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충남 교사 중 역대 최대 인원이 교단을 떠났다. 지난해 2월 명퇴(명예퇴직) 신청교사는 159명. 그런데 올해 2월 명퇴를 신청한 교사는 326명으로, 1년 만에 무려 98%나 증가했다. 전국적으로도 6000명을 넘어서, 지난해 4632명에 비해 30%나 증가했고 2017년 3652명보다는 65%나 늘어났다.
최근 5년 통계에 따르면 명퇴 신청자 중 70%가 55세 이상이다. 명퇴 사유는 여러 관점에서 해석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기와 맞물린 것도 있고, 명퇴 신청이 가능한 경력 20년 이상 교사들이 증가한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교육계는 교사들의 명퇴 신청 사유로 '교권 추락'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실제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 1월 교권 추락으로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교사 수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사정해서 수업하는 느낌"... 미련없이 명퇴하는 교사들
충남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명퇴 사유로 건강문제나 자기계발, 부모봉양 등의 이유가 많았다. 하지만 교사들이 교권침해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를 명퇴 사유로 적어내는 게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명퇴를 신청한 교사들이 본 우리 교육 현실은 어떨까? 학생이나 학부모와는 또 다른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A 교사는 이렇게 속내를 털어놨다.
"'나이 들어 경력이 많다'가 학교에선 나쁜 의미가 되더라. 경력이 많아 노련할 것 같아도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진다. 또 학교에 따라서, 많게는 한 반에 2/3가 넘는 학생들이 교사에게 함부로 한다. 학생들의 예의 없음이 일반화됐다. 나는 비교적 학교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학교생활도 즐겁게 한 편이고 학생들과 큰 충돌도 없었다. 하지만 수업보다 아이들 지도에 더 힘을 빼게 돼 수업하기 싫을 때가 있었다. 마치 아이들에게 사정해서 수업하는 느낌이었다. 학교생활이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맞는 거 같다."
지난해 17개 시도교육청이 내놓은 '최근 4년간 교권침해 신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학교 현장에서 발생한 교권침해는 총 1만2311건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폭언폭행 등으로 교총에 접수된 교권침해 상담 건수도 2017년 508건으로 10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 중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는 절반을 넘어섰다.
교권침해 사안이 심각해지자 이찬열 국회 교육위원장은 지난 1월 교육 활동 침해행위로부터 교원을 보호하는 '교원보호법(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과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A 교사는 "교권침해 사례는 실제 건수보다 훨씬 적게 나올 확률이 높다,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교사 대부분은 참고 지낸다"며 "불거질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교사들은 서로 공조해 함께 조치할 수밖에 없다, 일대일로 대응하다간 싸우는 게 돼버리고 송사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드러나는 건수보다 실제 발생 건수가 아마 10배는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욕하고 쓰레기 던져도... 학부모 항의에 무관심으로
교권 추락에는 학부모들의 교육관도 한몫 한다고 교사들은 지적한다. 교사가 학생을 나무라면 학부모가 이유와 과정은 뒷전이고 교사가 사용한 어휘나 방법에 대해서만 항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기자가 만난 B 교사는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온 학생에게 "야 인마, 너 왜 늦게 들어와?"라고 물었다가 학생의 엄마로부터 욕을 했다는 이유로 항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아이는 교사 앞에서 더 심한 욕을 내뱉었어요. 교사에게 한 욕이 아니라면서. 어른 앞에서 욕설을 자제하지 않는 아이를 그냥 둬야 하나요? 자꾸 부모들의 항의를 받게 되면 무관심할 수밖에 없어요. 교육이 황폐해지죠. 체크만 해줘야 해요. 지도는 해줄 수 없고."
또 타자의 인권보다 자신의 인권만 중요시하는 학생들의 의식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교사들은 학생이 인권만 강조하고 자신이 저지른 무례함과 경솔함에 대해서는 관대하다고 입을 모은다. 교사나 어른의 인권에 대한 무시나 공격도 빈번하다.
"학생이 교사가 있는 쪽으로 쓰레기를 던지고는 칠판에 던졌다고 말할 때 교사들은 당혹스럽다. 쓰레기를 함부로 던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학생이 된 아이에게 새롭게 가르쳐야 할 덕목일까? 수업시간에 아예 엎드려 자는 일은 이제 아무 것도 아니다. 수업시간에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교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아이조차 속수무책으로 놔둘 수밖에 없을 때, 교사들은 자신의 직업적 소명에 회의를 느낀다."
특히 B 교사는 "사실 치료를 받아야 할 아이들이 많지만 부모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혹 인정한다 해도 부모들은 무사히 졸업하는 게 우선"이라며 "수업하는 교사들이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까지 지도해야 하니까 상담전문가도 치료사도 아닌 교사들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 힘들다, 손을 쓸 수 없으니 방치하게 되고 교사로서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교사들의 교권이 추락했다는 것에 대부분 학부모가 동의한다. 그러나 어떤 학부모들은 "교권을 무시해서도, 내 아이만 중요해서도 아니"라고 말한다. 학교 교육의 문제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C 학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나름 예의범절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가르쳐왔고 부모로서 아이에게 모범을 보이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겐 말초적인 쾌락의 유혹이 곳곳에 널려있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유튜브만 봐도 정말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욕설과 온갖 혐오가 담겨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여성 교사 노인 어린아이 등 자신들의 또래가 아닌 모든 사람을 비웃고 혐오하며 적대시하는 내용이 있다. 그걸 보는 아이를 말리는 일도 힘겹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점점 더 상실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교사 인권 보호 매뉴얼 절실"
교권과 학생 인권의 상관관계는 상충적이면서 서로 보완적이다. 전장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남지부장은 "교육 활동이 순조로우려면 학생 인권 조례가 마련된 것처럼 교사들의 교권도 회복돼야 한다"며 "교사들의 인권을 교육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매뉴얼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전 지부장은 "학생 인권 보호 차원에서도 학교 구성원인 교사들이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교사 인권회복이 중요하다"며 "그래서 교원노조는 교권보호조례, 학교자치조례, 학교(학생)인권조례 재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천안아산신문에도 실립니다.