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하제(희망, 내일)란 무엇이겠어요? 남을 시켜만 먹으려 들면 그건 참짜 하제를 죽이는 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너도 일을 하고 나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너도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살아야 그게 참짜 하제지요."
백기완 선생이 쓴 소설 <버선발 이야기>에 나오는 말은 낯설다. 그러나 '새내기' '동아리' 같은 말도 낯선가? 이런 고운 말을 살려내 대중이 친근하게 쓰도록 한 이가 백기완 선생이다.
한 달 만에 4쇄 찍은 우리의 민중서사
재야의 '불쌈꾼'(혁명가)으로 유명한 백기완 선생이 민중서사를 소설로 담아냈다. <버선발 이야기>는 출간 한 달 만에 4쇄를 찍었고, 1만부를 돌파했다. 책을 출판한 <오마이뉴스>와 백기완 선생이 소장으로 있는 통일문제연구소가 23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이야기 한마당'을 열었다.
'이야기한마당'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은 시민들로 북적거렸는데 백기완 선생의 활동상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그가 거리에서 투쟁해온 역사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는 자신의 본적을 '거리'라고 표현했다. 민중이 있는 곳에 자신도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그의 사진 앞에서 셀카를 찍기도 했다.
교육회관 한 켠에서는 백기완 선생이 시민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책에 관심을 갖고 찾아온 이들에게 나름대로 감사의 표시를 한 것이다. 사진을 찍으려는 줄이 꽤 길었다. '슮'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화가 노슬미(26)씨는 <버선발 이야기> 이야기 한마당에 오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백기완 선생님이 하시는 연설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찾아보다가 책을 쓰셨다는 거예요. <버선발 이야기>라는 책이 나오고 그걸 사서 이제 읽었어요. 참 자연의 섭리에 맞는 삶이 아닌가, 이 버선발의 삶이. 그런 생각이 들면서 직접 와서 육성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화가 김구씨는 백기완 선생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을 행동으로 옮겨 주는 분'이라고 말했다.
"소시민의 염원이나 바람을 몸으로 실천하시는 현 시대에 살아계신 영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흠모하고 그래서 오게 됐습니다."
이야기 한마당은 백기완 선생의 건강을 고려해 2시간 남짓 짧게 진행됐지만 다채롭게 준비됐다. 한 시인이 백기완을 생각하며 지은 '백발의 전사'라는 시를 낭독했다. 그는 호통치는 듯한 백 선생의 화법을 비슷하게 구사하며 시를 낭독했다. 낭독이 끝나자 가수 정태춘이 무대에 섰다. 그는 자신의 히트곡을 부르며 백기완 선생의 책 출간을 축하했다.
자본주의는 '내꺼'만 챙기는 것
이야기한마당은 이야기 손님들이 백 선생과 맺은 개인적 인연을 소개하고 책에 관해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귀가 어두운 백 선생을 배려해 유홍준 교수가 옆에서 그의 귀에 큰 목소리로 다시 말해 주었다.
유 교수는 "백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호령하시지만, 사실 곁에 사람을 많이 두신다"며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가 백 선생님이랑 제일 친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주인공 버선발이 땅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장면이 인상깊었다고 한다. 백 선생은 이 장면을 더 자세히 설명했다.
"버선발이 맘 놓고 가져가라고 준 거야. 내꺼를 준 거라고. 근데 사람들은 내꺼라면 지구도 가져가고 우주도 가져간다고. 자본주의는 내꺼로 된 거다 그 말이야. 자본주의는 안 된다는 얘기가 버선발 이야기야."
'내 것'을 향한 집착이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것이다. 백 선생은 '내 것'을 불려가는 자본주의는 안 된다는 게 <버선발 이야기>라고 했다.
남의 옷도 차려주는 게 잔치
한 이야기 손님이 "선생님이 책에서 빼어나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은 어딘 가요"라고 묻자 즉각 답이 나왔다.
"버선발이 굿판에 갔어. 굿판은 잔치라는 말이야. 거기서 한 아주머니가 떡을 먹으라고 주는 거야. 버선발은 남의 거를 먹어본 적이 없으니까 놀란 거라고. 거기다 김칫국도 줬는데 거기다 떡을 먹으니 목구녕에서 넘어갔다는 거야. 또 어떤 할아버지는 버선발 더러 잔치에서는 차려 입고 와야 한다면서 새 옷을 줬어. 동생도 있다 하니까 옷 하나를 또 주는 거야. 남의 옷도 차려 주는 게 굿(잔치)이라고."
'있는 놈'이 '없는 놈' 괴롭히는 게 분단이고 분열
한 시민은 "통일이 빨리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질문했다. 백기완은 통일은 모두가 일하고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라고 강조했다.
"여러분, 이 땅에 재벌이 없어야 통일이 빨리 됩니다. 있는 놈이 몽땅 가져가고, 없는 놈 괴롭히는 게 분단이고, 분열이고, 비극이에요. 있는 놈 없는 놈이 다 없어지는 게 통일입니다.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사는 올바른 세상이 통일이에요."
소설에서 버선발은 '벗은 발', '맨발'이라는 뜻이다. 첫눈이 오기 전까지 신발을 신지 않았던 옛 민중의 모습을 '버선발'이라 한 것이다. 그는 주인공 버선발이 자신이며, 민중(니나)이라고 했다.
책은 민중의 '노나메기' 정신을 강조한다. 어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일정하게 자신의 구실에 따라서 나누어서 먹는다는 정신이다. <버선발 이이기> 속 옛 민중의 모습에서 '노나메기'를 다시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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