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는 결혼 이후 가족 내 성차별적 호칭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싸워온 청오리(활동명)의 경험을 풀어낸 에세이로, 총 4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 글은 그 세번째입니다. - 기자 말
2018년 3월 4일. 광화문 광장에서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대회가 열렸다. 나는 옷장을 뒤져서 결혼식 피로연 때 입었던 드레스를 찾았다. 남편은 종이를 오려서 내가 주문한 문장대로 피켓을 만들었다.
'아주버님, 도련님, 아가씨…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은 여성차별적인 <표준언어예절> 가족관계 호칭을 개정하라'
사회에서 한창 미투 운동이 이슈가 될 때였다. 서지현 검사의 고발 이후로 정치계, 예술계, 연예계 등등에서 남성들이 저지른 성폭력에 대한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왔다. 여성들의 고발과 증언을 들으면서 나 역시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 심정이었기 때문에, 1인 시위를 계획하면서도 걱정이 됐다. 지금 사회적으로 가장 큰 이슈는 미투 운동인데, 내가 다른 이야기를 얘기해도 괜찮을까? '화력'을 분산시키지는 않을까? 사람들이 너무 나댄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가족 호칭은 지금 말하기에는 너무 사소한 주제가 아닐까.
피켓을 들고 광장에 서 있자 여러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나갔다. 한 여성이 다가와서 말했다. 자신의 아들도 결혼했는데 아들 와이프가 도련님, 아가씨 소리 하는 게 불만이라고. 또 다른 여성은 정말 호칭이 문제라면서, 도련님과 아가씨뿐 아니라 시댁이라고 부르는 습관부터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들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한 기자는 자신도 결혼한 사람이라서 이 얘기가 뭔지 너무 잘 안다고 말했고, 한 PD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이 있다며 전화번호를 받아 갔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오랫동안 내 안에 있었던 한 가지 생각이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말해 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생각. 누구도 듣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
어릴 때부터 노출된 숱한 폭력들
살아오면서 나 역시 많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숱한 폭력에 노출됐다. 어린 시절 가정 폭력으로 아버지를 신고했을 때, 출동했던 경찰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가족의 말에 발길을 돌렸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도서관 근처에선 종종 낯선 사람들이 튀어나와 자신의 성기를 흔들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차 안에서 자위하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길을 지나갈 때 남자들이 가슴을 만지고 도망가도, 동네를 순찰하던 경찰은 그런 건 잡을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성폭력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해도, 마치 내가 말했다는 사실 자체가 없는 일처럼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물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외쳐도 물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가닿을 수 없다고.
광장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 나는 처음으로 사람들과 내가 똑같이 땅 위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있었던 상처 부위가 아주 조금은 아무는 것 같았다.
나는 컵 사진과 편지글, 시위하는 내 모습이 실린 인터넷 기사 링크를 모두 모아서 시가 단체대화방에 올렸다.
'저는 이 호칭 문제가 개인 간의 다툼일 뿐 아니라, 한국 사회가 나에게, 또한 여성에게 가하는 억압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주버님'은 끝난 얘기라고 했지만,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제가 정하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남편 형은 두 시간 후에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더 이상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연락하지 마라. 그런 일에 신경 쓸 시간도 여유도 없다.'
시어머니는 나에게 긴 메시지를 썼다.
'나는 이쯤 되니 네가 걱정된다. 건강이나 집 장만처럼 너희들이 당장 신경 써야 할 문제도 많은데… 너희들 잘 살 궁리했으면 좋겠고… 예쁜 네 모습이 변해가는 것도 싫고… 네가 처음 호칭 얘기를 꺼냈을 때 내가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으면, 당장엔 속상했어도 일이 이 지경까지는 안 됐을 텐데 시어미로서 자책이 되는구나. 너희들이 자신을 위해서 지혜롭게 살았으면 한다. 실속을 차려야 해. 너희들은 소중하니까….'
시어머니는 메시지를 보낸 다음,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신이 너무 모질게 말한 것 같다며 자책 어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남편 형 부부가 또 한바탕 난리였다고 하소연하며 덧붙였다.
"너희들은 어떨지 몰라도, 우리들은 보통 사람이야. 큰애는 더 그렇고. 걔들은 사회적인 문제 이런 거 몰라. 그러니까 걔들은 그냥 걔들 인생 살게 놔두면 안 되겠니?"
인터넷에 기사가 난 후에 댓글 창은 응원하는 목소리와 비난하는 목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어디서 계집이 감히', '꼴페미들… 너희들의 목적이 결국 이거였냐'는 등의 댓글을 보고 있으니 이제는 내가 묻고 싶었다.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남편에게 왜 그러고 사느냐고 훈계하는 사람도, 저런 여자 만나서 힘들겠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격지심이라는 댓글, 이름일 뿐인데 왜 집착하느냐는 댓글도 마치 학교에서 배워온 것처럼 수두룩하게 달렸다.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나간 이후에 마주한 반응은 한층 더 격렬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박 글을 달면서, 가족 호칭을 바꾸자는 저 여자의 주장은 단순히 이름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엄연한 한국 가족 구조의 근본을 뒤흔드는 것인데, 다들 저런 의도를 꿰뚫어 보지 못한다고 개탄했다. 또 다른 이는 여자와 남자는 다른 존재인데 평등해지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도대체 호칭이 뭐기에?
도대체 호칭이라는 게 뭐기에? 나는 새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가족 호칭이 차별적이라고 말하는 순간, 너무나 많은 사람이 평정심을 잃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한국 사회의 뇌관 하나를 밟아버린 것 같았다.
한 달 후에 남편 형 부부의 둘째 아이 임신 소식이 들려왔다. 시부모님은 나와 남편을 찾아와서 당분간은 조용히 살자고 당부했다.
"가만히만 있어. 연락할 필요도 없어. 싫으면 걔들 안 보고 살아도 돼."
어느 날 시아버지가 남편과 둘이 저녁을 먹을 때, 남편 형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편은 인사나 하겠다며 시아버지로부터 전화기를 넘겨받았다. 남편이 둘째 가진 걸 축하한다고 하자, 남편 형은 왜 요새 연락도 없었느냐며 살갑게 대꾸했다. 남편은 말했다.
"가족이 아니라며?"
"에이, 그런 말 때문에 연락 안 한 거야?"
천연스럽게 대답하는 형을 보며, 남편은 형에게 사과할 의향은 없는지 물었다.
"너희들이 공식적으로 사과하면, 내가 개인적으로 할 수는 있어."
"하나만 물어볼게. 형은 아직도 청오리를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해?"
"어."
남편은 전화를 끊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남편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모님과 함께 있으니 통화하기 어렵다는 말. 나는 전화를 끊고 단체대화방에 메시지를 썼다.
'오늘 이야기 잘 전해 들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저는 두 사람의 아랫사람이 될 생각이 추호도 없답니다. 두 사람이 저를 아랫사람으로 생각하건 낮은 위치로 생각하건 그건 자유이지만, 그런 말을 입 밖에 냈을 때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죠. 지금까지는 이야기를 통해 원만하게 매듭지어볼까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번 주 안에 새로운 소식 전하겠습니다.'
나는 메시지를 보내고 시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아홉 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하루 일과의 피곤함과 반가움이 섞인 시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애잔한 마음이 스쳐 갔다. 나는 말했다.
"남편 형 고소할 겁니다."
"왜? 도대체 또 무슨 일인데?"
"오늘 얘기 들었어요. 저보고 또 아랫사람이라고 했다죠? 저는 그런 얘기 용납 못합니다."
시아버지에게 말했다 "고소할 겁니다"
전화기 너머 땅이 꺼질듯한 한숨이 이어졌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아랫사람 윗사람이 왜 문제야. 뭐든 문제 삼으면 문제로 보이는 법이야."
"그렇게 본다면 고소하는 것도 문제는 아니죠."
"내가 볼 때는 네가 별것도 아닌 걸로 지나치게 크게 생각하는 것 같아. 받은 것 이상으로 갚아주려는 것 같아."
"별건지 별 게 아닌지 누가 판단하나요? 저는 이번 일이 가정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차별? 폭력? 동서라고 부르는 게 폭력이라고?"
"지금 동서라는 호칭 하나만 얘기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아랫사람이니 낮은 위치니 떠들어대는 거 아니겠어요?"
"떠들어? 지금 여기서 너만큼 많이 떠드는 사람이 어디 있냐. 어디 나와보라 그래. 네가 친구들한테, 회사 사람들한테 다 말하고 다녀서 이러는 거 아니야."
"지금 제가 말하는 게 문제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얘기가 자꾸 나오면 싸움이 생긴다고. 애초에 내가 전화를 바꿔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걔들, 우리한테 일절 연락도 없다가 이번에 인사한다고 찾아와서 한 번 봤어. 전에 백일잔치 때 한 번 보고 이게 처음이라고. 너 때문에 손자도 못 보고 이게 뭐야."
"그렇게 생각하시면 제가 드릴 말은 없네요."
"윗사람 아랫사람이 문제라면 내가 제일 아랫사람 할게. 그러면 된 거 아니야…."
"지금 제가 윗사람 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세요? 지금 제가 겪고 일이 차별이고 폭력이기 때문에 이러는 거잖아요."
"차별이고 폭력이라… 나는 도무지 네가 하는 말이 보통 사람이 하는 말로 안 들려. 너 운동권이냐?"
"네? 그게 뭐가 중요해요?"
"나한테는 중요해. 말해 봐."
"자꾸 얘기를 돌리시는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말할게요. 윗사람 아랫사람이라고 서열을 강요하는 것, 한 사람이 뭔가를 불편하다고 말했을 때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낮은 위치니 뭐니 막말하는 것, 이런 것 전부가 차별이고 폭력입니다."
"그래서, 네가 고소를 한다고 해서 얻는 게 뭔데? 네가 이긴다는 보장이 있어?"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가요? 고소하는 걸로 충분하죠."
"왜? 얻는 것도 없으면서 뭐 하려고?"
"아랫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되려고요."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마라…. 호칭도 바뀔 때가 되면 알아서 바뀌겠지. 뭐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게 좋은 거야."
"저만 이 호칭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줄 아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다 문제라고 해요. 차별이라고 하고요. 왜 그런 목소리는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그런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여러 사람이 불편해야 해? 너 때문에 이 난리가 나는 게 좋아?"
"저는 아랫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되기 위해 싸울 겁니다."
시아버지는 전화를 끊었다.
밤 열두 시쯤에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남편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당장 남편을 바꾸라며, 지금 자신의 장모님과 아내가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남편이 전화기를 무음으로 바꿔 놓고 자서 통화가 되지 않으니 내 쪽으로 전화를 건 것 같았다. 나는 대답했다.
"나랑 얘기해. 나도 입 있고 귀 있어. 당신만 있는 거 아니야."
"뭐? 당신? 지금 당신이라고 했어?"
"기분이 나쁘세요? 저한테는 별별 소리를 다 하면서 고작 당신이라는 호칭도 받아들이기 힘드세요?"
"결혼했으면 당신은 내 아랫사람이야" 난 큰소리로 웃었다
남편 형은 소리쳤다.
"당신 결혼했어, 안 했어? 결혼했으면 당신은 내 아랫사람이야! 내가 이 집의 큰 사람으로서 말하는 거야!"
나는 큰 소리로 웃었다. 대체 남편 형 부부가 생각하는 '윗사람'은 뭘까? 돈이 걸린 것도 아니고, 그들의 말처럼 나에게 일을 시킬 것도 아니라면, 왜 '윗사람'이 되기를 고집하는 걸까? 그냥 서열이 낮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입을 여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걸까?
어수선한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았다. 출근길에 휴대 전화가 울렸다. 시아버지의 메시지였다.
'어제 잘 잤니? 나는 밤을 지새웠다. 새벽까지 큰애의 울부짖음과 비명을 듣다 보니… 너도 힘들었겠지만, 어젯밤 창에 가슴이 찔린 사람이 여덟이나 된단다. 큰애와 처, 어린아이와 뱃속의 아이, 마침 저녁에 큰애 집에 들렀던 장모님, 장인어른, 나와 집사람… 우리 모두 교양인으로서 자숙의 시간을 갖자꾸나.'
* 25일 마지막 편으로 이어집니다.
[나의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
① '가족 호칭' 바꾸자 하니 돌아온 말 "넌 우리 집이 우습구나?"
② "그건 자격지심 아니야?" 남편의 형은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