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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파 갈아엎는 무안농민 지금 전남에선 정 씨처럼 양파 등 월동채소를 갈아엎는 게 농촌의 일상이 된지 오래다.
전라남도는 월동채소 가격 안정을 위해 겨울대파 4천872t, 조생양파 1만840t을 산지시장 격리 조치(산지 폐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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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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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 뭉개지는 것은 양파가 아니라 농심입니다."
12일 오전 11시 전남 무안군 청계면 구로리. 마을 어귀에 있는 밭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곳은 양파 재배 농민 정상철씨의 밭이다.
정씨는 오늘 991제곱미터 넓이의 양파밭을 갈아엎기 위해 나왔다. 이 자리에는 이미 무와 배추, 대파를 갈아엎고 달려온 해남과 나주, 영암, 무안의 농민들도 있었다. 월동채소 가격 폭락으로 애써 키운 농작물을 갈아엎어야만 하는 참담한 심정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트랙터에 시동을 켜자 작은 농촌마을은 기계가 돌아가는 굉음에 휩싸였다. 트랙터가 양파밭 위를 한 번씩 지나갈 때마다 양파는 힘없이 뽑혀 나뒹굴었다. 푸릇푸릇한 양파 줄기 색으로 가득 찼던 밭엔 어느새 거무튀튀한 흙만 보였다. 1년 동안 애써 가꿔온 양파를 단 몇 분 만에 갈아엎었다.
해남에서 온 한 농민은 양파밭을 갈아엎는 모습을 지켜보며 "농작물을 생산하는 것보다 폐기하는 게 나은 현실이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 농업의 현실"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현재 전남 농촌에선 정씨처럼 양파 등 월동채소를 갈아엎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전라남도는 월동채소 가격 안정을 위해 겨울대파 4872t, 조생양파 1840t을 산지시장 격리 조치(산지 폐기)하고 있다. 산지폐기에 참여하는 농업인에 대해서는 평당 겨울대파 5844원, 조생양파 5922원을 보전해 준다. 산지폐기 사업에는 56억 원이 투입된다.
양파 산지폐기의 경우 전남지역에서는 788ha 신청이 들어왔다. 이 가운데 무안이 42%인 330ha를 차지했지만, 실제 배정된 면적은 60.3ha다. 결국 신청 농가의 18.2%만 보조금을 받고 밭을 갈아엎는 셈이다. 폐기는 12일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정씨는 마지막 날 밭을 갈아엎었다.
농민들과 민중당 전남농민위원회는 양파를 갈아엎은 뒤 '월동채소 가격 폭락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농민들은 '산지폐기 정책의 전환'과 '수입농산물 제한'을 요구했다. "배추, 무, 양파, 대파의 산지 폐기 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정부의 정책을 근본에서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작년부터 배추, 무, 양파, 대파 등 월동채소 가격은 40% 이상 폭락하고, 수입농산물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많은 양이 들어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농민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연 민중당 전남도당도 "결국 우리 농산물을 죽여야 그나마 살 수 있는 막다른 길에 이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남도당은 "농민들에게는 애써 키운 농산물을 갈아엎어야 하는 고통을 요구하고, 국가적으로는 막대한 낭비를 초래하는 이 어처구니 없는 정책은 정부의 농산물 수급정책의 실패가 가져온 결과"라고 비판했다.
농민들과 민중당 전남도당은 "정부대책이라는 게 산지폐기와 대국민 소비촉진을 홍보하는 정도"라며, "그러나 이마저도 폐기 처분 단가에 농민 자부담 20%를 적용하면서 정책 실패의 책임을 농민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산지폐기 정책을 폐기하고 근본적인 농정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축구했다. 그 핵심적인 장안으로'주요농산물 공공수급제' 실시를 주장했다. 정부는 미리부터 수급 계획을 세워 농민들에게 가격을 보장하고, 소비자들에게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공급해야 한다는 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