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를까? 명사, 동사의 동사가 아닌 사람이 얼어서 죽음을 맞이하는 동사(凍死)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차디 찬 산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모습이나 눈이 산에서 쏟아지는 눈사태와 같은 자연 재해가 생각난다.
사람마다 다양한 광경이 떠오르겠지만 대개 자연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도시화가 이루어진 나라에서는 쉽게 동사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보온 설비가 있기 때문에 동사라는 단어를 듣고 도시나 주택이 생각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황스럽게도, 집 안에서 동사로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특별히 한랭 지역이 아니어도 말이다. 사람은 주위 온도가 체온보다 낮으면 체내의 에너지를 소비해 열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에너지원이 될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면 열 발생이 부족해지고, 체온은 낮아진다.
가난한 사람이 평소에 열량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고,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난방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불을 아무리 덮어도 체온 유지가 쉽지 않다고 한다. 결국 주택가에 있는 집에서 동사한 시신이 발견된다. 21세기에 자신의 집에서 살면서 동사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씁쓸한 풍경이다.
놀랍게도 이 동사에 관한 이야기는 선진국인 일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한국에 비하면 복지 제도가 선진적이고 노인 복지에도 많은 신경을 쓰는 일본이지만 도시의 일상 공간에서 동사가 발생한다고 한다.
일본의 부검을 주제로 하는 '죽음의 격차'는 동사를 비롯한 인간의 죽음의 격차를 다루는 책이다. 사람이 살아서 겪는 삶에도 다양한 격차가 있듯이, 죽음도 다른 방식으로 찾아온다는 사실을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이 책은 일본의 법의학자 니시오 하지메가 쓴 책이다. 그는 현재 일본의 효고의과대학에서 법의학 교실 주임 교수를 맡고 매일 부검에 임하고 있다. 저자는 범죄 피해, 자살, 고독사처럼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서 목숨을 잃은 변사자들을 마주하는 것이 일이다. 그리고 그가 마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다.
우리 법의학 교실에서 부검한 전체 주검의 약 50%가 독거자이며, 약 20%가 생활보호 수급자, 약 10% 조금 안 되는 사람이 자살자이다. 그리고 대략 30%가 정신질환자인데, 치매 환자만 전체의 5%이상을 접한다. 더구나 신원 미상의 주검은 전체의 약 10%였다. 이 숫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변사체'가 되는 죽음 자체가 일본 사회의 음지에 속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245P
생활보호 대상자들은 수중에 돈이 거의 없고, 위와 장이 텅 비어있다고 한다. 알코올 의존증인 사람도 많다. 이들의 시신은 간이 매우 딱딱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식사를 통해 단백질과 지방 등을 섭취한다. 그리고 그들의 몸이 나이를 먹으면서 혈관이 변화하여 동맥경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알코올 이외의 영양분을 거의 섭취하지 않으니 동맥경화가 일어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이들은 내장지방도 없고, 심근경색이 일어날 요소도 없다고 한다. 부검 과정에서 고인이 살아갔던 삶의 질과 격차가 드러나는 것이다.
한국에 발생한 다양한 사회 문제는 이미 일본에 발생한 것이 많다. 고령화 문제와 치매 문제도 그렇다. 때문에 저자가 언급하는 몇몇 부검의 사례는 한국인으로서 관심을 갖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의 사회적 문제인 고령화와 치매에 대해서도 논한다.
일본은 고령화가 상당한 수준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일본인 평균 수명은 이미 80세를 넘겼지만, 생활에 간병이 필요하지 않은 기간은 평균수명과 남성이 약 10년, 여성이 13년이나 차이가 있다고 한다. 결국 이들에겐 간병이 필요하지만, 고령화가 이루어졌기에 노인들이 다른 노인을 간병하게 된다.
책에 따르면 간병이 필요한 고령자가 있는 집의 절반 이상이 이미 노노 간병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노인이 다른 노인을 간병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고, 간병인들도 체력이 허약하다 보니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환자가 치매 증상이 있거나 몸이 지나치게 허약하다면 다른 사람이 사망하여도 바로 신고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간병인의 사망 후에는 간병이 필요한 노인도 죽음을 맞이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다.
저자는 노노 간병 부부가 동시에 주검으로 발견된 경우를 몇 번이나 봐왔다고 한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가 한국에서도 큰 사회 문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어 씁쓸했다.
간병을 받는 사람이 중증의 치매 환자로 상황 파악이 곤란하거나 뇌경색 등으로 인해 거동을 못 하는 상태라면 배우자인 간병인이 심장이나 뇌의 돌발적인 병으로 쓰러지더라도 구조 요청을 못 한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중에는 백골화한 배우자의 시신과 생활을 계속한 사례조차 있을 정도다. -91P
저자는 대학 교수지만, 최대한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본의 법의학과 부검 체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다. 한국어 역자도 이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어 이해하기 쉽다. 다만 역주를 읽다보면 일본이 보건 분야에서 확연히 한국보다 앞서는 부분이 눈에 띄어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죽음을 많이 접해본 사람으로서, 죽음의 격차가 만연한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방도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는 삶의 태도에 대해서, 사회적으로는 격차와 빈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도 빈부 격차, 고령화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나라다. 때문에 앞으로 자신에게 어떠한 형태의 죽음이 다가올지 예측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삶에도 격차가 있으니 죽음의 격차를 줄이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국민들이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