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선박회사에서 일하다가 귀농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귀농이라 하면 평상에 누워 밤하늘에 떨어지는 별을 보며 장작불에 고구마 구워 먹는 줄 알더라고요. 한가롭게 고구마 구워 먹을 시간 없습니다."
2017년 1월부터 전북 남원시에서 표고버섯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정종혁(40)씨를 만났다. 종혁씨는 남원이 고향이다. 귀농 전 선박회사에서 완성된 배의 시운전직으로 10년간 근무하며 가족들과 떨어져 지냈다.
귀농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서다. 아이들은 열 살 아들과 일곱 살 딸아이가 있다. 농장 일은 종혁씨와 친누나가 함께하고 있으며 종혁씨의 아내는 종합병원 간호사로 재직 중이다.
농장의 면적은 770평에 하우스 한 동당 60평으로 네 개의 동이 있다. 배지농법으로 표고버섯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남원으로 돌아오길 결심하고 직업에 대해 고민을 했는데 배운 기술이라고는 조선소에서 시운적직으로 일한 거밖에 없는데 마땅히 할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평생직장을 가져보자' 마음먹고 농사를 짓기로 했죠. 평소 산을 좋아해서 약초를 캐거나 버섯 따는 일이 취미였어요. 작목을 고민하면서 버섯 키우는 일이 제일 잘 맞겠다 싶어서 귀농교육도 받고 버섯 재배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더디게 키운 버섯, 그만큼 높은 가격
배지농법이란 참나무를 갈아서 만든 톱밥에 미강을 섞어 압축시켜 버섯종균과 영양분을 넣어 만든 버섯 틀이다. 현재 남원의 버섯농가 중 원목재배 농가는 제법 많지만 배지농가는 종혁씨를 포함해 여섯 농가다.
원목재배는 봄과 가을만 수확이 가능한데 비해 배지농법은 사계절 수확이 가능하다. 또한 원목은 길이가 길기 때문에 하우스 크기도 상대적으로 커야 하는 반면 배지는 균상으로 7단까지 쌓아서 재배가 가능해 하우스 규모가 작더라도 다량생산이 가능한 농법이다.
"원목이 맛있다, 배지가 맛있다, 의견이 다르긴 한데 온도 조절에 따라서 맛의 차이가 커요."
하우스의 온도를 낮게 설정하면 성장은 늦더라도 육질이 단단하고 맛과 향이 월등히 높다고 한다. 배지에 물을 주입하고 일주일이 지나면 버섯이 나오는데 이후로 10일이 더 지나면 수확이 가능하다.
더디게 키운 버섯은 그만큼 높은 가격을 받게 된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원목농가에서 배지농가로 전환을 시도하는 농가가 제법 느는 추세라고 한다. 표고버섯은 생표고 판매 외에도 육수용 건표고와 표고 슬라이스, 표고 차, 표고 과자로도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공판장으로만 출하가 목적이라면 온도를 높게 설정해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할 수가 있는데 저는 직거래 판매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적더라도 저온으로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키우는 버섯의 품종을 화고와 동고로 분류하는데 햇볕과 습도가 부족하면 버섯 표면이 갈라지게 돼요. 표면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면서 수분 공급이 줄어들면 그게 상품 질의 화고가 됩니다.
햇볕을 적게 보여주고 습도를 높은 상태로 설정해두면 갓 부분이 밋밋한 동고가 되고요. 상품 질의 화고를 많이 만들게 되면 상대적으로 배지가 빨리 상해요. 그러다 보니 배지의 수명도 짧고 수확량도 적게 되죠. 직거래 판매가 자신 있는 분들이라면 단가가 그만큼 높기 때문에 괜찮아요."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좋은 품질의 농산품도 생산자가 만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화가 어려운 경우에는 하는 수없이 공판장으로 보내는데 가격은 아무리 높게 받는다 해도 1/3 이하 수준이다. 물론 지역에 따라서 단가는 모두 다르다. 생산자로부터 소비자까지 가는 경로에 일반적으로 4~6개의 중·소매상인을 거치게 되는데 이들 중 생산자인 농부가 가장 낮은 수익을 얻는 구조다.
농가마다 다르지만 배지의 수명은 일반적으로 6개월이다. 상태가 좋은 경우 7, 8개월까지도 사용하고 상태가 안 좋은 경우에는 5개월 이하로 사용하기도 한다. 배지는 사용 전에 주사기식 주입방법으로 물 공급을 하는데 하우스 한 동당 5천 개로 총 2만 개의 배지를 주기적으로 침봉 작업을 해야 한다. 배지의 단가도 제각각인데 단가가 높더라도 좋은 품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배지 농법은 침봉 작업이 가장 힘들다.
"배지값 조금 아끼려다가 잘못 구입해서 죽다 살아났어요. 새끼 버섯을 핀이라고 하는데 배지에 물을 주입하고 나면 하나 둘 순차적으로 핀이 올라와야 하는데 한 번에 양쪽에서 다발성으로 핀들이 올라오는 거예요.
균 배양이 잘못되었거나 영양분이 과다할 경우에 그런 현상이 생기는데 2주간 하우스 두 동에 배지 만 개를 쉴 사이 없이 솎기 작업만 했어요. 적당히 올라와야 솎기 작업하면서 순차적으로 키우는데 이럴 경우 배지 손상도 심하지만 버섯 품질도 떨어지고 수확량까지 줄어들기 때문에 힘은 힘대로 들고 금전적 손실도 크게 됩니다."
"여행 멀리 못 다니는 거 말고는 다 좋습니다"
"쉬는 날이 없어요. 누나랑 교대로 쉬는데 쉰다고 해도 마음이 편치 않으니까 나오게 돼요. 누나는 그래도 직원이기 때문에 편히 쉬는데 저는 못 쉬겠더라고요. 전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도 쉬는 날은 함께 여행도 다니고 주말만큼은 실컷 놀아줬는데 지금은 같이 지내도 주말에 오롯이 놀아주지 못하니까 그게 또 미안하더라고요.
농사는 쉬는 날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달려갈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학교, 유치원 행사도 다 가고 또 아이들이 아프면 병원도 데리고 가고 여행을 멀리 못 다녀서 아쉬운 거 말고는 다 좋습니다."
버섯을 수확하는 일은 땀 안 나는 막노동이다. 층층이 쌓여있는 균상의 버섯을 일일이 따려면 구부리고 더 구부리고, 쪼그려 앉고 일어서고 다시 구부리고의 쉼 없는 반복이다. 세상에 수월한 농사란 없다.
"간혹 버섯 농장을 하고 싶다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신데 수차례 힘들다 말해도 일이 쉬워 보였던 모양이에요. 버섯만 따는 게 아니라 2만 개의 배지에 주기적으로 물을 주입해야 하기 때문에 손목이며 어깨가 남아나질 않거든요."
하우스 작물이라고 해서 계절에 구해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꼭 귀농을 해야겠다고 한다면 농가에 가서 1년은 겪어본 다음에 결정하길 권해요. 농사를 짓겠다 마음먹고 10개월을 교육받고 공부하고 버섯 재배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지만 아직도 배울 게 많습니다. 계절마다 경우의 수가 다 다르기 때문에 1년은 해보고 결정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작년 겨울 처음 한파를 겪었는데 주변이 온통 얼어붙고 버섯은 성장을 멈추고 난감하더라고요. 사계절 온도 습도가 다르고 특히 여름철 더위와 겨울철 추위를 모두 경험한 후에 하시면 실패할 확률이 낮겠지요."
시골의 밤하늘은 도시의 밤하늘과 달리 까만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볼 수 있는 날이 많다. 그러나 농사를 짓다 보면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날이 더 많다고들 한다. 세상에 쉬운 농사란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