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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노인기초연금연대 회원과 노인들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에서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의 기초연금 박탈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청와대까지 행진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 노인들은 매달 25일 기초연금을 받았다가 다음달 20일 생계급여에서는 같은 액수만큼 삭감당하고 있다.
빈곤노인기초연금연대 회원과 노인들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에서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의 기초연금 박탈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청와대까지 행진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 노인들은 매달 25일 기초연금을 받았다가 다음달 20일 생계급여에서는 같은 액수만큼 삭감당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5일 노인 100여 명이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해결을 요구하며 경복궁역 사거리에서 청와대로 행진했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과 다른 비기여형 사회보장제도이다. 과거 보험료를 낸 이력이 없더라도 현재 노인이면서 소득·재산 기준을 충족하면 받을 수 있다. 만 65세 이상 소득하위 70% 이하 노인에게 소득에 따라서 최소 2만 5천 원에서 최대 25만 원을 보장한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의 낮은 소득대체율을 보완하고, 국민연금 도입 당시 가입할 수 없었던 노인을 비롯해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한국 사회는 노인 두 명 중 한 명이 가난할 정도로 노인빈곤 문제가 심각한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2014년 7월에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2019년 3월, 청와대로 행진한 노인들의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이들이었다. 노인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노인들이 청와대로 행진한 이유는 노인빈곤을 해소하겠다며 도입한 기초연금이 가장 가난한 노인들에게는 가닿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수급 노인들에게도 기초연금이 지급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비에서 기초연금액만큼 삭감된다. 이들이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노인들이 청와대로 행진한 25일은 기초연금이 지급되는 날이었다. 이날 지급된 기초연금은 4월 20일에 나오는 수급비에서 삭감된다. 이들은 기초연금이 도입된 당시부터 약 5년간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난한 노인들의 삶을 예산과 저울질하는 국가

2014년 도입 당시 20만 원이었던 기초연금 최대수령액은 현재 25만 원으로 올랐고, 올 4월부터 하위 20%이하의 노인에게 30만 원으로 인상되어 지급될 예정이다. 4월 기초연금액 인상으로 하위 19% 노인의 가처분소득이 5만 원 오른다. 하지만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하위 1%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의 경우 소득은 그대로인 채로 상대적 박탈감만 더 느낄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기초연금액 인상으로 기초생활수급에서 탈락할까봐 아예 기초연금 자체를 신청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2016년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공약했다. 하지만 여당이 된 현재에도 해결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18년 연말, 2019년 예산안을 논의하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부분 개선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기초연금액 중 10만 원을 기초생활보장제도 소득산정에서 제외하는 내용이었다.

'줬다 뺏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초연금을 사실상 전액 돌려주고 있는 수급 노인들에게는 일말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해당 예산은 결국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국회는 가난한 노인들의 삶과 예산을 저울질하다가, 가난한 노인들의 손을 놓아버렸다.

노인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보장해야 한다
 

기초연금이 도입되던 당시 '줬다 뺏는'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자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보충성의 원칙을 갖고 있으며,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산정하지 않을 시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아닌 차상위 노인들과 소득역전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현재에도 유효한 인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에 대해서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17년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5.7%이다. 약 743만 명의 노인 중 약 340만 명이 가난하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을 보장받고 있는 노인은 약 40만 명에 불과하다. 300만 명의 노인이 가난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소득이 없고 가난한 상태인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비롯한 낮고 까다로운 선정 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사각지대인 셈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최저생활보장'이라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소득역전현상'을 운운하는 것은, 가난한 노인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또, 노인빈곤 문제 해결에 의지가 없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급노인들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수급노인들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 빈곤사회연대

기초생활보장제도 보충성의 원칙은 '수급신청자의 소득만큼 차감한 급여액을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수급신청자에게 월 10만 원의 소득이 있을 때 생계급여에서 10만 원을 삭감하여 지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가구특성에 따른 지출에 대해서는 소득으로 산정하지 않고 있다.

가구원 중 아동이나 장애인이 있는 경우 지급 받을 수 있는 아동수당이나 장애인연금·수당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또, 특정 가구원의 특성에 따라서 추가 지출이 필요한 연금 등 공적이전소득에 대해서도 소득산정에서 제외하고 있다. 기초연금 역시 여기에 포함하면 해결된다.

2016년 9월, 복지부는 기초연금의 도입이 노인빈곤 해소에 효과가 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보도자료에는 기초연금을 받는 2000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기초연금 도입으로 병원 방문의 부담이 줄었다는 답변이 1위를 차지했다.

나이가 들면 아픈 곳이 많아지는 게 당연하다. 기초연금은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에게 중복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급여에 대한 보충이다. 또, 가난한 노인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 해결은 노인빈곤 없애는 시작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8년 4/4분기 소득 하위 20%의 연평균 소득은 123만 8천원 인데 반해 소득 상위 20%의 연평균 소득은 932만 4천 원으로 7.5배 차이 난다. 2017년 동분기와 비교했을 때 하위 20%의 소득은 14.6% 감소한 반면 상위 20%의 소득은 10.5% 증가했다. 소득 상위 20% 안에서도 최상위 10%의 소득 비중이 높고, 그 중에서 최상위 1%의 소득 비중이 가장 크게 증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빈곤층의 소득 하락에 대한 대책을 지속적으로 발표해 왔지만 소득격차, 불평등은 줄어들 기세 없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그 이유는 정부의 대책이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의 일상이 불안한 가난한 노인을 앞에 두고 지역사회돌봄을 이야기하고, 그나마 건강한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물론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해결 역시 노인빈곤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아니다. 하지만 '노인빈곤을 해소하겠다'며 도입한 기초연금이 가장 가난한 노인들을 배제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노인빈곤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정부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통해 노인빈곤 문제를 없애나가야 한다.
 
 3월25일 행진 사진 여분
3월25일 행진 사진 여분 ⓒ 빈곤사회연대

#기초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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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경쟁을 강요하고 격차를 심화시키는 사회에서 발생합니다. 빈곤사회연대는 가난한 이들의 입장에서 한시적 원조나 시혜가 아닌 인간답게 살 권리, 빈곤해지지 않을 권리를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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