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고 귀국하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을 겨냥해 '미국이 참수작전 훈련 등을 했을 수 있다'는 1월 11일 자 채널A '뉴스 TOP 10' 보도가 있었다. 프로그램 진행자인 황순욱 보도본부 차장은 이렇게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베이징역을 떠난 지 스물네 시간 만인 어제 오후에 평양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열차를 타고 북한으로 향하는 바로 그 동안에, 김정은 위원장이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는 미국의 전략무기 B-52 전략폭격기가 출격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채널A가 던진 '과도한 해석'
채널A는 미국이 공개한 B-52 항적 기록과 아마추어 무전사들이 입수한 무선교신을 근거로, 김 위원장이 귀국하는 동안에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B-52 두 대가 도쿄 우측 태평양 해상까지 출격했다고 보도했다.
또 B-52가 출격할 때 공중급유기 KC-135R 두 대도 함께 뜬 것은, 중간에 급유를 해야 할 정도로 무기를 많이 실어 폭격기가 무거워진 증거라고 언급한 뒤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이 B-52와 공중급유기 사이의 무선교신을 일부러 흘리는 한편, 괌에서 도쿄 부근까지의 폭격기 항적만 공개하고 그 이상의 이동 경로를 공개하지 않은 사실 속에는 미국의 숨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채널A는 패널로 출연한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군사전문가)의 주장을 내보냈다.
"일단 자기네들이 왔다는 것은 알려주고 싶은데, 그러고 나서 뭘 했다는 것은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김정은 참수작전 훈련을 했다든지 아니면 중국에 대한 여러 가지 일을 했다든지, 그런 것들은 알려주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오기는 왔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저기까지는 항적 정보를 민간에게 공개하면서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정은이 시진핑의 영향을 받아 북미정상회담과 비핵화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하고자, 미국이 B-52를 보내 김정은 참수작전 훈련이나 대(對)중국 견제 활동을 벌이면서 일부 행적을 의도적으로 흘렸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태극기 반응... "여러분, 충격적인 뉴스 들었죠?"
11일 저녁에 나온 이 보도에 가장 크게 고무된 쪽은 태극기 집회 주최 측이다. 태극기 집회를 통해서 위 보도가 한층 증폭돼 전파됐다. 지난 12일 오후 1시 30분부터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제102차 태극기 집회. 첫 번째 연사로 등단한 서석구 변호사(박근혜 변호인 역임)는 채널A 보도를 근거로 개회사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제, 여러분, 충격적인 뉴스 들었죠? 김정은이 시진핑과 중국에서 회담 마치고 북한으로 가는데, 괌에서 B-52 중무장한 미 전투기가 발진했죠? 일본까지 갔습니다.
거기다 더 중요한 것은, 공중급유기까지 두 대가 같이 출발했다는 겁니다. 이것은 사이비 교주 노릇을 하는 김정은과 시진핑, 나아가 문재인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이제 미국도, 대한민국 국민도, 우리 태극기 집회 여러분도, 하느님도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에 대한 인내심이 끝났습니다."
이제껏 미국이 북한 견제를 목적으로 전략폭격기를 출격시킨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상대국의 전쟁수행능력이나 전쟁 의지를 없앨 수 있을 정도의 고강도·대규모 폭격을 수행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를 한반도나 주변 상공에 전개시켜 북한 정권을 위협한 사례들이 꽤 많았다.
일례로, 1980년대부터 미국은 팀스피리트 한미연합군사훈련 때도 B-52를 등장시켰다. 또 연합훈련이 아니더라도, 대북 압박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수시로 B-52를 내보냈다.
1996년 3월 28일 자 <동아일보>는 워싱턴 특파원발 보도로 '미, 북 붕괴 대비훈련 실시 동해 등서'란 기사를 게재했다. 제1차 북미 핵위기 직후의 소강 국면을 보였던 1995년 상황에 관한 보도였다.
"미국은 지난해 7월부터 북한 붕괴 등의 돌발 상황 및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 B-52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등을 동원한 가운데, 동해상 등에서 두 차례 이상의 전쟁억지훈련을 벌여온 것으로 26일(이하 현지 시각) 밝혔다."
위협의 표시로 B-52를 출격시켰던 전례들
이처럼 북한에 대한 직접적 위협의 표시로 동해 상공에 B-52를 출격시키는 일들이 있었다. 채널A 보도에 나온 것은 '동해'가 아니라 '일본 동해', 즉 태평양에 B-52가 출격한 사실이다.
미국은 동해뿐 아니라 한반도 본토 상공에도 B-52를 많이 띄웠다. 1976년 판문점에서 충돌이 벌어져 미군 장교 두 명이 목숨을 잃자(판문점도끼사건), 이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한동안 매일 같이 B-52를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켰다. 2016년 1월 6일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했을 때도, 괌에서 이륙한 B-52를 경기도 오산 상공까지 출격시켰다.
이처럼 미국은 북한에 위협 가하고자 할 때, 한반도나 동해상에 B-52를 전개시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본 동해에 출격시킨 사실이 대북 위협용과 전혀 무관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북중정상회담 직후에 B-52를 전개시킨 것 자체가 북한에 대한 견제의 표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을 할 때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게 있다. 이 해석에 제약을 가하는 요소들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2018년 7월 27일 미국 태평양공군사령부가 발표한 바와 같이, 미국은 북·중에 대한 견제뿐 아니라 일본 자위대와의 연합훈련을 위해서도 B-52를 일본 상공에 출격시킨다. 이 발표에 따르면, 그때 미 공군 제96폭격편대 소속 B-52 두 대가 일본 자위대 F-15 전투기 6대의 호위를 받으며 일본 상공에 진입했다. 한반도나 동해가 아닌 일본 동해에 B-52가 등장할 때는, 이런 사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미일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에 대한 견제의 표시로 일본 동해에 B-52를 띄웠다고 해석하는 경우에도 주의할 게 있다. 종전과 현저히 달라진 미국의 태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예전처럼 한반도나 동해에 띄워 노골적으로 자극하지 않고, 좀 떨어진 일본 동해에 띄우는 데서 미국의 조심성을 읽을 수 있다.
미일관계의 필요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북중 위협을 위한 일일 수도 있는, 이중적 해석이 가능한 B-52의 일본 동해 출격을 통해 미국이 북한을 위협하고자 했다고 해석한다면, 북한을 견제하더라도 가급적 덜 자극하겠다는 미국의 의중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판문점에서 북미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 또 B-52가 출격한 다음날 국무부가 민간기관의 구호 인력을 대상으로 북한 여행을 허용했다는 사실까지 함께 고려하면, 지금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을 지나치게 위협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일을 대북 위협용으로 해석하는 경우에도, 그 위협의 방법이 상당히 조심스럽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을 강하게 압박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북미관계를 관찰할 때는 미국 내부의 최근 사정을 우선적으로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17년 12월 미국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 명시된 것처럼, 미국은 종전의 대(對)중국 전략을 수정하고 상당히 공격적인 대중국 전략을 새로 수립했다.
닉슨 행정부 때인 1970년대 초반부터 미국은 '중국과의 적대적 제휴를 통해 베트남전쟁의 후유증을 수습하고, 소련의 아시아 진출을 견제한다'는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유지했다. 하지만, 2017년 12월을 기점으로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맞서 인도 및 일본과의 협력관계로 중국의 인도양·태평양 진출을 견제한다'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은 닉슨 행정부 이래의 전략이 뒤집혔다는 의미로 역(逆)닉슨(Riverse-Nixon) 전략으로도 불린다. 2018년 연초부터 북한과 미국 사이에 훈풍이 감도는 데는 이런 전략적 변화도 한몫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사정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북한을 과도하게 압박할 수 없다. 북한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중국 견제에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시진핑을 만나고 돌아간다는 이유로, 미국이 B-52를 보내 김정은 참수작전 훈련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B-52를 출격시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수는 있어도, 항적을 꺼놓고 훈련을 벌이는 일은 섣불리 시도하기 힘들다. 한반도나 동해도 아니고 일본 동해까지만 공개적으로 출격한 사실 자체가 미국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참수작전 훈련 가능성을 흘리는 채널A 보도는 물론이고,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인내심이 극에 달한 증거로 해석하는 태극기 집회의 발언 역시 실제 상황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이번 일은, 북한을 견제하는 미국의 수단이 과거보다 약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역(逆)해석될 여지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