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좋아졌고 기업들의 배당이 늘었는데 (외부 영향으로) 주가는 낮아졌죠. 한국 가계가 주식을 할 좋은 타이밍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31일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이 한 말이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추락하는 한국 증시 대진단 정책토론회'에서 발제자 김 센터장은 한국 주식시장을 진단했다.
그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자본에 비해 주식이 많이 싼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지금 정도라면 (투자하기에)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김 센터장은 "(오랫동안) 한국 증시가 저평가돼왔는데 2004~2007년에는 (좀 더 높게) 재평가됐다"며 "그때보다 경제 활력은 떨어졌지만, 기업 배당이 늘었고 주가는 낮다"고 덧붙였다.
한동안 2100선을 유지해오던 국내종합주가지수(코스피)가 지난 29일 1900선대로 폭락하자 일부에선 우리 경제가 나빠져 코스피가 22개월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분석을 쏟아냈었다. 이후 31일 현재 코스피는 2029 수준으로 소폭 반등했다.
갑작스런 코스피 하락 "중국에 맞물려서..."
김 센터장은 미중 무역분쟁으로 우리 경제가 중국 쪽 영향을 받아 주가가 급락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경제가) 중국에 맞물려 있어 최근 주가가 조정을 많이 받았다"며 "(세계적으로) 미국을 상대로 한 수출이 늘면서 미국 경기가 좋아졌는데, 그게 잘 퍼지지 않아 (국내) 주식이 많이 떨어졌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계가 주식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지금이) 관점에 따라 한국경제 주식시장의 선순환 타이밍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한국 증시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적인 원인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비교적 배당에 인색하고,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않으며, 반도체 등 일부 업종에 이익이 쏠려있고, 사람들이 주식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센터장은 "기업들의 배당총액은 26조 원으로 많이 늘었지만 배당성향은 18%밖에 되지 않는다"며 "배당은 주식투자로 안정적인 이익을 내는 수단인데, 배당성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수익이 늘더라도 주주들이 받는 배당금은 그 만큼 늘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 그는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선 "우리나라 대기업 오너들이 적은 지분을 갖고 경영하는 것이 문제"라며 "4대 재벌기업이 아닌 곳의 배당성향이 더 높았는데, 이는 지배구조와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투자자들이 경영자를 감시하는 제도인 공시 등이 개선되면 한국 증권시장이 제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지난해과 올해 우리 경제는 반도체가 살렸다고 말할 수 있다"며 "그렇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반도체, 화학업종은 부침이 심한 사업이어서 저평가하게 돼 (투자를 꺼린다)"고도 말했다. 또 "자금이 부동산시장에 몰리는 것은 (돈을 벌어들인)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라며 "집단적으로 주식에 성공한 경험이 별로 없어 지난 9년 동안 사람들이 투자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증권전문가들도 공감을 표했다. 토론에 나선 최석원 SK증권 상무는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제공하는 믿지 않는 경향이 크다"며 "단기 수익을 얻으려는 사람들만 (주식시장에) 남아있고, 장기투자자들은 떠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배당성향을 높이도록 하는 등 기업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구용욱 미래에셋대우증권 상무도 "기업들이 배당을 늘리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한국시장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투자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기업의 경영정보 투명성도 중요하다"며 "대기업들은 공시도하고 기업공개(IR)도 하는데 그렇지 않은 기업들도 많다"고 구 상무는 설명했다. 그는 "기업 정보를 어느 곳이든 볼 수 있어야 한다"며 "정보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돼야 (투자가 늘 것)"라고 부연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한국증시를 보다 활성화하려면 주식거래세를 지금보다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거래세는 1930년대 주식시장의 투기적 거래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됐는데 현재에는 거래세를 줄여주면서 거래 활성화를 유도하는 것이 훨씬 절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0.3%인 주식거래세를 인하하고 장기적으로 폐지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국과 홍콩의 거래세는 현재 0.1% 수준이며 대만도 지난해 0.15%로 인하했다는 것이 황 박사의 설명이다.
정부 쪽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정훈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은 "(거래세 인하와 관련해)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선 (당국에서도) 다들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지 인하 속도, 시기 등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역사적으로 한국증시가 글로벌 증시에 비해 너무나 저평가돼왔는데 이는 국부 손실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자산이 부동산시장을 떠나 금융으로 가야 한다"며 "생산적 기업에 돈이 흘러가고 고용, 생산이 늘어야 우리 경제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