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일해 온 40대 노동자가 사내 화장실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한 지 11일이나 되었지만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조립부 소속이던 ㄱ(49)씨는 지난 15일 오전 10시 30분 사내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사망 원인은 뇌출혈이다.
ㄱ씨는 삼성중공업 직영으로 용접 작업반장으로 있다가 2018년 8월말 직위해제되어 다른 부서로 옮겨 평사원 신호수로 일해왔다. 고인은 부서를 옮기고 평사원이 되면서 억울함과 비참함을 자주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직위해제의 충격과 스트레스로 인한 명백한 산업재해가 원인"이라며 "동료들로부터 직위해제 후 타 부서로 옮겨가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삼성중공업이 진심으로 사죄할 것"과 "고인의 뇌출혈 사망을 산재로 인정할 것", "삼성중공업 구조조정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족들은 장례를 미루고 삼성중공업일반노동조합 김경습 위원장과 함께 상복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족들은 삼성중공업 앞에서 손팻말과 펼침막을 들고 서 있기도 하고, 김 위원장은 상복을 입고 확성기를 통해 시위를 하고 있다.
유족들은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이 적극 나설 것을 요구했다. 김 위원장과 유족들은 지난 25일 통영고용노동지청 산재예방지도과를 찾아 면담했다.
유족들은 28일 낮 12시까지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통영고용노동지청 앞에서 노숙농성에 들어가기로 했다.
고인은 부인과 두 딸을 두고 있다. 유족들은 고인이 평소 심혈관 질환을 비롯한 지병이 없었고 운동도 꾸준하게 해왔다고 주장했다.
작은 딸은 '편지'를 통해 "아빠. 껌딱지 막둥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아빠 곁으로 너무 가고 싶은데 내가 그래버리면 아빨 두 번 죽이는 거랑 다름 없어서 못하겠다. 이렇게 내가 나약해질 때마다 붙잡아줘. 나 살 수 있게. 아빠 얼굴이 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는데 눈을 한번 감았다 떠보면 아빠가 없어. 너무 보고 싶다. 만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은 딸은 "제발, 아빠가 가있는 꽃밭에선 아무 걱정없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잘 지내줘. 일 때문에 몸의 여유, 마음의 여유, 못줬던 거 꽃밭에 가서는 하고 싶은 거 다해. 눈치 보지 말고, 끙끙 앓지 말고, 마음껏 웃고 즐겨줘. 사랑해 아빠"라고 했다.
큰 딸도 쓴 편지에서 "아침에 잘 다녀오겠다며 출근하신 아빠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는 비보에 하늘이 무너지는 이 비통함을 어떻게 해야하느냐"며 "아빠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중공업에 입사하여 야간고등학교를 다녀가며 33년을 몸담아 일하였다"고 했다.
이어 "아빠는 자나 깨나 회사뿐이셨고 주말도 없이 오로지 회사 하나만을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가족들과 여행 한 번 가지 않고 오로지 회사만을 위해 살아온 아빠가 고인이 되어 돌아왔다"며 "용접하는 일을 좋아하셨고 용접으로 끝까지 퇴사하는 것이 아빠의 바람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아빠가 일방적인 직위해제 통보로 인하여 원하지도 않고 해본 적도 없는, 30여년 넘게 해왔던 업무와는 너무나도 다른 일을 해야만 하는 부서로 이동하면서부터 아빠의 어깨는 축 처져 슬픔에 빠지셨다"며 "그렇게 회사를 좋아하시던 아빠가 회사 가기 싫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고 눈물을 보이셨다"고 했다.
김경습 위원장은 "삼성중공업은 구조조정으로 인한 타살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는 것이다"며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삼성중공업의 잔인한 구조조정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유가족과 적극 대화를 통해 해결하도록 하겠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면 서류 등에 대해 성의껏 낼 것이고, 산재 여부는 공단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구조조정이 아니고, 인력을 재조정하는 과정이다"며 "지난 몇 년 사이 물량이 많이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인력을 필요한 부서로 재조정한 것"이라고 했다.
통영고용노동지청 관계자는 "고용노동부에서 조사할 사안은 아니다. 산재 신청은 근로복지공단에 하면 된다"며 "유족의 요구사항은 회사측에 전달하고 있다. 빨리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