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편지는 오마이뉴스 에디터들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주 1회 띄우는 편지를 이메일로 받길 원하시면 기사 하단 '뉴스레터 구독하기'를 눌러주세요.[편집자말] |
몇 달 전 선배와 식사 자리에서 '밤길'이 화제가 됐습니다. 운전을 하는 선배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자신은 차에서 내린 뒤 자동차 열쇠를 손바닥 안쪽에 쥐어 만일을 대비한다고 했습니다. 눈치 채셨나요? 이 선배는 여성입니다.
또 다른 선배도 있습니다. 이 선배는 막차를 타면 새벽 2시경에 종점에서 내립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집까지 40분간 걸어갑니다. 택시를 탈 수도 있지만 달빛을 보고 음악을 들으며 걷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눈치 채셨나요? 이 선배는 남성입니다.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하지만, 어쨌거나 여성들에게 '밤길'은 실재하는 공포입니다. 우연히 맞닥뜨릴 수 있는 바바리맨과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역시 '우리'에겐 팩트(사실)입니다. 저 역시 여성이니까요.
홍승은 시민기자의 <그러니까 남자가 필요하다는 미신>은 이 불안과 공포, 그리고 현실을 다룬 기사입니다. 몰래 보는 사람에서 출발한 글은 때리는 사람과 죽이는 사람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에는 몰래 관찰당하고, 맞고, 죽임 당하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기사 읽기]
☞ 그러니까 남자가 필요하다는 미신 http://omn.kr/1eu89
이 기사를 편집한 박정훈 에디터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경험이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지만 못하는 이야기를 홍승은 기자가 잘 풀어준 것 같다"고 했습니다.
- 여성들이 흔히 느끼는 공포를 다룬 글인데, 남성으로서 이 기사를 편집하며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네요.
"묻지마 살인이나 성폭력 등 강력범죄는 드물게 일어난다고 하지만, 지하철 성희롱이라든가 누가 창문을 지켜보고 있거나 문을 두들긴다든가, 가슴 등을 만지고 가는 경험들은 여성이라면 한번쯤 겪어봤다고들 합니다. 이 경험들이 결국 '공포'를 만들어낼 텐데 여성들이 여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해서 그걸 '과민반응'이나 '공포 선동'이라고 말한다면 문제겠죠."
- 홍승은 기자가 그런 지점을 잘 짚어줬던 것 같은데, '해시태그청년' 기획 필자로 직접 섭외한 까닭도 같은 이유였나요.
"홍승은 기자는 자신의 경험으로 여성의 삶에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를 풀어내 비슷한 일을 겪은 여성들을 글로 위로해온 작가였어요. 많은 여성들이 그의 글에 공감했고, 그의 글로 용기를 얻었다고 했어요.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글을 쓴다는 점에서 당연히 예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모시고 싶은 분이었죠.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애정, 부당한 일을 참지 않는 강단에 더 끌린 것도 있는데요. 동생 홍승희씨가 '효녀연합'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 이후 항의 시위에 나섰을 때, 남성들이 그를 "얼굴도 예쁜데 마음씨도 곱네"라는 말로 칭찬한 적이 있어요. 이때 홍승은 기자는 효녀연합과 메갈리아를 대하는 여론의 '이중잣대가 견고하다'고 지적하며 당시 운영하던 카페 입간판으로 알리기도 했고요(
http://omn.kr/frem). 할 말은 분명히 하는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런데 '해시태그 청년'이란 연재명은 무슨 뜻이죠?
"요즘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서는 해시태그가 중요하잖아요. 이게 맛집 등 검색용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미투'나 '#나는페미니스트다'처럼 운동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요. 이런 점에 착안해 청년의 키워드를 다양하게 담아보자 싶어서 떠올린 연재명이었어요. 사실, 큰 의미는 없습니다..."
- 그럼 이른바 '밀레니얼세대'가 타깃인가요? ^^ 이 기사를 편집할 때 누가 많이 읽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지 궁금하네요.
"글이 워낙 좋아서 제가 손을 안 댔는데... 젊은 여성들이 더 많이 읽고 공감하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경험이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지만 못하는 이야기를 홍승은 기자가 잘 풀어준 것 같아요. 여성들의 공포가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며,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폭력의 실체를 드러냈다는 점이 여성들에게 큰 힘이 되리라 봐요."
- 마지막 질문. 이 기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을 꼽는다면?
"이 두 부분이 핵심 같습니다!"
지켜줄 남자가 필요하다는 미신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폭력을 방관하는 말이다. 곰곰이 따져보자. 정말 이성애 사랑과 가족은 안전을 보장할까? 어린 시절, 집이 안전한 공간이기만 했던 사람은 얼마나 될까? 왜 세상에는 '안전이별'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폭력은 친밀감과 상관없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잔인한 흔적을 남길 수 있다.
몇 년 전 독립잡지 <젋은여자>에 나는 썼다. "현관에 T-팬티를 걸어 놔도 몰카, 강간, 살해당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싶다."
아직 나는 그 세상에 닿지 못했다.
*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omn.kr/1eov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