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 이하 변협)는 <합격자 수에 일희일비 말고 로스쿨도 유사직역 정리에 동참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의 말미엔 '법조유사직역 통폐합, 축소를 위한 협의체 구성, 심포지엄 개최 제안'이란 구체적 요구가 담겨 있다. 하지만 사실상 '신규 변호사 배출 수(변호사시험 합격자 수)'에 관한 입장표명으로 보인다.
성명서에 따르면, 법조유사직역의 수가 해가 갈수록 늘어 2019년 현재 법무사는 6869명, 변리사는 3271명, 세무사는 1만3194명, 공인노무사는 4419명, 행정사는 32만7227명, 관세사는 1,970명에 이른다. 법조유사직역은 법률 사무를 취급하는 변리사, 세무사, 공인노무사 등의 자격사를 말한다.
변협은, "법조유사직역의 통폐합, 축소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 직역 현황과 종사자 수를 고려하지 않고 그간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결정해온 것은 문제"라면서, "이와 같은 상황에서 법조유사직역의 통폐합, 축소를 회피하고 변호사 숫자만을 늘리는 것은 로스쿨 제도의 존립과 변호사뿐만 아니라 법조유사직역 자격사 제도의 근간을 흔들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로스쿨의 도입으로 신규 변호사 배출 인원이 크게 증가하였고, 변호사들의 다양한 직역으로의 진출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의 이경수 회장은, "'유사직역 통폐합, 축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니 신규 변호사들이 최대한 조금 배출돼야 한다'고 하는데 신규 배출 통로를 조이면 로스쿨 교육, 특히 유사직역에 대항할 로스쿨의 전문 교육은 죽는다. 그런데 또 '로스쿨에서 교육을 통하여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을 갖춘 법조인이 많이 양성되니 유사직역을 정비해야 한다'고 하는 게 대체 무슨 경우냐. 모순의 극치다"라고 말했다.
또 "이는 26일 합격자 발표일에 법무부가 합격자 수를 한 명이라고 더 줄이도록 압박하고자 유사직역 문제를 끌어들이는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현재 변호사시험 합격자의 수는, 변호사시험법 제10조 제1항에 따라 '법학전문대학원의 도입 취지를 고려하여' 법무부장관이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도입 취지 고려'란, 로스쿨 제도 개혁과 관련해 활발히 활동하는 김창록 경북대 로스쿨 교수,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 등에 따르면 '변호사시험을 의료인자격시험과 마찬가지로 자격시험으로 운용하여 졸업자 대부분을 합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변호사시험 합격자의 수는, 합격자발표일 당일에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가 법무부가 제시하는 1,2,3안 중 어느 하나를 택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어 온 것이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에 이러한 결정방식은 종전 사법시험에서의 선발예정인원 결정 방식과 동일한 '정원제 선발 방식'일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변호사단체 등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있어 왔다.
한편 성명서는 '법조유사직역 정비'는 로스쿨 도입 취지 중 하나였다는 주장도 담고 있다. "법조유사직역의 통폐합, 축소 등을 전제로 지난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도입되었다"거나 "로스쿨의 본래 도입 취지는 유사직역을 통폐합하여 변호사 제도로 일원화하되, 교육을 통하여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여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을 꾀하는 것"이었다는 부분들이 그렇다.
이는 지난 15일 변협이 소속 변호사들에게 단체메일로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당시의 약속과 달리 유사직역 통폐합 및 축소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유사직역에서 변호사 고유업무인 소송대리권까지 침탈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오는 22일 변협 주최의 관련 시위에 동참을 호소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당시 기자는 변협 측에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당시 유사직역 통폐합 및 축소에 대한 약속이 있었다'고 주장한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으나 변협 이충윤 대변인은 "다음날인 16일에 밝힐 것"이라고만 했다. 그러나 16일 변협의 관련한 근거 제시는 없었다. 이번 성명서에서도 별다른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다.
로스쿨 설립 준비 시기부터 적극 참여해온 김창록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내 기억에, 유사직역이 로스쿨을 일정기간 거치도록 하는 등의 이야기는 나왔으나 하나의 안에 불과했다"면서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의 (로스쿨 제도 설립에 관한) 성과는 전부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의 건의문에 들어 있다. 그런데 거기에 등장하지 않았으니 '약속'이라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로스쿨 문제 해결에 노력을 기울이는 다수의 변호사들 역시 '금시초문'이란 반응을 보였다. 기자 역시 로스쿨 설립 당시의 사법개혁위원회자료집, 사법개혁리포트, 공청회 자료집 등에서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또 변협은 성명서를 통해 신규 변호사 배출 수에 관한 도표 제시와 함께 "2010년 법조인 배출 수는 980명이었는데, 2012년은 2,481명, 2013년은 2,364명, 2014년은 2,336명이 배출되는 등 아래와 같이 그 숫자가 급증"한다면서 그럼에도 "사법연감에 의하면 같은 기간 전체 소송사건 건수의 경우 거의 변화가 없고 오히려 2015년부터는 감소 추세에 있으며, 지방변호사회 경유건수 또한 2015년부터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법조유사직역의 통폐합, 축소를 회피하고 변호사 숫자만을 늘리는 것은 로스쿨 제도의 존립과 변호사뿐만 아니라 법조유사직역 자격사 제도의 근간을 흔들 뿐"이라는 것.
위 도표를 보면 로스쿨에서 변호사가 처음 배출되는 2012년 이후 계속하여 '신규 변호사 배출 수'가 줄어드는 것이 확인된다. 2012년 사법연수원 수료자와 변호사시험 합격자의 총수는 2481명이었지만 2018년에는 그 총수가 1770명에 불과하다. 또 도표에서는 변호사시험 합격자의 수가 단 한 차례도 1600명을 넘지 않은 것도 확인된다. 도표에서와 같이, 로스쿨 입학정원이 2100여 명임에도 합격자 수를 1500여 명으로 고정시키다보니 해를 거듭하며 불합격자가 누적돼 지난해엔 '응시자 대비 합격률'이 49.35%를 기록하며 변호사시험이 과반수가 불합격하는 시험이 된 것. 응시금지자(변호사시험법 제7조에 따라 졸업년도부터 5년이 지나면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없음)와 미졸업자(휴학자,유급자,수료자)가 제외된 수치이므로 이를 고려하면 실질 합격률은 보다 낮다.
변협의 이번 성명서에 로스쿨생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로스쿨 커뮤니티에서는, "변호사들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치자, 아니 치킨집 어렵다고 치킨집 수를 통제하느냐, 취업 어렵다고 대졸자 수를 통제하느냐", "변호사들도 수임료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변협도 신규 변호사 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법조문턱 낮추기에 동참하라", "적어도 로스쿨 1,2기는 양심 좀 있어라!"와 같은 글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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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변호사들의 비판도 나왔다. 오원섭 변호사는 "변호사단체의 입장에서 볼 때 논리적으로 타당성이 있다"고 하면서도 "하지만 며칠 뒤에 변호사시험 합격자수가 정해지는 시점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진정성 부분에서 의심이 갈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22일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관한 의견서>를 법무부·교육부 제출하면서 같은 날 오전 10시 민변 대회의실에서 이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할 계획이다.
의견서 작성에 관하여는,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개선방안을 논의하고자 2018년 6월 결성된 '로스쿨제도연구모임'이 주축이 된 것으로 보인다. 민변은 "'교육을 위한 양성'으로 법조인 양성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기 위해 도입된 법학전문대학원 운영 10년의 검토 결과, 변호사시험의 자격시험화와 교육 정상화가 중요한 과제로 판단되어, 각 실태와 개선방안에 관하여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변호사시험의 자격시험화는 신규 변호사 배출 수의 증가를 의미할 수 있어, 민변의 의견서에는 변협의 이번 성명서와 상반된 주장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민변이 로스쿨과 관련하여 나서는 것은 2010년 12월 김선수 현 대법관이 회장 당시 민변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한 후로 처음이다.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박은선은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 소속으로, 기사의 수익금은 전액 로스쿨 교육 정상화 및 법조문턱 낮추기 운동에 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