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와 흙'은 25일간 멕시코의 도예마을을 따라 여행한 기록을 담았다. 3년 전 칠레의 한 도예마을에서 보았던 글귀를 기억한다. "도예는 땅의 꿈에 형상을 입혀주는 인류의 유일한 예술이다." 멕시코에서 만난 흙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 그들이 만들어낸 흙 예술을 통해 만나보았다. - 기자말
멕시코 도자기 여행의 마지막 여정은 '인어의 남자'라 불리는 멕시코의 한 장인을 만나는 길이었다. 주소가 없어도 와하까 주의 산 안토니오 까스티요 벨라스코(San Antonio Castillo Velasco) 마을 입구에 도착해 돈 호세(José Garcia Antonio)라는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길이었다.
열려 있는 대문을 슬쩍 열고 들어가니 어느 채널의 인터뷰가 한창이었다.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약속도 없이 불쑥 방문한 한 사람이 무례하다 느꼈을 수도 있을 텐데 딸인 사라가 인터뷰 중인 아버지를 대신해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랜 세월 돈 호세의 흙 작업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마치 하나의 박물관 같은 그의 집 마당을 둘러보며 두근두근 돈 호세와의 만남을 기다렸다.
건강한 장난감이었던 흙
"내가 어렸을 때는 장난감이 없었죠. 무엇을 하고 놀까? 매일매일 찾아야 했어요. 비가 오면 흙이 젖어요. 젖은 흙을 만지다 보면 이런저런 모양이 되기도 했죠. 그러다 찰흙을 발견하고 매일 친구들과 그것을 가지고 놀았어요. 대여섯 명의 친구들이 찰흙으로 모양을 만들었지만 그중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나뿐이었죠.(웃음)."
돈 호세에게 흙은 어린 시절의 '건강한 장난감'이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을 흙으로 만들며 노는 것이 마냥 좋았다고 한다. 탑을 만들고 동물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흙 놀이는 청소년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마냥 놀이를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옥수수 농장의 농부였던 아버지와 하루하루 또르띠야를 만들어 생활하는 어머니는 15살이 된 그에게 일을 하라고 했고 그는 무언가 돈을 벌기 위한 기술을 배워야 했다.
"도축일을 배웠고 그 일을 한동안 했어요. 힘들고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죠. 하지만 시간이 날 때면 항상 흙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것이 어른이 된 나에게도 유일한 휴식이 되는 놀이였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여동생의 남편이 흙을 만지는 그를 보고 어떤 캐릭터 하나를 흙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게 첫 주문이었다. 당시 유명하던 작은 코믹 캐릭터 하나를 만들었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 했고 그냥 부서지는 것은 아깝다며 근처 마을의 가마가 있는 집에 가서 구웠다. 구워진 그의 첫 흙 작품이었다.
"그렇게 시작되었죠. 그 후 작은 가마를 만들었어요. 한동안은 일도 하고 흙 작업도 했지만 결국 흙 작업만 하게 되었죠. 어릴 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흙은 건강한 놀이예요. 그건 칠십여 년간 변하지 않았죠."
그의 수식어 '인어의 남자', '보는 손'
그는 와하까의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들을 주로 흙으로 빚었고, 한동안 인어를 주요 테마로 작업했다. 처음 인어를 만든 것은 우연히 인어 모양의 메스칼(멕시코 전통술)을 넣는 항아리를 본 이후였다.
인어 형상으로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고 상상 속 인어를 빚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촛대를 받치는 작은 인어로 시작해서 그 주제와 형태는 다양해졌다. '바다의 사랑', '바다의 결혼식' 등 그가 흙으로 만든 인어 시리즈가 많아졌고 사람들은 그를 '인어의 남자(el señor de las sirenas)'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바다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물어요. 사실 바다에는 딱 세 번 가봤어요. 알지 못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더 즐겁죠. 바다를 상상하고, 인어를 상상하는 것은 나에게 즐거운 일입니다. 나는 아름다운 것을 빚고 그 시간이 행복할 뿐이에요.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의 이름을 수식하는 또 하나의 말은 '보는 손'(las manos que ven)이다. 그는 17년 전 시력을 잃었다. 점점 시력이 나빠졌고 결국 치료에 실패했다. 처음에는 그도 절망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그의 손은 눈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흙을 만졌을 때 다른 감각이 살아났고 계속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돈 호세의 옆에는 오랜 세월 그의 작업과 함께 해 온 사랑하는 아내 테레시따가 있었다.
"내가 모양을 만들고 작업하면 디테일한 부분은 테레시따가 마무리해주죠. 지금은 함께 작업을 한다고 보면 돼요. 아내가 내가 상상하는 것과 같은 것을 그리고 있을 거라는 걸 알죠."
무엇이 되어 질 흙
마침 방문한 날은 거의 2년 동안 사용할 흙을 준비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동네 외곽에서 벌써 며칠간 일꾼들이 흙을 캐고 있었고 인터뷰가 끝난 점심시간에 돈 호세와 테레시따는 새참을 들고 일꾼들에게 간다고 해서 함께 길을 나섰다.
작은 동네 모토택시(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한참을 가서 큰 도로 언저리에 내렸다. 거기서 다시 이십 여분 남짓을 걸어가야 했다. 돈 호세는 테레시따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녀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따라 걸으며 오랜 시간 그들이 쌓은 믿음과 사랑이 느껴졌다.
며칠간 캐놓은 흙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흙이 어떤지, 어느 정도인지 눈으로 볼 수 없는 돈 호세는 손으로 흙을 담아놓은 자루 하나하나를 두드려 만져 보았다.
"내가 흙을 찾은 것이 아니에요. 흙이 나를 불렀죠. 무언가 되게 해 달라고, 상상한 것을 만들어 달라고 말이죠. 이 흙을 만지고 있으면 행복해요. 이제 또 뭐든 상상한 걸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는 지금 흙을 만지며 무슨 상상을 하고 있을까. 흙으로 쓴 한 편의 시와 같은 그의 삶은 유명세만큼 화려하지도 풍요롭지도 않았지만 칠 십여 년을 흙과 살며 한 번도 피곤하거나 힘든 날이 없었다고 했다. 지독하게 흙에게 반한 사람, 혹은 흙이 반한 사람, 돈 호세와 하루의 시간을 함께하며 '흙을 사랑한다면 그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멕시코 흙여정을 마치며] 멕시코에서 만난 흙들은 모두 각각의 이야기와 사람이 있었다. 묵묵히 오랜 세월 전통을 이어오던 시간과 바탕 위에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움직임들도 함께 했다. 보존과 변화라는 두 개의 키워드 사이의 균형을 항상 생각한다는 많은 도예가들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남길 것과 변화할 것의 시소타기에서 본질적인 가치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함을 멕시코의 흙 여정에서 배웠다. 멕시코에 간다면 그들의 흙 이야기에 한 번쯤은 귀기울여 봐도 좋겠다.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었던 땅의 이야기를 엿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