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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안경점과 도서관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두 번 나가기가 귀찮아서 한 번에 그 일들을 다 끝내고 싶었습니다. 보다 가까운 안경점에 들렀는데, 네다섯 명의 손님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조금 기다리다가 도서관에 먼저 가야겠다 싶어 조용히 나왔습니다.

안경점도 그렇지만 도서관도 정말 오랜만입니다. 어디에선가 독후감을 공모하는데, 우리나라의 역사를 만화로 엮은 책이 선정도서였습니다. 총 세 권짜리 책이었습니다. 사서 보기에는 부담이 돼 도서관에 가게 된 것입니다.

생각지 못한 반전
 
 나에게 그 도서관 직원은 또 한 명의 다른 착한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그 직원 덕분에 나는 책 세 권을 잘 빌려왔습니다.
나에게 그 도서관 직원은 또 한 명의 다른 착한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그 직원 덕분에 나는 책 세 권을 잘 빌려왔습니다. ⓒ unsplash
 
신발을 벗어서 신발장에 넣고 1층 문을 열었습니다. 두 분이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 분은 정신없이 바쁘게 하는 것 같아서, 다른 분에게 오게 된 이유를 말했습니다.

그는 내가 말한 저자와 책 제목을 컴퓨터로 검색하더니, 그런 책은 지금 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나는 힘이 순식간에 빠져버렸습니다. 책이 없으면 마을에 있는 다른 도서관에 가거나 아니면 먼 곳에 있는 중앙도서관에 가야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없느냐고 했더니 신간도서 구입 신청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2~3주 뒤에 책이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그 책은 역사를 만화로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럼 안 된다'고 했습니다. 만화는 구입 신청이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안 된다는 말에 더 절망적인 상태가 됐습니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안경점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을 열고 신발을 신은 다음에 밖으로 나와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얼마 뒤에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서 몸을 돌렸습니다. 아까 대화를 나누는 안내데스크 직원이 슬리퍼를 신고 급히 따라오며 부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도서관에 책이 있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 그때의 기분은 뭐라고 표현해야 될까요? 극적인 반전도 이럴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어두웠던 내 얼굴이 금방 환해졌습니다. 그를 따라서 다시 도서관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와 나를 보면서 천천히 말해주었습니다. 인근에 있는 도서관 세 군데에 알아보니 한 군데는 없고, 한 군데는 한 권만 있고, 한 군데는 세 권이 다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세 권이 있는 그곳을 알려줄 테니 빨리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날 나는 집에서 서두르느냐고 휴대폰과 늘 차고 다니는 시계를 놓고 왔습니다. 휴대폰이 있었더라면 그건 내가 검색해서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는 작은 종이에다가 타야할 버스 번호와 내려야 되는 버스 정류장을 적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나가서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정류장이 있을 테니 거기에서 버스를 타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버스는 환승 없이 한 번만 타면 된다고도 말해주었습니다.

책이 없다고 해서 힘이 빠져버렸던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이 샘솟았습니다.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종이를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신바람이 났습니다. 정류장에 가서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을 보니 5분밖에 안 남았습니다. 안경점은 거기에 가서 책을 빌린 다음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

마침내 기다렸던 버스가 왔습니다. 승객도 거의 없어서 편안하게 앉아서 갔습니다. 한 20여 분 정도 갔을 겁니다. 가는 동안에 그를 생각했습니다. 그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몰랐습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이용자의 입장을 생각해서 일을 했는지 나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고 가정해봤습니다. 누군가가 와서 필요한 책을 말했습니다. 당연히 나는 컴퓨터에서 검색을 해봅니다. 그랬는데 그가 필요한 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에게 그 책은 없다고 말할 것이고, 그는 도서관에서 나갈 것입니다. 내 일은 그것으로 끝납니다. 도서관 직원으로서 내가 할 일을 나는 다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직원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나간 다음에 그 도서관에서 가까이에 있는 다른 도서관을 일일이 알아봤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했을 것입니다. 좋은 정보를 알게 됐더라도 그곳에서 나간 나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빨리 알아본 알찬 정보를 나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매우 급하게 뛰어나왔을 것입니다.

그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교통편까지 상세하게 잘 알려줬습니다. 한 번만 타고 가는 버스를, 그것도 도서관에서 가까이에 있는 정류장에서 타라고 말해줬습니다.

도서관 직원이라면 그것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인지 나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타성에 젖었다고나 할까요. 찾아서 없으면 '없다'고 상냥하게 말하는 것으로 그쳤을 겁니다. 그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 고마웠던 이유입니다.

언젠가 어느 잡지에서 '좋은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 가운데 하나가 토털 서비스(Total Service)'라고 한 것을 봤습니다.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이 성경의 '착한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그는 강도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심하게 다친 사람에게 다가가서 토털 서비스를 했습니다. 상처를 치료해 주었고, 자기 나귀에 태워 인근에 있는 여관에 데려가 하룻밤을 돌봐줬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떠나면서 여관 주인에게 그를 잘 돌봐달라고 하며, 거기에 든 비용은 나중에 돌아올 때에 갚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직원이 한 일과 사마리아인이 한 일은 다릅니다. 하지만 자기가 만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서 봉사한 점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그 도서관 직원은 또 한 명의 다른 착한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그 직원 덕분에 나는 책 세 권을 잘 빌려왔습니다.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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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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