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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열린 자신의 저서 <버선발 이야기>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열린 자신의 저서 <버선발 이야기>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 유성호
 
여든일곱 살의 그는 '기적'처럼 일어났다. 이수호 전태일 재단 이사장의 표현이 그랬다. 이 이사장은 "고문 후유증에 건강까지 악화돼 지난해 10시간의 대수술을 받았으나 기적같이 살아나셨다"라고 했다. 그는 병상에서 병마와 싸우면서도 연필을 놓지 않고 책을 집필했다. 수술 후 깨어나서 처음 한 말도 "원고지를 갖다 달라"는 거였다. 이렇게 완성된 책을 이수호 이사장은 "무지렁이 이야기, 민중의 삶,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를 풀어낸 귀중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백발의 거리 투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이야기이다. 그가 "목숨 걸고 썼"다는 <버선발 이야기>.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버선발은 '맨발'을 뜻하는 말로, 추우나 더우나 늘 발을 벗고 다닌다고 해서 붙여졌다.

백 소장이 10년 만에 신작을 내놨다. 그 옛날 저잣거리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활자로 옮겼다. 이 책은 백 소장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순우리말로 쓰였다. 흔히 쓰는 외래어와 한자말도 없다. 문장 속에서 단어를 풀이해준다. 책의 맨 뒤에 '낱말풀이'란도 있다.
 
▲ ‘버선발 이야기’ 집필한 백기완 “너도 나도 잘 사는 ‘노나메기’ 만들어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열린 자신의 저서 '버선발 이야기'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책의 내용을 소개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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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소장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림카페에서 열린 <버선발 이야기>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버선발 이야기>를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이 책에는 민중의 삶과 생각, 예술, 사상, 꿈이 그대로 담겨 있다. 너도 나도 올바로 잘사는 세상 '노나메기'를 꿈꾸며, 우리 사회를 향해 근본적인 말뜸(문제 제기)를 던진다. 글은 목숨이 아닌 것을 때려 부수고 까발리기 위해 쓰는 것이다. 독점 자본주의 문명은 목숨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목숨의 씨앗, 생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1970년대 초부터 백 소장과 인연을 이어온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버선발 이야기>를 읽은 소감을 아래와 같이 전했다.

"이 책에는 오늘날 우리 현실이 반영돼 있다. 책은 민중의 삶 속에 있는 희망을 형상화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민중들의 이야기는 학문적으로 정리돼 왜곡이 많다. 하지만 백 선생님의 이야기에는 역사적 진실과 예술적 힘이 있다. 파격과 민중의 저항이 있어 매번 감동하게 된다. 우리 민족 문화, 민중예술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백 선생님뿐이다. 인간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
 
▲ '버선발 이야기' 책 소감 전하는 유홍준 “말뜸, 다슬, 노나메기 기억하자”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열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책 ‘버선발 이야기’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책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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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과 버선발, 닮았다

<버선발 이야기>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책상 앞에 앉아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글로 배운 깨달음이 아니라, 온 몸으로 구르고 깨지며 얻은 민중의 진리가 담겨 있다. 책 속에 갇혀 있는 죽은 언어가 아니라, 거리에서 살아서 팔딱팔딱 뛰는 언어로 쓰였다.

버선발은 백기완을 닮았다. 버선발의 삶을 보면 백 소장의 얼굴이 겹쳐진다.

'버선발'은 머슴의 아이다. 주인집에 얹혀살지 않고 깊은 산 속에 숨어 산다. 엄마 품에서 뛰어놀 나이에 '버선발'은 맨발로 산을 누빈다. 다섯 살배기가 하는 일이라곤 거대한 바위에 세워진 단칸방에서 일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게 전부다. 허기진 배는 말라 배틀어진 깡조밥 한 덩어리로 때우면서 말이다.

버선발 눈에 비친 머슴의 삶은 끔찍했다. 어느 날, 친구 '개암이'가 새끼줄에 목이 매인 채 어딘가로 끌려간다. 머슴의 아들딸은 여섯 살만 넘으면 주인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개암이가 끌려가도 엄마 아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머슴살이를 피해 도망갔던 버선발도 결국 끌려간다. 앞잡이를 피해 산 속으로 숨었으나 열한 살에 붙잡혀 이름 모를 산자락으로 끌려갔다. 꾸물대면 채찍이 날아왔다. 하루 한 끼 주는 알량한 주먹밥은 씹고 자시고가 없었다. 머슴의 끝은 참혹했다. 일하다 쓰러지면, 산 채로 깊은 늪에 내동댕이쳐졌다. 버선발은 거의 열해 동안 그렇게 살았다.

그런 버선발에겐 특별한 힘이 있었다. 발을 구르면 바닷물이 땅 속으로 사라지고 커다란 바위도 쩌억쩌억 갈라졌다. 이런 특별한 힘으로 버선발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돕는다. 그들과 함께 머슴과 농민, 평범한 사람들의 피와 땀, 눈물을 빨아먹고 사는 주인들을 응징한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열린 자신의 저서 <버선발 이야기>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열린 자신의 저서 <버선발 이야기>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 유성호
 
백 소장이 목격한 현대사도 참혹했다. 일제 강점기가 막을 내리자 6.25전쟁이 터졌다. 같은 민족끼리 남과 북으로 나뉘어 총칼을 겨눴다. 전쟁이 끝나고 군사정권이 나라를 삼켰다. 적을 향했던 총부리가 시민을 향했다. 무고한 죽음이 이어졌다.

백 소장은 저항했다. 온몸으로 유신체제와 군사정권에 맞섰다. 대가를 호되게 치렀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의 총이 박정희 가슴을 관통한 날, 백 소장은 계엄령 위반으로 서빙고 보안사령부로 끌려갔다. 권총 개머리판에 뒤통수를 맞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맞았다. 잡혀갈 때 백 소장의 몸무게는 82kg였으나 나올 땐 38kg으로 줄어 있었다.

그는 잔혹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다. 백 소장은 감옥의 천장과 벽에 웅얼거리며, 바랄(희망)을 썼다. 시 '묏비나리'다. 훗날 이 시의 일부를 빌려 만든 노래가 지금까지도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민주주의 세상도 잔혹하긴 마찬가지였다. 총칼이 자본으로 바뀌었을 뿐, 사람이 사람을 노예처럼 부려먹고 탄압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부당한 정리해고로 수많은 노동자가 피땀 흘린 일터에서 쫓겨났고, 일하다 죽어갔다.

이때마다 백 소장도 '버선발'처럼 특별한 힘을 보여줬다. 지난 2011년 한진중공업의 부당한 대규모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희망 버스가 부산으로 향했을 때, 백 소장은 가장 먼저 한진중공업 부산공장 담벼락에 오르며 사람들의 깃발이 됐다. 그리고 사자후를 날렸다.

"경제의 주인은 독점자본이 아니라 일하는 노동자다. 우리들이 간절히 바라는, 우리들의 희망을 대변하는 김진숙 동지를 죽이려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조남호(한진중공업 회장)는 사람이 아니다."
 
▲ '버선발 이야기' 책 소감 전하는 이수호 “민중의 삶과 태도 풀어낸 귀중한 책"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열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책 ‘버선발 이야기’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책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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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 아닌 '노나메기'

이 책의 정수는 버선발이 자신을 구해준 할머니와 대거리를 하는 부분에 있다. 버선발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장면이다. 백기완 소장이 공들여 쓴 대목이기도 하다.
 
"할머니, 거 사람이라는 게 어째서 사람을 갖다가서 머슴으로 부려먹는 거지요?"(버선발)
"그야 뻔한 게 아닌가. 내 거라는 것이지."(할머니)
"아니, 사람이 사람을 갖다가서 내 것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머슴으로 부려먹는다 그 말씀이신가요."(버선발)
"그러니까 머슴이라는 건 사람이 부릴 짓이 아니라네. 그거야말로 내주(용서) 못할 사갈 짓(범죄)이지."(할머니) - 본문 187쪽

긴 대화 끝에 버선발이 말한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머슴살이란 제 목숨을 제가 갖고 있으면서도 제 마음대로는 못 살고 한살매(일생)를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는, 살아도 죽음이요, 죽어도 머슴살이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우리 머슴 놈들의 참목숨은 어쨌든지 내 것이지 마땅쇠(결코) 남이 이러구저러구 할 꼰치(노예)가 아니다라는 목숨의 몸부림이 빚는 피땀이 있질 않습니까. 피눈물 말입니다. 그 눈물겨움마저 앗아가는 건 썅이로구 누구겠어요. 그건 한마디로 사람도 아니요, 짐승도 아닌 던적(사람이 아닌 목숨), 따구니(악귀) 놈들이라. 자 받거라, 이내 참을 수 없이 치솟는 이 뿔대, 이 대들(저항), 이 맑은 참의 칼을 받거라 이놈들, 하고 그냥 짓이겨온, 그게 바로 피땀이었지요."- 본문 211쪽

할머니가 답한다.
 
"여보게, 아 여보게, 자네가 바로 참짜 노나메기일세, 노나메기. 야 이놈들아, 남의 목숨인 박땀, 안간 땀, 피땀만 뺏어먹으려 들지 말고 너도 사람이라고 하면 너도나도 다함께 박땀, 안간 땀, 피땀을 흘리자. 그리하여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벗나래(세상)를 만들자. 너만 목숨이 있다더냐. 이 땅별(지구), 이 온이(인류)가 다 제 목숨이 있고 이 누룸(자연)도 제 목숨이 있으니 다 같이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거. 그게 바로 노나메기라네" - 본문 212쪽

또, 책의 끝에는 지난 2016년 겨울 광화문 광장을 뜨겁게 달군 촛불혁명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도 나온다. 보통의 영웅 소설과는 다른 결말이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와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열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책 <버선발 이야기>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백 소장의 책 출간을 축하해주고 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와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열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책 <버선발 이야기>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백 소장의 책 출간을 축하해주고 있다. ⓒ 유성호
 

버선발 이야기 - 땀, 눈물, 희망을 빼앗긴 민중들의 한바탕

백기완 지음, 오마이북(2019)


#백기완#버선발이야기#버선발#유홍준#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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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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