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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후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수업 통폐합에 반대하며 ‘후마니타스 장례식’을 열었다.
20일 오후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수업 통폐합에 반대하며 ‘후마니타스 장례식’을 열었다. ⓒ 김종훈
 
2003년 경희대학교 영어학부에 진학했다. 영세 자영업자의 딸로 지방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간신히 '인(in) 서울'을 목표로 할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던 내게, '경희대 서울캠퍼스 영어학부 입학', 그것도 '4년 전액 장학생 입학'은 그 자체로 생애 다시 없을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원했던 통번역학을 전공하면서 허탈함과 박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전공 과목 수업을 들어가면 외고 출신, 외국 체류/교환학생/유학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즐비했고, 그 사이에서 '순수 국내파'인 나는 잘해도, 못해도 순수 국내파여서 주목받곤 했다.

어떤 교수는 첫 통역 수업 때 나의 프로필을 읊어대며 이렇게 말했다.

"넌 어디 이름도 못 들어본 시골 인문계고 출신에, 해외 경험도 없네? 나중에 남자라도 잘 만나서 외국물 한번 먹어야겠구만."

이듬해, 통역 수업에서 선전하는 나를 보고 첫 학기의 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듯, 그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야 너, 너 어디 출신이랬지? 아버지가 어디 교수시랬나?"

숟가락 공장집 딸인 나는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고, 그는 양손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더러 "대단하다"고 했다.

나의 전공 필수 수업은 이런 수모가 아무것도 아닌 듯 이어지는 곳이었다. 그런 분위기에 진절머리가 났다. 인성도, 가르치는 기술도, 학생들 잘 가르칠 마음도 없이 '스펙' 하나로 그 자리를 꿰찬 교수는 수업 준비도 해 오지 않고 자기 책이나 강매하며 횡포를 부렸다.

대학이란 무엇인가

대학이란 곳이 얼마나 빈껍데기 같은 곳인가를 알아가던 그 무렵, 우연히 들어간 영문학 전공 수업은 내게 완전히 다른 세상을 열어주었다. '소설의 인간학' '서구 문명의 이해' 같은 제목을 달고 있던 영문학 전공 수업에서는 그 동안 한번도 물어본 적 없고 들어본 적 없었던 거대한 질문들을 내게 수시로 던져댔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가"
"나는 어떤 물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가"


대학 후반부 내내, 이런 질문들을 안고서 길을 걷고, 책을 읽고, 알바를 뛰었다. 그 전엔 그저 내 한 몸,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이런 질문들을 안고 걸으면 나를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을 둘러싼 세상이 보였다. 그 질문들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해보고 싶었고, 석사 공부를 시작했을 때 드디어 '진짜' 대학 공부라는 걸 하게 되었다고 느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유학을 준비하던 때, 앞의 저 질문을 던져주었던 이는 경희대학교에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세웠다.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 자리에 있던 그를 찾아가 인사했을 때만해도, 나는 아직 그를 '내 인생의 스승'이라 여겼다. 그가 세운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자랑스러웠고, 기대도 컸다.

후마니타스라는 이름처럼 인문 가치를 실현하는 대학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그렇게 기대했다. 내게 그 길을 열어 보여준 사람이 세운 곳이니까,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읽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 자기 반성과 성찰, 세상을 향한 질문을 사유의 핵심으로 삼는 사람으로 사는 법을, 나는 그에게서 배웠으니까. 그리고 그 가르침이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믿었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진짜였을까
 
 20일 오후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수업 통폐합에 반대하며 ‘후마니타스 장례식’을 열었다.
20일 오후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수업 통폐합에 반대하며 ‘후마니타스 장례식’을 열었다. ⓒ 김종훈
 
그런데 그렇게 학교를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후마'와 경희대,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그에 관한 이런저런 소식들을 들었다. 2014년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교과 개편 과정에서 100여개의 강좌를 폐강 조치했다. 2016년에도 126개의 강좌가 폐강되었다. 강좌가 폐강되었다는 건, 그 강의를 맡았던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뜻이다.

해고된 200여명의 강사. 전공 교수에게서 배울 것이 하나도 없어 좌절했던 학부 시절,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선생들은 모두 시간 강사 선생님들이었기에, 200이라는 숫자 속엔 학부 시절 나를 가르친 그 많은 '교수님'들의 얼굴이 겹쳐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은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조용히 묻혔다.

반면 슬라보예 지젝 같은 세계적인 '진보 스타 학자'가 경희대를 제집 드나들 듯 방문한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시민을 기르는 교양 교육'의 앞서가는 모델이 되었고, 경희대가 어디에서나 자랑스레 앞세울 수 있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래서 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2019년 경희대학교는 "후마니타스 제2의 도약"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춘다는 구실로 몇 년에 한번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는 게 한국 교육 현장의 속성임을 모르지 않지만, 인문 가치의 실현을 핵심 철학으로 삼는다던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20년도 아니고 이제 10년 된 커리큘럼을 '업그레이드' 하겠다고 '제2의 도약' 어쩌고 하는 걸 보자니 헛웃음이 난다.

'글로벌 시민 양성'이라는 빈껍데기 명분으로 교과개편을 하고, 그 교과개편을 이유로 수업을 통폐합하면서 나타나는 결과는 결국 강좌 수와 강사 수 축소. 인문학을 가르치는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정작 가르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쓰다 버리는 물건 취급을 받고 있다. 해고 강사에게 '해고가 아니라 해촉(근로계약 관계가 아니라는 취지 - 편집자 주)'이라는 사용자 논리를 들이대는 곳이 '후마니타스 칼리지'라면 그곳에 인문 정신 따위는 없다.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2012년, 미국 중부 어느 대학에서 CEO-정치인 출신 인사, 비즈니스 정신이 투철하며 조만간 대권을 노릴 것이 분명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인사가 차기총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이에 반대하던 대학 학생들은 피켓을 들고 캠퍼스를 행진하며 외쳤다. "대학은 누구 것?"(Whose School?) "우리 것!"(Our School!)  "민주주의가 뭐라고?" (Tell me what democracy looks like?) "이게 바로 민주주의지!"(This is what democracy looks like!)

그 속에 끼여 함께 구호를 외치면서 생애 처음으로 "대학은 누구의 것인지"를 물었던 기억이 난다. 경희대에서 학생들이 '후마 구조대'를 조직해 후마니타스 칼리지 장례식을 치렀다는 소식(관련 기사  : 인문학 또 버리나? 경희대 후마니타스에 놓인 국화꽃)을 들으며, 다시 한번 대학은 누구의 것인지를 상기했다. 누군가는 장례식이라는 형식에 대해 불쾌감을 표현했다고 하지만, 사람이 없는 '후마니타스 칼리지', 민주주의 없는 '자주 경희'에 필요한 것이 장례식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경희대는 강사법을 준수하라"
"비용축소 중단하고 구성원과 소통하라"
"온라인 강의확대 등록금 날로 먹냐"
"우사세('우리가 사는 세계' 강의) 폐지 인간다움은 어디에"


이런 구호들을 학교 교정에 흩뿌리는 학생들이 있고, 연구실은커녕 휴게실 한쪽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보따리 장수'지만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이 머리 위에 띄우는 '느낌표'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외치는 해고 강사들의 목소리가 있다. 대학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이 사람들의 것이다. 그저 잘 팔리는 브랜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해체하고 인간다움을 새로이 불어넣을 힘 역시, 바로 거기에 있다.

#경희대#후마니타스칼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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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활동가로 살고 싶은 사람. 아이의 선천성 희소질환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T 증후군)'을 계기로 <아이는 누가 길러요>를 썼다.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시민추진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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