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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씩 <서울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다. 이때 한승혜라는 내 이름 옆에는 '주부'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작가, 기자, 사업가 등처럼.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사실 당시에는 이걸 두고 꽤 고민했다. 직함을 무엇으로 할지에 대하여.

작가? 난 책을 낸 적이 없는데. 마케터? 지금 마케팅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럼 전 직장의 이름을 넣을까? 근데 현 직장도 아닌데 아무래도 좀 웃기지 않으려나. 그러다가 그냥 주부라고 붙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주부'가 과연 직함이나 어떤 타이틀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에라, 모르겠다. 나 주부 맞는데 뭐 어때.

남편은 이런 나를 보며 말했다. 남들이 RPG 게임하면서 용의 갑옷이나 메탈킹의 검 같은 고급 장비 차고 싸우러 나갈 때 혼자 곤봉 들고 털레털레 나가는 캐릭터 같다고. 그도 그럴 것이 신문에 발표된 필진 리스트를 보니 죄다 교수, 학자, 작가, 변호사 등이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 끼어있는 '주부'.

주변에서 '쿨' 하고 재미있다고 이야기해 주었고 스스로도 그런 척했으나, 솔직한 마음으로는 심적인 부담이 조금 있었다. 주변에서 흔히 '주부'라는 단어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는지를 절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왜 나는 화가 났을까

오래전에 부부 동반으로 남편의 지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비슷한 또래라 육아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그가 문득 나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은 집에서 쉬고 계시는 거네요?"

순간 "야 이 시키야, 너 좀 전에는 주말에 집에서 애들 보는 것보다 회사 가는 게 더 낫다며! 애들 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며! 그런데 뭐? 내가 회사 안 다닌다고 하니까 집에서 쉰다고? 쉬는 게 뭐가 힘드냐? 그럼 어디 너 우리 집 애들까지 데리고 가서 한 번 지겹게 쉬어볼래?"라고 당연히 말하지 못했고...

"아, 네. 그렇죠 뭐. 아직 아이가 어린이집 안 다니고 봐주실 분도 안 계셔서요"라고 적당히 넘겼지만, 그때의 기억은 두고두고 마음에 박혀 그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아 그 재수 없는 시키..."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언행이나 인식이 특별히 더 '재수 없거나' '무지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보편적이라는 걸. 사람들은 아이랑 놀아줄 바에 차라리 회사에 나가는 것이 낫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집에 머물고 있거나 실질적인 '돈'을 생산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쉬고 있다'는 말을 굉장히 무신경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또한 내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속으로 발끈하며 굉장히 화를 냈던 것은 실은 나 자신이 어느 정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걸. 말하는 이들은 정작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는 걸. 스스로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내 내면의 어딘가에서는 타이틀과 직함을 중요시하고 있었다는 걸. 그렇기에 남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내 안의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자극했다는 걸. 나는 그것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좀 더 나 자신에게 당당해지고 싶었다. 남들이 뭐라 말하든 그에 개의치 않고 싶었다. 이름 석 자 앞에 붙어있는 말이 작가든, 마케터든, 칼럼니스트든, 주부이든, 나는 그저 나일 뿐이라는 것을.

주부 역시 어떤 직업의 일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은 누구보다도 스스로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더 그 단어를 선택했던 것도 있다. 그 결과 간혹 칼럼을 공유하면서 일부러 더 '주부님' '주부님' 하며 조롱하듯 말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견디는 이유
 
 책 <저, 청소일 하는데요?> 표지
책 <저, 청소일 하는데요?> 표지 ⓒ 21세기북스
 
책 <저, 청소일 하는데요?>는 김예지 작가가 회사를 그만둔 뒤 청소일을 하면서 그린 만화다. 조직생활도 맞지 않고 자신의 꿈(그림)을 실현할 시간도 부족하다고 생각한 그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작품 활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작품은 진도가 나가질 않고, 생활비는 점점 떨어져 간다. 부모님의 도움을 언제까지고 받을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취직하려고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원서를 내는 족족 탈락했다. 결국 돈이 없어진 그녀는 고심 끝에 엄마와 함께 청소 업체를 차려 청소일을 하게 된다.

그저 그런 뻔한 에세이일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르게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특히 밥벌이의 고됨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부분이 좋았다. 책의 분위기도 굉장히 밝고 경쾌하다. 그런데 육체노동 보다도 남들의 시선을 극복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웠다는 대목을 읽으면서는 사실 조금 갸우뚱하기도 했다.

'아니, 청소일을 그렇게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나? 열심히 일해서 떳떳하게 돈 벌고 있는데 뭐 어때? 왜 그런 걸 신경 쓰지?'

그러다 나의 경우와 대비해서 생각해보니 갑자기 어느 정도 알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간혹 가다 한두 사람이 던지는 한마디가 가시처럼 박히는 경험. 그 한두 사람이 마치 전체처럼 보이는 경험.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는 별개로 스스로의 시선과 생각이 더 괴롭게 와 닿는 경험.

그녀는 "남의 시선을 어떻게 이기나요?"라는 질문에 "이겼다기보단 견뎠어요"라고 대답한다. 마음으로는 이기고 싶었지만 사실은 이기질 못했다고. 그래서 신경은 쓰였지만 그냥 견뎠다고. 그러나, 그런데도 자신은 그림을 그리고 싶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생계도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소일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밥벌이'의 수단이기 때문에 견디는 것이라고. 그 말에 왠지 묘하게 위로를 받았다.

실은 견디는 것이 결국 이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 -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김예지 지음, 21세기북스(2019)


#서평#시선#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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