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참여한 한 '책읽고 글쓰는 모임'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알기 전과 후에 삶이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질문의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나의 과거에 대해 생각해본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20대 후반까지 그곳에서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관계맺고 살아왔는지를 돌이켜보니 찹찹한 기분이 든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상대를 쟁취하기 위해 고분분투했다.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성실한 공무원이 됐고, 사업하는 남자친구를 만났다. 하지만 나는 이유없이 공허하고 우울하고 불안한 상태였다. 혼자 있기가 싫어 분주하게 내 몸과 감정을 소모하는 것 말고는 지방에 혼자 살면서 이런 상태를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
아침에는 영어회화 강좌를 다니고, 퇴근 후 수영장에 가고 일주일에 한 번씩 와인, 살사댄스 동호회에 참가해 자기계발, 운동, 취미 생활등으로 시간을 채우며 공허한 순간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베스트셀러 책들은 읽지 않더라도 반드시 주문했고 필요하지도 않는 다양한 물건들을 무의식적으로 클릭하며 구매했다. 휴가 때마다 의무적으로 해외여행을 갔다.
남들 보기엔 성공한 사람의 표본처럼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내면의 공허함은 취미생활, 운동, 쇼핑, 여행등이 결코 채워주지 않았다. 내가 교류한 사람들은 지방 산업도시 특성상 비슷한 직종을 가지고 있었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고향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모임을 가도 뭔가를 하는 행위와 목적만 다를 뿐 오고가는 대화와 분위기는 비슷했다.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면 즐거웠고 재미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밤길은 외롭고 쓸쓸했다.
아빠는 어릴적부터 '사는 게 다 그런 거야'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하셨다. 엄마랑 매일 싸웠던 이유도, 집이 자꾸 가난해져도, 좋은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도, 전문직 남자를 만나야 하는 이유도 기승전'사는 게 다 그렇다'로 끝났다. 그후 나는 답답한 내 인생에서 뭔가 의문이 생기기도 전에 '사는 게 다 이렇지 뭐...'라고 단정하고 습관적으로 생각하기를 중단했다. 그 방법은 너무 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질문하는 법을 잃어버렸고 이기적이고 냉소적인 사람이 돼 갔다.
지방살이 그리고 서울살이
30대 초반 전근을 갔고 현재 나는 우여곡절 서울살이 8년 차다. 대구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이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올라와 잠시 만났다. '서울에 사는 게 좋냐'는 질문을 받고 생각에 잠긴다.
비싼 집값과 환경오염, 교통체증 등 말도 다 할 수 없이 힘든 게 너무 많다. 서울에 올라온 첫해는 다양한 모임과 취미생활을 전전하여 지방에서 접하지 못하고 만나지 못했던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지만 지방에서 느꼈던 공허함은 메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비슷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만났던 시절보다 간극이 너무 큰 사람들을 만나니 경제적·사회적으로 느껴지는 자격지심까지 더해질 때도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에서의 생활은 지방에서 살았던 거랑 변할꺼 없이 단조로웠고 반복됐고, 여전히 삶에 대해 질문하는 법 없이 '오늘 하루 무사히'라는 신념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이 서울에 살다보니 생각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기회는 많다. 평소 관심있었던 한의학을 공부하는 모임을 알게 돼 2년 넘게 공부면서 가장 자연스럽고 지혜롭게 늙는 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책을 읽는 모임은 많이 들어봤어도 글을 쓴다니 뭔가 대단하고 멋져보였다. 멋진 노년을 위해 시작한 글쓰기는 녹록지 않았다. 살면서 한번도 접촉한 적 없는, 예상못한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경험은 나의 삶의 일부를 바꾸어 놨다. 글을 통해 지방이 아닌 도시에서 오히려 타인의 삶의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었고 감동하고 아파하고 눈물 흘리며 공감이 라는 것을 배웠다.
처음 접해보는 페미니즘은 알아갈수록 내 안의 폭력성, 가부장적 사고, '명예남성'을 발견했고 말과 행동을 고쳐나갔다. 읽고 감응하거 쓰면서 변화하는 경험들은 매 순간 나를 벅차오르게 했고 또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의지를 만들어줬다. '서울에 살면 뭐냐 좋냐'는 친구의 질문에 얼굴이 벌개지면서 글쓰기 예찬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도 조금 어색하지만 싫지 않았다.
아이유 콘서트를 보러온 친구
문 앞까지 따라나와 우는 딸들과 지쳐보이는 남편을 뒤로하고 가수 아이유의 콘서트를 보러 서울로 올라온 친구는 이 공연을 보러 오는 데 한참을 망설였다고 한다. 1년에 한 번 하는 아이유 콘서트를 봐야 하는 이유는 이 공연을 기다리는 설레임으로 몇 달을 살고 공연 후 감동을 되새김으로 몇 달을 살아야 숨통이 틔인다고 하소연한다.
동네만 걸어도 길거리에서 수준 있는 인디밴드 공연을 볼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재즈공연, 콘서트는 물론 연극·뮤지컬등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곳에 살고 있는 나는 문화가 주는 힘을 알고 있다. 하지만 공연을 기대하는 친구의 설레임에는 빛이 없었다. 나는 약간 오만하게도 친구에게 예전의 내 모습을 봤던 것 같다.
나는 또 생각에 잠긴다. 힘들어도 서울에 사는 게 좋다는 나는 왜 '지방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고, 그 관계 속에서 삶에 대한 충만감과 기대감을 얻기 힘들었던 것'일까?
일단 다양한 직업자체가 없다. 친구는 프리랜서 라는 직업도 이해가 안된다고 한다. 우리 나이에 평일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죄다 전업주부 아니면 자영업자 들이다. 서울의 어떤 모임에 꼭 한둘씩 있는 성소수자, 활동가, 디자이너, 편집자, 작가, 음악가, 연극배우 등의 직업은 강연에나 가야 볼 수 있고 그런 기회조차도 별로 없다.
지방에서는 누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대충 모두 아는 일들이고, 집에서 노는 백수가 있다면 온 동네가 수군거리며 함께 걱정한다. 사회 구조적인 병폐로 문제가 되는 사건·사고들을 단지 미디어로만 접할 수 있고 온 국민이 참가한다는 촛불집회의 감응도 보통 노력으로는 겪기 힘든 경험이다.
물론 모든 지방 사람들을 이런 환경이고 단조로운 관계에 있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생각하지 않는 멍청이였던 나도 서울에 살고만 있었을 뿐인데 존재가 달라질 수 있는 계기를 자꾸 만나게 된다는 것을 불만스럽게 말하고 싶을 뿐이다.
책에서 '무엇이 나의 삶을 견딜만 하게 하는가?'라는 주디스 버틀러의 질문을 읽고 울컥했다. 부모도 친구도 하나 없는 서울에서 아무런 관계도 접점도 없었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함께 웃고 울며 화내면서 세상을 위해 고민하는 순간은 내게 큰 위안을 준다.
그 찰나들이 모이고 모여 일상에서의 나는 변주하고 존재의 변신을 추구하려 노력한다. 단점이 하나 있다면 '사는 게 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불평·불만이 너무 많아져 도무지 취미생활을 할 시간도 여력도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