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차례에 걸친 협상에도 타결되지 못한 10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은 그저 맛보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미국은 새로운 원칙하에 분담금 협상을 새로 시작하길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12월 10차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정 협상이 결렬된 뒤 양측이 외교채널을 통해 제시한 분담금 총액안은, 미국이 12억 달러(1조3527억여원), 한국은 9999억 원이다. 차이가 3528억여 원이나 난다.
미국은 12억 달러를 요구하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10억 달러(1조1273억여 원) 미만은 수용하지 못한다'고 배수진을 쳤다. 한편으론 현재 5년인 협정 유효기간을 1년으로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효기간 1년'은 이번 협정 체결 뒤 곧바로 새 분담금 협상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10억 달러를 주고 올해만 넘기든지, 12억 달러를 내고 협정 유효기간을 늘리든지 선택하라'라고 읽힌다.
2018년도 분담금은 9602억 원이었고, 한국 측은 이 금액이 주한미군 소요 비용의 절반 정도라고 보고 있다. 이번 방위비 협상에서 미국의 당초 요구는 기존 금액의 1.5배로 1조4403억 원에 달한다. 주한미군 소요비용의 75%를 한국이 부담하라고 한 것이다. 갑자기 4810억 원을 더 내놓으란 건 한국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다.
협상 내내 '1조 원을 넘길 수는 없다'고 버텨온 한국 입장에선 3925억여 원을 더 내야 하는 12억 달러 안보다는, 곧바로 새로 협상을 해야 하긴 하지만 1174억여 원을 더 내는 10억 달러 안이 상대적으로 수월할 수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미국 측은 12억 달러를 받아내기보단 잠시 적게 받더라도 아예 새로운 방위비 협상을 시작하길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견 접근 이루다 마지막에 '유효기간 1년' 요구
양국 방위비 분담금 협상단은 아홉 차례 협상하면서 총액 부분을 제외하고는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마지막 협상에서 미국측이 '유효기간 1년'을 요구했고, 협상은 타결되지 못했다.
이같은 요구는 미국 '최상위층', 즉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 때문이라고 전해졌다. 그는 당선되기 훨씬 전부터 "60만의 군대가 있는 한국에 미군이 왜 필요한가? 세계평화를 위해 미군이 주둔한다 해도 왜 한국은 비용을 일부만 부담하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해 왔다.
지난 17일에는 미사일 방어 검토보고서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독일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의 GDP대비 방위비 비율이 미국보다 현저하게 낮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남들로부터 바보 취급을 당할 수 없다. 그럴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된 논지는 '미국 우선주의'이고 '미군이 해외에 주둔한다면 혜택을 입는 국가가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를 시작한 뒤 줄곧 주둔국가가 부담하는 액수를 올리라고 요구해 왔고, 일부 국가들을 상대로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성과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기준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에 주둔한 미군의 주둔비용이 주둔 국가에 따라 각기 달리 적용되고 있는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새로운 방위비 분담금 원칙을 조만간 제시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이 '10억 달러, 유효기간 1년' 안을 제시한 배경도 새로운 기준으로 새로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시작해 자신의 임기 내에 분담금 대폭 인상의 성과를 내고 '더 이상 바보 취급을 당하지 않는 미국'을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