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배운다'
1919년 독일에서 시작된 발도르프교육이 올해 100년을 맞아 내건 구호이다. 발도르프교육은 100주년을 맞이해 꿀벌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발도르프가 '꿀벌'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물음을 품고 푸른숲발도르프학교 교사를 지낸 후 지금은 벌치는 농부로, 발도르프교육 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는 남상대님을 만났다. 그는 "꿀벌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켜온 최고의 전문가"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는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며 "꿀벌은 6천만년 이상 지구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우리는 꿀벌의 본성을 통해 인류 진화의 문제를 통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100년 전 만세운동이 우리 민족의 미래를 여는 단초가 되었듯, 발도르프 100년은 건강한 교육이 세상을 건강하게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실천한 시간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꿀벌'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지렛대라는 남상대님. 발도르프학교에게 기념비적인 올해, 특별히 꿀벌이 경이와 배움의 대상이 되기를 바라는 그와의 대화는 발도르프교육을 실천하는 잇다자유학교에서 진행되었다.
- 올해가 발도르프 100년이다. 발도르프교육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1919년 우리는 3.1 만세운동을 했는데 그 철학이 정말 훌륭하다. 우리 선조들이 일본의 무력에 어떻게 민주적인 방법으로 대항할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찾아낸 방법이었다. 1919년 독일에서는 세계전쟁 후 사람들이 만든 무기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교육을 통해 현실을 바꾸겠다고 시작한 것이 발도르프교육이다. 1919년 독일의 사업가 에밀몰트가 자신의 담배 공장 직원들의 자녀들을 위해 학교를 설립한 것이 발도르프교육의 시초였다. 당시 독일은 남자, 여자, 귀족, 평민 등 구분되어 있었는데 발도르프학교는 계급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함께하는 교육으로 출발했다."
- 발도르프교육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독일에서 발도르프교사 과정을 거치고 한국에 와서 발도르프학교에서 처음 부모님들을 만났는데, 스스로 4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다. 열정과 욕심이 너무 넘쳐서 여기저기 부딪쳤다. 그 과정을 돌아보면 저는 건강하기 위해 애쓰는 교사와 부모가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서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이 발도르프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하다는 것은 부모와 교사의 몫이다. 건강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근본적 고민이 되지 않은 채 복사만 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요즘 미술치료, 음악치료, 원예치료, 웃음치료를 보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지 않나. 발도르프교육에는 모든 치료의 요소가 수업 안에 들어있다. '교육은 치료다'라는 책은 있지만 예방치료는 흔히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몸으로 많이 움직이고 삶에 힘을 키우는 것을 예방이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발도르프는 대표적인 예방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 꿀벌과 살면서 보는 꿀벌의 삶은 어떠한가?
"아인슈타인은 벌꿀이 없어지면 인류는 굶어죽는다고 했다. 우리의 모든 먹거리가 벌의 활동을 통해 이뤄졌고, 인류는 자연생태계의 상호작용을 통해 살아왔는데, 하나가 없어지면 그 뒤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까. 많은 존재가 살기 위해 다른 존재를 잡아 먹는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꿀벌의 삶은 특별하다. 벌은 제 먹을 것을 취하며 어떤 존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벌은 꿀을 취하고, 꽃가루를 취하며 중매쟁이 역할을 하면서 딸기, 배, 수박, 호박, 오이, 토마토, 참깨, 들깨 등 많은 식물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도와준다. 그들이 선택한 진화의 길은 살기 위해 무엇인가를 먹으며 어떤 존재를 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상생의 길이다. 꿀벌의 세계를 관찰하면 왜 사회적 곤충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벌은 이렇게 애써 모은 꿀을 사람에게 고스란히 빼앗기고 만다. 죽어라 일해서 남에게 다 빼앗기는 꿀벌은 바보인가. 아카시아가 피는 철의 일벌들은 낮에는 꿀을 따오고 밤에는 꿀을 익히느라 밤새 나래질을 하느라 일찍 죽는다. 그들은 그저 힘이 없어 그렇게 애써 만든 꿀을 내어주고 죽는 것일까. 게다가 인간이 온 지구의 모든 존재를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내는 것과 달리, 꿀벌은 독침을 뱃속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종족을 위협하는 것이 생기면 쏘고 죽는다. 꿀벌은 왜 말벌, 땅벌처럼 침을 여러 번 넣었다 빼면서 오래 살도록 진화하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비폭력을 향한 몸부림'이다. 바보라고 생각했던 벌들이 내게 들려준 것은 우리 모두는 하나의 전체이기에 서로 돕고 섬기는 방향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인드라의 그물망에 걸려있는 하나의 전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기까지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을 읽고 또 읽고 얼마나 곱씹었는지 모른다."
- 꿀벌과 함께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우리 농원으로 학생들이 체험을 오면 벌통에 그림을 그린다. 벌들은 교미할 때 밖으로 나갔다가 집을 찾아가야 하는데, 헷갈릴 때가 있다. 다른 집에 들어가면 싸움 나서 죽는다. 독특한 모양과 색깔의 그림이 있으면 자기 집을 찾아갈 수 있다. 100주년 기념으로 벚나무를 심어보는 것도 좋겠다. 벚나무가 자라나면 양식이 되고 사람에게는 꽃의 화려함, 감미로움이 행복하게 해준다. 벌도 좋고 사람도 좋고 벚꽃에서도 살아갈 자리가 생긴다.
아이들과 산행하는 날에 꽃과 풀들이 싹을 내는 것을 그릴 수도 있다. 자연을 만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등산객들이 버려놓은 쓰레기 줍기 등 자연을 만나고 자연과 상호작용하고 자연을 가꾸어가는 자연의 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도 좋겠다. 발도르프 100주년을 맞아 '꿀벌'을 지렛대로 삼았는데, 우리 공동체만의 지렛대를 만들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다."
- 가은농원에서의 일상이 궁금하다.
"책을 십여 년 동안 안 읽었다. 머리와 입이 돌아가는데 손이 안따라가더라. 땀 흘리는 노동이 얼마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고마운 것인지 아버지와 동네 어르신을 통해 배우고 있다. 그리고 두 가지를 훈련했다. 5년 동안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했다. 2년 동안 마음을 담아서 인사하는 법을 연습했다.
인사에도 격이 있다. 인사 하나로 사람을 힘나게 할 수도 있다. 내가 서있는 자리를 꽃자리로 못 만드는데 어디 가서 꽃자리를 만들 수 있겠는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이 두 개의 말이 세상의 절반이라는 것을 전하고 싶다. 작은 것에 엎어져서 속상할 때도 있지만, 이 두 가지는 작지만 죽는 날까지 할 수 있다.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키기기 위해서는 정을 들고 모순을 깨야 하지만 정, 가위, 칼의 아쉬운 점은 너무 날카롭기 때문에 옆이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저희 동네에서는 '한동네 살믄서 왜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 이념공동체와 생활공동체의 근본 차이는 생활공동체의 근원에는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거기엔 마지막 선을 넘지 않으려는 본능이 있다. 정, 망치, 가위, 칼을 녹여서 주물에 부어 호미로 만들 수 있으면 칼춤에 옆 사람이 상하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건강하기 위해 애쓰는 교사,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해 꿀벌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이, 사랑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이, 시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이, 저마다 많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내놓고 나누어 나눔이 커지는 공간, 꿀벌의 세계 같은 관계와 공간을 만들어가면서 그 공간에서 "장수하십시오. 살아남으십시오"라고 당부한다.
우리가 하나의 전체이기에 그저 서로 섬기고 서로 도와야 한다는 그의 말이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이미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켜온 꿀벌과 함께 살고 있는 그의 삶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