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동아일보 1면에는 <"상하이 잠입한 인촌 김성수, 안창호 만나 독립자금 전달">(2/21 박효목 기자, 상하이 권오혁 특파원)이라는 보도가 실렸습니다. 자매사인 채널A 저녁종합뉴스 뉴스A에서도 <상하이 찾은 후손들…"인촌 선생도 비밀회동">(2/24 김윤정 기자)라는 보도를 통해 인촌 김성수 관련 보도를 내놨습니다.
동아일보와 채널A 보도의 요지는 지난 2월 20일 상하이 영안백화점 옥상에서 열린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양영두 민주평화당 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인촌 김성수 선생이 중국 상하이에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자금을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동아일보의 '인촌이 도산에게 큰돈 기부' 보도는 처음 아냐
동아일보의 이런 주장은 처음이 아닙니다. 동아일보 <인촌 김성수 선생, 각계 지도자들의 증언>(2009/9/18)에서는 "동아일보는 창간 82주년을 맞아", 인촌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인촌의 참모습을 재조명"하는 기사를 내놨습니다.
보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다양한 인사들이 인촌에 대해 회고하고 내용이 들어있는데요. 그중에서 이강훈 옹의 회고라면서 "인촌께서는 1929년 말 구미 여행길에 상하이 임시정부에 들러 임정이 운영하던 학교에 큰 돈을 기부했다. 임정 요인들의 노고에 대한 인촌 선생의 진심어린 경의에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한 임정 요인들은 크게 감동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밖에도 당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스님의 발언이라면서 "1937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병원에서 투병 중일 때 가족들이 인촌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인촌은 남들 앞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거절했으나 뒤로 몰래 사람을 보내 거액을 전달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렇게 동아일보가 자사 창간 82주년이라며, 인촌 김성수의 미담을 모은 보도를 내놓은 배경에는 인촌의 친일행적에 대한 논의가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인촌 김성수는 이미 2002년 3월 국회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선정되었고, 동아일보의 거센 반발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의 보도가 나간 두 달 뒤인 2009년 11월 8일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동아일보 김성수 전 사장이 포함되었습니다. 이 때도 동아일보는 <사설/'대한민국 정통성 훼손' 노린 좌파사관 친일사전>(2009/11/9)을 내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었죠.
인촌 김성수의 친일은 역사적으로 법적으로 확인된 내용
2017년 4월 13일, 대법원은 인촌의 증손자인 김재호 동아일보사 사장과 인촌기념회가 행정자치부 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처분 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일제 강점기 김성수의 친일 행적 상당 부분을 친일행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 위법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인촌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던 매일신보 1943년 8월5일자에 실린 <문약의 고질을 버리고 상무 기풍을 조장하라>는 기고문에서 "징병제 실시로 비로소 조선인이 명실상부한 황국신민이 되었다면서, 이를 실천할 지름길로서 '황국신민의 서사'의 정신을 온몸으로 체득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1943년 11월 6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대의에 죽을 때 황인됨의 책무는 크다>에서는 "의무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독려했습니다. 1943년 12월 17일 보성전문학교 학도지원병 예비군사학교 입소식에서는 "제군은 세계무비의 황군의 일원의 광영을 입게 되었으니 학도의 기분을 버리고 군인의 마음을 규율 있는 생활을 하자"고 훈시했습니다.
김재호 사장 등은 "일제 당시 신문기사를 믿을 수 없고, 단체와 행사 참석은 강제동원일 뿐"이라며 취소 소송을 냈지만, 재판부는 "징병 또는 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선동한 행위"와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등에 참여해 활동한 것"은 "일제 통치기구의 주요 외곽단체에서 장이나 간부로서 일제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행위"라고 봤습니다.
이후 2018년 2월 14일, 인촌은 정부로부터 받은 건국공로훈장을 박탈당했고, 지난 2월 27일에는 그의 호를 딴 '인촌로'라는 도로명이 성북구가 주도한 주민투표를 통해 28년 만에 폐지되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의 '인촌 김성수 띄우기'는 계속된다
그 동안 동아일보의 '인촌 김성수 띄우기'는 집요하게 이뤄졌습니다. 일례로 김지하 시인의 연극 출연 행적을 조명한 2013년 기사 <"최불암 박근형과 함께 계몽연극에 참여했다">(2013/4/12, 허문명 기자)에서는 "인촌을 비롯한 한민당의 정치사적 의미, 또 인촌의 민족주의 정신과 고하와 설산 장덕수의 삶에 대해 전해 들었다. 내게 역사인식을 가져다준 소중한 체험이었다"는 김지하 시인의 김성수에 대한 회고를 깨알같이 담았습니다.
<후진국형 진보 넘는 뉴레프트 사관 필요>(2017/3/18, 조종엽 기자)과 같은 책 소개 기사에서도 김성수가 등장하는데요. 총 6문단으로 되어 있는 기사 중 2문단이 김성수에 관한 저자의 평가를 발췌한 대목으로, "저자는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이었던 인촌 김성수 선생을 '당대의 조정자'로 평가했다"며 책의 특정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이렇게 눈에 불을 켜고 김성수에 관해 조금이라도 언급된 부분은 모두 찾아 기사화하던 동아일보는 정작 김성수의 친일 행적 관련한 명백한 사실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인촌의 친일이 사실로 인정된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조선, 동아, 중앙은 모두 보도하지 않았고, 한겨레와 경향신문만 2017년 4월 14일에 관련 보도를 지면에 게재했습니다.
2018년 2월 13일 인촌의 서훈박탈에 대해서도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보도했지만,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적극 변호에 나선 것은 조선일보로, 외부칼럼 3건(<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이런 부관참시>(2018/2/20), <독자투고/인촌선생 서훈 취소 부당>(2018/3/9), <김동길 칼럼/'자기 한 몸 부끄러워져도 이화 지킨 그녀 돌 던질 수 있을까>(2018/3/10)에서 김성수의 서훈박탈이 부당하다는 기고자들의 주장을 실었습니다.
자사의 부끄러운 치부에 대해서는 이처럼 감추고 있는 수준이니 3‧1절을 앞두고, 자사 초대 사주의 친일행적을 반성하기보다는 '인촌이 도산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줬다'는 보도를 내놓은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동아일보와 채널A 보도에 대한 팩트체크 결과는?
그렇다면 이번에 내놓은 동아일보와 채널A는 어떤 내용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양사는 지난 2월 20일 상하이 영안백화점 옥상에서 열린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양영두 민주평화당 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인촌 김성수 선생이 중국 상하이에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자금을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에서 양영두 위원장의 발언이라며 담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촌 김성수 선생이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자금을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전달했다" △ "도산 선생 일기에 따르면 이곳 영안 숙소에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회합이 빈번했다. 인촌 선생도 이곳에서 비밀 회동을 했다는 증언이 있다" △ "도산 선생의 일기에 인촌 선생의 존함이 빠진 건 인촌 선생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도산 선생 비서 역할을 했던 장이욱 전 서울대 총장이 김재순 전 국회의장에게 말한 내용", "장 전 총장을 모셨던 김 전 의장은 이를 (2013년) 흥사단 10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증언했다" △ "장 전 총장에 따르면 인촌 선생은 도산 선생이 1938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경성제국대 부속병원(서울대병원) 입원비에도 도움을 줬다" △"인촌 선생이 비밀리에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도산 선생을 면담했다는 증언은 역사의 기록이다."
동아일보 보도에서 양영두 위원장 주장을 옮긴 것이 아니라 기자가 자기 시점으로 서술한 것은 "인촌 선생은 1929년 12월 서울을 출발해 부산, 일본을 거쳐 상하이로 갔다는 기록이 있지만 중국에서의 구체적인 활동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뿐입니다.
채널A도 양영두 위원장의 "인촌 선생은 1929년 12월 경성을 출발해서 부산, 일본, 상해로 …영안 숙소(대동여사)에서 비밀 회동을 통하여 독립운동을 지원하신 것으로 증언이 되고 있습니다"라는 발언 모습을 녹취 인용했습니다.
이처럼 두 보도가 주장하는 내용의 근거는 양영두 위원장의 발언뿐입니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몇 사람을 건너서 전해오는 내용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이들 주장을 뒷받침해줄만한 역사적 자료가 없습니다. 김성수 정도의 거물급 인사가 상하이를 갔다면, 최소한 상하이 방문 기록이라도 남아야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근거가 희박함을 알기에 양영두 위원장조차도 "도산 선생의 일기에 인촌 선생의 존함이 빠진 건 인촌 선생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전형적인 '반사실적 가정의 오류'로, 역사적 근거가 없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일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비밀로 한 것'이라는 추정을 하는 것입니다. 비밀이라는데 당연히 아무도 증명할 수 없지요. 이런 식이라면 일제강점기 시대 상하이를 한번이라도 방문한 사람 중 임시정부의 협력자로 만들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역사적 인물에 관한 평가는 공정해야
설령 양영두 위원장과 동아일보의 모든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김성수의 친일 행적은 역사적, 사법적 판단이 끝난 사안입니다. 김성수의 학도병 참여 선전, 선동 행위와 일부 친일단체들에서 이사를 했던 활동에 대해 친일행위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 2016두346는, "비록 원고들의 주장과 같이 망인이 3․1운동에 참여하고 동아일보나 보성학교 등을 운영하면서 민족문화의 보존과 유지 및 발전에 기여한 성과가 적지 아니한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이나 이 사건 증거들만으로는 위와 같은 친일행위의 주도성․적극성을 감쇄시킬 정도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김성수 말고도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 말기 돌변해 일제가 벌이는 전쟁에 적극 참여․협력한 인사는 수두룩합니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면 이런 인사들의 한쪽 면만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양면적 행적을 균형 있게 알려, 이들의 어떤 면모가 일제의 전쟁 선전에 쉽게 넘어가도록 만들었는지, 역사적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기회주의자로 역사에 남지 않을지 고민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초대 사주의 친일 행각이라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인촌 김성수의 인연을 강조하려는 목적에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까지 마구잡이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번과 같이 역사적으로 전혀 입증할 수 없는, 확인이 불가능한 일방적인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또 다른 역사왜곡입니다. 3‧1운동 백주년을 맞은 즈음에 초대 사주의 친일행적에 대해 독자 앞에 사과하기는커녕 이런 보도를 내놓은 동아미디어그룹의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