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평범한 우리의 일상도, 일하는 방식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과거의 그것들과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이런 변화들이 개인에게 주는 영향은 각자가 처한 위치와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변화된 모습이 전체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고, 사회 정의를 강화하는 방향이라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타난 사회의 변화는 새로운 기술이 초래한 생활의 편리함과 일터의 기계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물리적 양태의 변형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특정한 상황을 대하고, 인지하는 관점의 변화 또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이 관점의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매우 불편한 것으로, 누군가에게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인간성 회복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안겨주기도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는 관점의 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감수성'이라는 개념이 적용되면서 새로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감수성은 사전적으로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로 정의된다. 이 용어는 성인지감수성, 인권감수성부터 얼마 전 정부의 인사 검증시스템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서민인지감수성 등 다양한 상황을 재단하는 잣대로 사용되기도 한다. 공감이란 용어와 유사하게 피해자 등 대상이 처한 상황의 맥락과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개념이다
이런 감수성은 정치인이나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자질로 자주 거론된다. 국민의 삶이 처한 조건과 환경에 맞는 눈높이에서 공감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감수성은 단기간의 교육이나 훈련으로 습득할 수 없다. 인간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경험과 인간관계를 비롯하여 몸담은 조직의 환경을 통해 체화되는 능력이다. 쉽게 얻을 수도 없지만, 쉽게 버릴 수도 없다. 감수성은 한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이루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빠르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는 동안 놓치고 있었지만, 이제는 이 관점으로 많은 인물이 평가받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불과 며칠 전 나온 언론 기사를 통해 감수성의 가치를 확인해보자.
"(170 이상의 여성은) 토막살인을 하기도 힘들고 시체를 유기·폐기하는 것도 힘들며, 아킬레스건을 잘라 피를 뽑아내는 것에도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고 있는 배우 윤지오씨가 지난 2일 한 언론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경찰이 자신에게 했다고 전한 말이다. 장자연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초기, 신변을 걱정하는 윤씨에게 한 수사관이 키를 물어보면서, 키가 173이라는 윤씨의 대답에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170이상은 납치 기록이 없다"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답을 했다고 한다.
윤지오씨는 동료 배우였던 장자연씨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다. 철옹성처럼 느껴지는 거대 권력을 상대해야 하는 그녀는 매일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 거주 공간을 자주 바꾸며 지낸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경찰수사관이 한 발언은 정상적인 사고로는 믿기 어렵다. 인권감수성이건 성인지감수성이건 상관없이 아픔을 겪고, 공포감에 둘러싸인 사람을 대할 때 필요한 감수성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 많은 국민이 주목하고 있는 장자연 사건의 실마리를 쥔 인물을 조사하는 수사관의 자질을 문제 삼기 충분하다.
이 기사를 접한 같은 날,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서 노인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개발된 '장수의자'가 눈길을 끌었다. 남양주경찰서 별내파출소장은 어르신들이 무단횡단을 하는 이유가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다리 통증 등 몸이 불편해 기다리기가 힘들다는 것에서 착안해 특별한 의자를 제작하게 됐다고 한다. 동네 어르신들의 교통 안전을 위해 설치된 의자는 큰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상황을 관심 있게 살피고, 어르신들의 눈높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쓴 파출소장의 감수성이 빛을 발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감수성은 사용할 수 있는 권한과 영향을 줄 수 있는 상대가 존재할 때 더욱 큰 차이를 나타낸다. 사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책임과 영향력이 개인이 머무르는 생활 반경에 국한되지만, 법과 제도가 인정한 공권력을 가진 선출된 정치인과 공직자의 감수성은 큰 파괴력이 있다.
감수성은 도래하는 미래사회에 인간이 가져야 할 중요한 능력 중 하나로 미래학자들이 지목한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AI 로봇과 그나마 차별화할 수 있는 인간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를 갖추지 못하면 기계와 별반 다르지 않고, 쉽게 소외될 것이다. 열린 사고로 감수성을 소유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공직자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감수성 기준은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진 고위공직자의 인사검증시스템이 갖출 필수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