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는 2014년 가을부터 매해 '교육(2014), 글쓰기(2015), 역사(2016), 마을(2017)'을 공부했습니다. 올해는 '진실'이란 주제로 함께 자리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의 진실이 참으로 쉽게 외면되고 포기되고 심지어 '자포자기'되는 현실을 목도합니다. 스스로도 스스로의 진실을 모르는 일상은 비일비재합니다. 2018교육문화연구학교는 진실이 자포자기된 채 누려지는 우리의 삶, 우리 자신, 우리의 관계는 과연 행복한 것인가. 이 질문을 붙잡고 우리 일상의 진실을 톺아보려 합니다. 기간은 11월 2일부터 2019년 1월 11일까지입니다. (자세한 안내 보기) - 기자 말
'사랑, 농사, 글쓰기', 이 세 가지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하물며 정답도 없다. 그런데 '진실한 사랑'이 주제인 2018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에선 뭔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11월 23일 저녁 7시 30분, 90여 명의 참가자는 '진실한 사랑'에 대해 나눌 거리를 조심스레 보듬어 안고 온 듯하다. 여느 때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리한 참석자들을 향해 최봉실 새들생명울배움터 대표는 토론의 문을 열었다.
"이번 토론은 연인 간의 사랑에 국한해 '진실한 사랑'을 논의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랑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쟁점입니다. 여러분은 '진실한 사랑'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시나요?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고 있나요? 사랑은 왜 그리 어려운 걸까요?' '사랑'이란 이토록 중요한 주제인데도 우리는 사랑을 제대로 이야기하며 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여러분이 사랑하고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토론도 사랑도, 기본은 신뢰와 존중
활발한 토론을 위해 먼저 다 함께 토론하고 싶은 질문들을 뽑아봤다. "사랑하는 사람이 늘 우선순위여야 하나요?" "연애를 많이 해봐야 사랑을 배울 수 있나요?" "사랑은 왜 식을까요?" "진실한 사랑은 어떻게 하죠?" 등등. 남성 기혼과 여성 기혼, 남성 미혼과 여성 미혼, 그리고 19세 이하 학생들, 이렇게 다섯 모둠을 결성했다.
토론에 앞서 최 대표는 서로 신뢰하며 진실하게 토론해 줄 것을 당부했다. 토론할 때, 저 사람이 나를 비난하지 않을까 걱정하면 스스로 검열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진실한 마음을 털어놓기 어렵다는 것. 그러면 토론은 의미가 없다. 서로 비난하지 않아야 하고 또 서로 그럴 거라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진실로 우리 고민과 문제를 대화와 토론을 통해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당부는 토론하면서 누군가를 언급할 때, 그 대상에 대한 존중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대화의 대상으로 올려두고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비판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도 그렇게 함부로 다뤄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서로 신뢰하고 신뢰를 줄 수 있는 태도로 토론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탄탄히 하는 매우 중요한 기반입니다. 이 자리는 그것을 위해 노력하며 훈련하는 의미 있는 장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토론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야? 축구야?
모둠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다 함께 본격적으로 나눴다. 첫 번째 포문을 연 쟁점은 '사랑하는 사람이 꼭 모든 것에 우선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기혼 남성 모둠의 조진혁(37)씨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랑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의 부탁을 들어주기 힘든 상황인데도, 들어주어야 사랑이 증명된다는 것. 그런 면에서 기혼 남성들은 함께 보고 오기로 했던 영화 <IF ONLY>에 비판적이었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남자의 진실한 사랑의 여부를 판단하는 듯한 메시지 때문이다.
구한글(20)씨는 사랑하는 사람이 모든 것에 우선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토론을 듣고,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저는 축구 보는 걸 좋아하는데요. 만약 퇴근하고 들어왔는데 국가대표 생중계 축구경기가 저녁 8시예요. 그런데 아내가 대화하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요?"
기혼 여성 모둠에서 답변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대화하자고 하면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기혼 남성 모둠에서 되물었다.
"그럼 여자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축구를 같이 봐줄 수 있지 않나요?"
이에 최 대표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자주 갈등을 겪는 이유는 '자기중심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연인이나 부부들이 가장 많이 부딪치게 되는 지점이 이 부분인 것 같습니다. 사귀다 보면 자기밖에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성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존중받고자 하는 만큼 당연히 상대도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둘 다 존중하지만, 무엇이 더 우선돼야 하는지 분별하려면 스스로 성찰할 줄 아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성찰하지 못할 때, 내 처지만 크게 인식하고 상대방 처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때 문제의 탓을 상대에게 돌리기 쉽습니다. 지금 누가 억울한지, 누가 정당한지 냉정하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안 되면 서로 영원한 평행선을 달립니다. 그러면 사랑은 고통이고 지옥이 되지요."
토론도 사랑도, 자기 성찰은 기본
기혼 남성과 여성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쟁점은 살림과 육아 문제로 인한 갈등이다. 기혼 남성들은 아내에게 '왜 살림을 자기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돕는다고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고 했다. 기혼 남성들은 아내와 함께 살림과 육아를 감당하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결혼 전에는 감정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면 결혼 후에는 의지와 자기희생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에 기혼 여성들은 육아나 살림 등은 의지와 희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해야 하는 거 아닌지 아쉬워했다.
이에 최 대표는 살림은 '남녀 사랑의 문제라기보다 같이 사는 관계라면 함께 책임져야 하는 문제'라고 봤다. 사랑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함께 져야 할 책임의 문제이며, 이것은 부부가 아니라도 함께 짐을 지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피곤하고 어려울 때일 테다. 그럴 때 사랑하는 사람이 요구하기 때문에 힘을 내야 하는 게 아니라, 일차적으로 내가 당연히 져야 할 책임이니까 힘을 내야 하는 거라고 구분했다.
"육아와 살림을 하다 보면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로 기꺼이 합의되는 지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마음이 상대를 더 크게 도울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갈등의 순간, 사랑하냐 안 하냐의 문제와, 책임을 같이 져야 하는 문제를 잘 구별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이것을 세밀히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성숙하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최 대표 말에 공감하는 듯하면서도 기혼 여성 모둠에선 아쉬운 기운이 역력하다. 무언가 부족한 듯하다. 그것은 바로 결혼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결혼 후에는 뭔가 상대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듯해 서운해지는 감정이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반문했다.
"그렇다면 상대의 관심사를 존중해서 그런 상대를 나에게 우선순위로 둘 수 있는 건 아닌가요?"
최 대표는 자신도 여성이고 여성들이 주로 느끼는 문제의식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번 토론에서 남성의 처지도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남성들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이해의 깊이가 더 커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사실 사랑을 받고 싶은 건 아닌가요? 사랑하고 싶다는 건 혹 사랑받고 싶다는 간절함 아닌가요? 정말 사랑을 주고 싶으신 건가요? 아니면 사랑을 주고받는 사랑을 하고 싶은 건가요?"
토론자들은 사랑받고 싶은 간절함에 치우쳐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사랑을 받고 또 사랑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연하다. 우리는 모두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다만 문제는 간절히 사랑을 받고 싶은데 사랑이 안 온다고 느낄 때다.
최 대표는 그럴 때 사랑을 주는 선택을 하면 어떨지 제안했다. 그토록 사랑받고 싶은 순간에, 상대방 입장을 헤아려 애끓는 사랑을 베푼다면 어떨까.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 말이다.
시야를 넓히고 사유를 키우기
최 대표는 그런 불만족한 마음에 전환을 일으키기 위해 자기중심성을 돌아보고 극복하는 데 있어 '사유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가령 살림에서, 여자는 '나는 원래 하던 거야'라는 마음으로 있고, 남자도 '나도 이게 노력하는 거야' 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주장하면 지옥의 평행선을 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도 노력하는구나' 이해하고, 남자도 '여자가 이렇게 감당하고 있었구나' 이해해준다면 괴로운 심정은 훨씬 완화될 것이다.
서로를 헤아리지 못한 채 살림을 해왔던 자신, 열심히 애쓰고 있는 자신만 생각하게 되면 쌍방이 이해 못 받는다고 여겨 계속 이해받기 위해 자신을 내세우게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모두가 괴로워진다.
최 대표는 하나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처지를 동시에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접점을 훨씬 더 잘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쪽이 무조건 맞춰 주고 헌신하도록 요구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중요하게 여기고 동등하게 대하는 관계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령, 사회에서는 여성차별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는 여성이 정작 연인과의 사이에서 자신이 남성에 대해 군림하는 자세로 있을 때, 여성도 그것이 잘못이라고 스스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종종 자신이 당하는 것에는 민감한데, 나로 인해 남이 피해를 보는 것에는 무감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다양한 맥락의 이질적인 양상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며 각 양상 속에서 그 맥락에 따라 공평을 획득할 수 있는 시선과 정의로운 분별이 절실한 것 같습니다."
진실한 사랑은 진실한 사람에게서
미혼 여성 모둠에서 이달님(36)씨가 발표를 이어나갔다.
"'사랑도 여러 번 경험(연애)하면 배워지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무리 여러 명을 만난다고 해도, 배우려는 자세로 있지 않으면 얼마든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사람을 통해 여러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과라도 진실한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진실한 사람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사람이 되어 진실한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진실한 사람이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많은 참석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세미나 후 소감을 나누는 게시판에 이에 대한 공감이 많았다. 진실한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내가 아직 진실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 건 아닐까. 어떻게 하면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양하늘(15) 학생은 세미나 후 '사람이 행위'라는 제목으로 소감을 남겼다.
"당연한 걸 놓쳤다. 사랑이라는 행위는 결국 주체 그 자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진실한 사람만이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있다. 내 삶을 살아가는 모습, 친구를 사귀는 모습, 적을 대하는 모습, 스승을 공경하고 부모를 섬기며 어린 이를 대하는 모든 모습이 남아 연인과의 사랑을 치르게 될 것이다. 모든 순간, 모든 것과 진실하게 만나기 위해서 더욱 분발해야겠다."
고르게 성장해야 고달프지 않다
토론이 끝나갈 즈음, 조심스레 꺼져가는 토론의 불씨를 다시금 지핀 쟁점이 있었다. 미혼 남성 모둠에서는 이 주제를 꺼내기 조심스러워 그냥 끝내려 했단다.
"사랑이 식으면 어떻게 하죠? 운명의 사랑인 줄 알고 시작했는데, 마음이 변할 수도 있지 않나요?'"
구한글씨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저는 마음을 다하면 사랑은 식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어떻게 시작했든 서로 성장하면서 아름답게 사랑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영속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성숙에 달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최 대표는 성숙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시야가 좁은 사람이 상대를 고달프게 하는 현실을 짚었다.
"그런 사람은 자기 틀에 갇혀 보다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는 판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주장과 판단을 고집합니다. 사람이 균형 있게 성장하지 못하거나,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기중싱섬과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따라서 고르게 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육이 중요한 이유이지요."
이에 양권진(20)씨는 한 사람과의 만남이 그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메워줄 수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 대표는 그 점이 바로 사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고 동의했다.
"사랑의 신비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 인생의 모자란 부분을 한 사람의 사랑이 위로하며 채워줍니다. 심지어 더 풍성한 모습으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운명의 상대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 인생의 질곡과 아픔, 그 인생의 몫을 함께 져 주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의무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절로 간절히 하고 싶어지는 것.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최 대표는 그러므로 사랑을 획일적인 잣대로 판단하지 말 것을 제안했다. 저마다 사연이 있고 저마다 자기 인생과 만남의 의미가 있으므로 각 사랑의 길과 모양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는 자기 인생과 사랑에 성실로 책임을 다하며, 다른 사람의 사랑을 재단하지 않으며 존중하고 응원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정답은 없었다. 사랑에 정답이 있을 리가. 그저 내 답을 내려 보는 거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정의롭고 성숙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잘못 사랑해 서로 지옥이 되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생이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그리고 '우리'에게로 중심을 옮겨 진실한 사랑을 하는 존재로 서둘러 자라야겠다. 열렬히 사랑해야지. 정의롭게!
11월 30일, 2018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다섯 번째 시간은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한다. 진실을 헤치며 '나'를 넘어, '너'에게로, '우리'에게로 나아가는 시간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