인식도 바뀌다보니 인권교육이 대도시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진다'며 다른 지역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지윤씨가 기억하는 인권교육은 학교에서 틀어주는 영상이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고 장애이해교육은 시혜적이고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혼자할 수 있는 일도 도와주도록 시키는 교육은 너무 형식적'이라고 지적했다. 그 외에 인상 깊었던 인권수업이 있었냐는 질문에 작년 국어수업 얘기가 나왔다.
영상을 보여주거나 글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적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강의식 수업이 아닌 것이 불만이었다. '시험을 봐야하는데 외워서 공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업 내용에 공감이 가기 시작했고 새로운 수업방식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애들이 한 학기 지나고 나면서 그 수업을 굉장히 즐거워하기 시작했어요. 암기식이 아니니까 그 수업에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점? 그리고 그 시간에는 진짜 공부안하는 애들 있잖아요 그런 애들도 다 참여했어요. 어떤 시에 대해 그림도 그려보고 이런식으로 애들이 흥미있어 할 만한 걸 많이 했거든요."
성평등한 학교를 상상하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생각해온 성평등 교육, 성평등한 학교 문화의 방향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지윤(교사 지망 고등학교 재학생): "'얘들아 우리 성교육할거야, 성평등교육 할 거야' 그러면 거부감이 커서 어떤 말을 해도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의 다름, 경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이런 일들이 있는 거잖아요. 따지고 보면 다 나랑 다른 사람을 배척하려는 움직임?
예를 들면 장애인을 일상생활에서 격리시키고 인종에 따라 처우를 달리하는, 그런 격리들이 모여서 사회 전체 구조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그런 차별들의 예시를 찾아서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고(성평등 교육이). 내가 힘든 점만 얘기하면 결국엔 싸울 수밖에 없잖아요. '힘듦의 연결고리를 찾아보자'는 얘기를 나눠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
김지예(행동하는교사회 소속 고등학교 교사): "적극적 우대조치를 수업할 때 '여성비례대표할당제' 내용이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여성들의 인권이 이미 상당한 수준인데 이게 왜 약자에 대한 우대조치냐, 는 질문이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통계를 가져갔죠. 지금 국회의원 중에 여성의원이 몇 명이고, 비례대표로 선발된 여성의 원이 몇 명인지를 보여줬어요.
그 수치를 보여주니까 다 '어, 진짜 적네'라는 반응이었어요. 만약에 여성할당제가 없었으면 비례대표 중 여성이 얼마나 됐을까, 하는 식으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여성비례대표할당제가 오랜 시간 누적되어 온 차별에 일정한 혜택을 부여하는 '적극적 우대 조치'가 될 수 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전 통계자료를 이용해서 어떻게 접근할지 생각해보면 길이 좀 있지 않을까, 해요."
이교진(행동하는교사회 소속 고등학교 교사): "우리나라에서는 페미니즘이 불필요한 논쟁과 반감, 방어적인 공격을 만들어내는 용어로 되어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성평등 교육을 좀 더 수월하게 하는 방식'을 고민해야할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우리의 출발선을 확실히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남학생들은 대화를 할 때 '팩트', 그러니까 과학적 사실 같은 걸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김지예 선생님도 그걸 염두하시고 통계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 같아요.
결국 그게 페미니즘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감수성 교육도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페미니즘이 뭔지, 책 한 권 안 읽어도 충분히 이해하잖아요. 이와 더불어 학교자체의 민주적이고 인권친화적인 문화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입시 위주의 교육이 점차 변화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삐(고등학교 재학생): "전 입학하기 전에 여고에 대한 기대가 컸어요. 여고가 인권 친화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왔거든요. 그런데 입학하고 나서 교복 공동구매를 했거든요. 그 때 당연히 바지교복이 있겠지, 하고 바지교복을 달라고 했는데 공동구매에는 바지교복이 없다는 거예요. 주변에 여중 나온 친구들이 있는데 바지교복을 편하게 입고 숏컷하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환상이 깨지는 걸 느꼈어요.
바지교복을 입는 사람이 적은 수라고 해도 입을 사람은 있으니까 챙겨줘야하는 거잖아요. 그런 생각의 전환이라도 해주는 게 학생의 권리를 보장해주는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래도 조금씩 바뀌어나가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지적에 발언을 고치시고 하는걸 보면서 앞으로 여성인권이 성장할 가능성이 창창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과 얘기들을 나누고 헤어졌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김지예씨는 요즘 좋아하는 말이라며 문장을 소개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십 년 후에는 상식이 된다'는 말이 있어요. 전 그 믿음으로 하면 된다고 믿어요."
학교는 생각보다 폐쇄적이고 변화가 느린 곳이다. 차별적인 학교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사람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 기사를 통해 학교 안 성평등 문화를 함께 고민해주시길 바란다. 고민하는 자신에게, 함께하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용기를 복돋아주시라.
다가오는 토요일에 청소년들이 모여 발언을 진행하고 요구안을 전하는 스쿨미투 집회가 열린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