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경찰 수사 중 고문 있었다" 결론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들의 '몰래 변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진단하면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선임계 미제출 변론 사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검찰 고위직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몰래 변론'이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대한변호사협회의 징계처분 사례를 보면, 전화 변론 등으로 검찰 수사 실무자나 지휘 라인에 영향력을 미치는 전관 변호사는 검찰 고위직 출신이 다수다.
수사 확대 방지, 무혐의 처분, 내사 종결 등 수사를 어느 정도로 무마해주는지에 따라 거액의 착수금과 성공 보수금이 걸려있기 때문에 전관 변호사들은 사건 내용에 따른 법률적 대응보다는 약정한 성공보수가 걸린 결과 달성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몰래 변론'은 수임 자료가 남지 않아 변호사협회의 감독을 피할 수 있을뿐더러 탈세의 수단도 될 수 있다.
과거사위는 '몰래 변론'의 대표적 사례로 상습도박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검사장 출신 홍만표(60) 변호사를 선임한 건을 들었다.
홍 변호사는 수사·결재·지휘검사와 연고가 있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 과시해 사건을 수임했다. 선임료는 3억원이었다.
그는 "대검찰청에서 같이 근무했고 중매도 섰을 정도로 가깝다"고 친분을 과시한 최윤수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를 만나 수사 진행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정운호 전 대표에게 '추가 수사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되었어'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과거사위는 '홍만표 몰래 변론'을 두고 "검사가 전관 변호사의 몰래 변론에 응한 점, 결과적으로 검찰권이 정당하게 행사되지 않은 과오가 있었던 점 등을 종합하면 전관예우 등 잘못된 폐습에 대한 책임이 검찰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특히 "검찰이 정운호를 상습도박 혐의로만 기소하고 처벌이 더 무거운 업무상 횡령에 대해 아무런 결정과 처분을 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과오"라고 강조했다.
과거사위는 검찰 형사 사건에 관한 기본 정보를 온라인 등을 통해 충실하고 신속히 제공해 직접 변론의 필요성을 줄이고, 검찰청 출입기록과 연계한 변론기록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변론기록 작성에 누락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또 "수사 및 지휘검사의 몰래 변론 허용, 변론기록 미작성 또는 허위작성에 대한 감찰을 강화하고, 위반 행위가 있다면 적극 징계 조치하라"고 권고했다.
상부 지휘검사에 대해선 변호사가 지휘검사를 만나 변론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변론을 허용하되 허용 사유나 변론 내용 등을 의무적으로 기록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이날 낙동강변 2인조 살인 사건에 대한 심의 결과도 내놨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고문 행위로 진범이 아닌 이들이 허위자백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결론이다.
이 사건은 1990년 1월 4일 부산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변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범인이 차 안에서 데이트 중이던 피해자들을 납치한 뒤 여성을 강간·살해하고, 남성에게는 상해를 입힌 사건이다.
수개월 간 수사했으나 어려움을 겪던 경찰은 이듬해 11월 낙동강 갈대숲에서 경찰관을 사칭해 금품을 갈취한 용의자 최인철·장동익 씨를 살인 용의자로 검거한 뒤 검찰로 송치했다.
경찰은 범행을 자백받았다고 했으나 최씨와 장씨는 검찰 수사 때부터 범행을 부인하면서 경찰이 물고문 등 가혹 행위를 해 어쩔 수 없이 자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 이상을 복역하다가 2013년 모범수로 특별 감형돼 출소했다.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변호사 시절 변호인을 맡아 주목받기도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수사 과정에서 고문이 있었다고 재판에서 거듭 문제를 제기했다.
과거사위는 "고문 피해 주장은 고문의 방법, 장소,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들의 행동 등 모든 면에서 매우 일관되며 객관적으로 확인된 내용과도 부합해 신빙성이 있다"고 밝혔다.
당시 부산 사하경찰서가 자백 진술을 받아낸 이후로도 종전 진술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다시 물고문을 했고, 이틀에 걸친 현장검증을 하루에 마친 것처럼 검증 조사를 조작한 사실도 이번에 확인됐다.
과거사위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최인철·장동익 씨의 고문 피해 주장에 대한 확인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수사검사는 (고문 관련) 진술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송치된 기록 자체만 면밀히 검토했어도 발견할 수 있었던 각종 모순점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기소하는 과오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위는 피의자가 자백을 번복할 경우 검사가 검증할 수 있는 기준·절차를 만들고, 살인·강간 같은 강력사건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중요 증거물을 공소시효 만료 때까지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최인철·장동익 씨는 2017년 5월 재심을 청구한 터라 과거사위 발표로 향후 재심 개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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