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대표님께서 결단을 하시면 됩니다. 이대로 가서는 죽도 밥도 안 됩니다." (권은희 최고위원)
"가만히 계세요. 이제 깨끗하게 갈라서서 갈 길 가는 게 서로를 위해 바람직합니다." (이찬열 의원)
5일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는 고성이 오갔다. 감정이 격해져 높아진 목소리로 "국민들도 다 안다. 그냥 회의 전부 공개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4.3 보궐선거 직후 처음으로 다수 의원이 모인 회의, 사실상 의원총회 성격인 이날 회의에서는 당 지도부 거취를 두고 이준석·권은희 등 바른정당계와 김수민·이찬열 등 국민의당계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새 지도체제를 꾸리자는 쪽과 이에 반대하는 쪽의 대립이다.
이날 공개 발언은 원래 당대표인 손학규·원내대표인 김관영 의원과 이준석·권은희 최고위원, 김수민 전국청년위원장 등 5명이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정에 없던 이찬열 의원이 추가로 등판했다. 바른정당 출신인 이준석·권은희 최고위원은 "조기 전당대회를 준비하자(이준석)", "지도부가 책임져야 한다(권은희)"라며 지도부의 사퇴를 주장했다. 이날 공개발언은 하지 않았지만, 하태경 최고위원도 전날(4일) 본인 페이스북에 '당 지도부 거취'를 언급했다.
지도부는 이미 이들 발언 전에 사퇴와는 선을 그으며 '단합'을 강조한 터였다.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한다는 비판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는 뭉쳐야 산다(손학규)",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든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로 단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김관영)"라는 발언이 그것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이찬열 의원(경기 수원시갑)이 공개 발언을 신청했다. 마이크를 잡은 이 의원은 "지지율 낮게 나온 게 하루아침의 결과냐"라고 발언을 시작하며 당 지도부를 감쌌다.
"당의 후보를 위해 한 달간 숙식하며 지원한 당 대표가 잘못한 것인가. 소수정당이라는 한계 속에서 어떻게든 당 존재감을 살리려고 노력한 원내대표가 잘못한 것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몇몇 의원들의 내부 총질이 가장 큰 원인이다. 국민들이 보기에 우린 콩가루 정당이다. 대놓고 국민들이 봤을 때 대놓고 해당행위라고 보는 그런 언사 행동이 얼마나 많이 있었나."
이언주 징계 놓고도 국민의당-바른정당계 갈라져... 징계 결과가 '가늠자'
그가 말한 '내부 총질'은 당 대표를 향해 "찌질하다", "벽창호"라는 등 표현을 사용해 윤리위원회에 제소된 이언주 의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목소리가 높아진 이찬열 의원은 "우리가 왜 같이해야 되느냐. 이제 깨끗하게 갈라서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서로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나오자 방청석에서는 이찬열 의원 지지자로 보이는 이들이 손뼉을 치며 호응하기도 했다. 같은 회의장에 있던 이언주 의원은 고개를 숙인 채 듣고만 있었다.
"아직도 정신을 안 차린 것 같다"는 이 의원의 비판논조 발언에, 이를 듣던 하태경 최고위원이 "(발언을) 마무리하시라"며 끼어들었으나 이 의원은 멈추지 않았다. 이 의원은 말을 끊은 하 최고위원에게 "가만히 계세요"라며 "저 공개발언 (자주) 안 하는 사람이다. 이번에 3.57%도 잘 받은 거다. 정말 잘해야 한다"며 또 한 번 일침을 놨다. 4.3 보궐선거에서 이재환 바른미래당 후보는 3.57%, 전체 유권자 18만 3934명 중 3334표를 얻었다.
회의는 본회의 개최로 비공개 전환 뒤 30여 분만에 종료돼, 이견이 봉합되지 않은 채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최고위원의 '조기 전대' 발언에 대해 손학규 대표는 회의 종료 뒤 기자들과 만나 "그런 얘기 더는 없었다"며 "오늘은 시간이 부족했다. 다음 주 초에 다시 한번 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이라는 게 뭐 있겠나. 전체적으로 당의 진로에 대해 같이 해보자는 것"이라는 게 손 대표의 설명이다.
이날 회의에는 회의에 잘 참석하지 않는 유승민 전 공동대표도 참석했다. 당 의원에 따르면 유 전 대표는 회의에서 발언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기자들과 만난 유 전 대표는 '이준석 최고위원의 발언을 어떻게 보느냐', '조기 전대 얘기는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들에 "당내 문제에 대해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는 짧은 답변으로 대신했다. 유 전 대표는 회의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바른미래당은 5일 이언주 의원의 징계를 두고 윤리위 2차 회의 개최를 앞두고 있다. 이 의원 징계를 두고도 바른정당계 인사들은 "징계는 과하다"는 반면, 국민의당계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취지다. 이날 손 대표도 "당을 흔드는 일각의 시도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 지금은 환부를 도려내야 할 때"라는 발언을 남겼다. 이 의원을 둘러싼 이번 징계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바른미래당의 향후 거취 또한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에는 선거를 끝낸 이재환 후보도 참석했다. 당 부대변인이기도 한 그는 쉰 목소리로 "제가 목이 많이 잠겼다. 손학규 당대표님을 비롯해 많은 의원들께서 적극 지원해주셨는데 좋은 결과를 보이지 못해 다시 한 번 죄송하다"며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선거기간 내내 하루 2시간밖에 자지 못했다는 그는 "열악한 상황에서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며 "부족하지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해 당의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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